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처하는 것이다
신영의 세상 스케치 10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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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6-18 17:12본문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19-20)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가정에서 배우자와 자녀를 만나고, 교회에서 성도들을 만나며, 직장과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한다. 그런데 왜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할까? 그 이유는 대부분의 갈등이 사건 자체보다 우리의 ‘반응’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너진다. 기대했던 사람이 연락하지 않으면 서운함이 밀려온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비판을 들으면 즉시 방어하거나 공격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종종 상대의 행동에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상황을 분별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며, 지혜롭게 대처한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강한 관계의 비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인간관계는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처하는 것이다. 이 말은 감정에 휩쓸려 즉각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상황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선택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핵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응은 본능이지만, 대처는 선택이다. 반응(Reaction)은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면 즉시 화를 낸다.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해한다. 상처받으면 마음의 문을 닫는다. 반응은 빠르지만 지혜롭지 않다. 반면 대처(Response)는 가치와 신앙에 근거한 선택이다. 감정이 올라와도 잠시 멈추고 생각한다. “왜 내가 화가 나는가?” “상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감정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성령의 열매이다.
반응 뒤에는 상처가 숨어 있다. 우리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현재의 사건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과거의 상처가 현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작은 비판에도 크게 상처받는다.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사소한 거리감에도 불안해한다.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상대가 우리의 상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상처를 건드린 것일 수 있다.
인간관계의 문제는 단순히 상대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기 원하신다. 시편 147편 3절을 말씀한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행동만 변화시키시는 분이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을 만지시는 치유자이시다. 내가 치유될수록 관계도 건강해진다.
예수님은 반응하지 않고 대처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비난과 오해를 받으셨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했고, 군중들은 돌을 던지려 했으며,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떠났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셨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침묵하셨다. 십자가 위에서도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감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처하셨다.
관계의 주도권을 되찾는다. 우리는 상대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행동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선택할 수 있디. 내 감정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주지 말라.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 하루를 결정하게 하지 말라.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맡겨 드린다. 인간관계는 상대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이다. 반응하는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만, 대처하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할렐루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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