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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연재] 배드민턴과 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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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6-04-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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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어느 날 저녁, 매주 목요일 밤마다 배드민턴을 치러 다녀도 되겠냐고 남편이 내게 물었다. 한 동네에 사는 이전 직장 동료와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다가 그분의 취미인 배드민턴에 영업당한 것이다. 매일 집 밖을 나가 30분 이상씩 달리고 토요일 동네 조기 축구를 뛰러 나다니는 걸로도 모자라 얘는 도대체 왜 이지경으로 중년의 위기일까. 유명한 얼굴로 붐비는 텔레비전 앞에 누워 남편의 체력을 걱정하는 마음과 그 무모함을 구박하는 마음을 다 합쳐 그에게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네 한계를 보기까지 응원하므로 그러려무나.” 


누군가 자신의 취미 생활에 대해 상대방이 묻지도 않았는데 속없는 사람처럼 이 말 저 말 늘어놓아가며 한 번 동참해 보기를 권할 때가 있다. 나이 든 우리는 이제 그 수다를 ‘내 일상에 당신을 포함하고 싶다’는 초대로 순전히 받아들이려 한다. 가정을 이루고 난 이후로 친구가 필요한 순간마다 따로 시간을 내어 그 누구와도 평소와는 다른 차원의 우정을 키워나갈 여유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와 달리 서로에게 개인적으로 약속을 상기시키지 않아도 일정한 회비로 보장된 시간과 공간에 나타나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친구인 것이다. 


한동안 남편은 목요일 밤이면 동네 중국 아줌마들한테 셔틀콕으로 실컷 처맞고 수치심에 고개를 숙인 채 집에 기어 들어왔다. 그 어느 실력자도 남편과 같은 편이 되면 치욕적인 패배만을 겪는다고 했다. 그와 배드민턴을 치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남편은 매주 내게 칭얼대며 보고했다. 심지어 그를 동네 체육관으로 끌어들인 이전 직장동료마저도 남편과 배드민턴 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취미 생활에도 실력에 따라 엄연한 계급이 존재해 남편은 그중 가장 낮은 자리에서 허공에다 배드민턴 채를 속절없이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무룩해져만 가는 그의 얼굴은 나 혼자 보기 아깝도록 비극적이었다. 그 탓에 동네 체육관에 남편 대신 나타나 술 취한 무사처럼 배드민턴 채를 뽑아 들고 주어진 모든 규칙을 배반하며 코트 위를 날뛰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축구하러 나가면 젊은 시절 대학팀 선수로 뛰었던 아줌마나 아저씨한테 치이고, 달리는 동안에는 어제저녁 과식한 제육볶음이 걸림돌이고. 우리에겐 이러한 생의 무자비만이 영원한 친구임을 또다시 실감하며 남편은 미련 없이 배드민턴을 때려치웠다. 남편의 이전 직장 동료 역시 떠나는 남편을 그 어떤 말로도 붙잡아 세우지 않았다. 과연 남편의 빗나간 배드민턴채가 이 둘 사이에 종종 놓이던 숟가락 젓가락까지 안 보이게 치워버린 건 아닌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이혜준(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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