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연재] 말다툼과 달리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June Lee 칼럼니스트 작성일본문
애들 개학을 하루 앞둔 일요일 이른 아침, 남편이 잠옷 차림으로 집안을 오락가락 거닐고 있다. 어느 순간 마룻바닥에 맨 발바닥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멈췄다. 식탁 앞에 선 그가 요즘 혼자 나가 달리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다고 말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눈을 흘기며 방으로 올라가 금세 옷을 갈아입었다. 우리는 현관문 앞에 함께 주저앉아 운동화 끈을 고쳐 맸다.
집 앞 소화전을 출발선 삼아 그 옆에 서서 발목을 한쪽씩 돌린다. 말없이 손목에 찬 가민 버튼을 누르는 순간 출발한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빠르기로 두 발을 구른다. 서서히 등 뒤로 멀어지는 우리 집과 집안에서 아직 자고 있는 두 아이를 그림자로 달고 앞만 보며 달린다.
처음부터 싸우기를 작정하고 운동화를 신은 건 아니었다. 대화는 “오늘 뭐 해 먹을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우린 서로에게 미루다 아직까지 누구도 해치우지 않은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둘째 여권 기간 만료된 거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던 너. 자동차 정기 점검 할 때 되었다는 얘기를 여름 내내 인사하듯 서로에게 건넨 너와 나. 목소리를 점점 키우다 못해 둘이 말로 짖을수록 내 달리기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아무리 도망쳐봤자 할 말이 떨어지지 않는 남편한테 금방 따라 잡힌다. “너 병원 정기 검진 날짜는 언젠데?” 그가 새로 물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인류연재] 달리기와 영영나는 대답 대신 속력을 높였다. 남편 목소리가 귀에 닿지 않을 만큼 멀어진 다음에야 슬쩍 뒤를 돌아본다. 남편이 아스팔트 길을 내려다보면서 걷고 있다. 무언가 들킨 사람처럼 고개를 든 그가 머리 위로 두 팔을 들고 휘젓는다. 가던 길을 마저 뛰다가 나는 다시 뒤돌아 달렸다. 남편을 결승선 삼아 그 옆에 섰다. 가민을 끄고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길을 숨 고르며 같이 걸어갔다. “던킨 도너츠에서 뭐 배달시켜 먹을까?”, “그냥 굶을까?”, “H마트나 갈까?” 아무 결정 없이 선택지만 늘리면서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이혜준(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