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는 ‘AI 중앙은행’인가…고객 돈줄까지 쥔 칩 제왕
칩 구매·데이터센터 건설에 최대 3,000억달러 금융 지원
AI 수요 둔화하면 매출 감소와 보증 부담 동시에 닥칠 수도
<보스톤코리아와 함께 읽은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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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명술 편집장 작성일본문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이제는 칩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사의 데이터센터 건설과 장비 구매에 필요한 자금까지 지원하고 있다. AI 산업의 돈줄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엔비디아를 ‘AI의 중앙은행’으로 부르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고객의 투자를 지원해 자사 제품 수요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AI 시장이 예상보다 느리게 성장할 경우 막대한 금융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9월 3일 엔비디아가 지난 3년간 AI 스타트업에 7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고객들에게 약 3,000억달러 규모의 금융 지원과 보증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가 AI 산업의 핵심 반도체 공급자를 넘어 투자자이자 대출 보증인, 최종 구매자 역할까지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보도
엔비디아의 기업가치는 현재 약 5조4,000억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이다. 기업가치가 처음 1조달러에 도달하기까지는 30년이 걸렸지만, 2조달러까지는 불과 9개월이 더 필요했다. 이후 2년도 지나지 않아 5조달러를 넘어섰다. 일부 분석가는 엔비디아의 연간 매출이 2029년 1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 같은 성장을 이끈 것은 AI 칩의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이다. 그러나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칩의 성능만으로 시장 확대를 기다리지 않고, 고객이 엔비디아 칩을 더 많이 구매할 수 있도록 금융 구조까지 직접 설계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8월 오하이오주에 건설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최대 1,050억달러의 지급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 소프트뱅크 계열사인 SB에너지가 소유하고 오픈AI가 임차할 이 시설에는 엔비디아 반도체 약 150만개가 들어갈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토지와 건물의 임대 계약은 물론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 구매 계약도 보증한다. 대신 해당 시설은 장기간 엔비디아 반도체를 사용하고,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여러 차례 장비를 교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는 아폴로와 블랙록, 블랙스톤, 브룩필드, 골드만삭스, KKR 등 월스트리트 대형 금융회사들과 함께 5,000억달러 이상의 AI 기반시설 투자를 끌어들이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 구조에서 연기금과 국부펀드, 보험회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별도의 투자회사를 통해 엔비디아 장비를 구입하고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 엔비디아는 초기 투자금이나 부채를 직접 부담하지 않는 대신, 일정 기간 뒤 반도체와 장비의 가치가 예상보다 낮아지면 전체 사업비의 최대 25%를 보전해준다.
엔비디아는 AI 연산 능력 자체를 부동산이나 항공기처럼 금융시장에서 거래하고 담보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자산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고객사의 데이터센터 매출을 보장하는 방식도 동원하고 있다. 자금력이 부족한 신생 클라우드업체가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면 엔비디아가 향후 약 6년간 일정한 가격으로 사용되지 않은 연산 능력을 사주겠다고 약속하는 구조다.
고객사는 미래 매출을 어느 정도 보장받기 때문에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그 자금으로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엔비디아 칩을 구입한다. 데이터센터 이용료가 약정 가격보다 높아지면 엔비디아도 차익의 일부를 가져간다.
호주의 AI 클라우드업체 샤론AI는 약 49억달러의 지원을 바탕으로 엔비디아 칩 약 4만개를 배치할 계획이다. 또 다른 업체 퍼머스는 최대 17만개의 칩을 구입할 예정이다.
엔비디아와 가장 밀접하게 얽힌 기업 가운데 하나는 AI 전문 클라우드업체 코어위브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에 2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지분 약 11%를 보유하고 있다. 코어위브는 엔비디아에서 칩을 구입해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며, 엔비디아는 코어위브가 판매하지 못한 데이터센터 용량을 2032년까지 최대 63억달러어치 사주기로 했다.
엔비디아가 투자한 기업이 엔비디아 칩을 구입하고, 엔비디아가 다시 그 기업의 미판매 서비스를 사주는 순환 구조다.
이 같은 전략은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들이 장차 강력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기도 하다. 아마존과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는 엔비디아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들 기업은 올해 AI 기반시설에 약 8,000억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대형 기술기업들은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자체 개발 칩의 가격은 엔비디아 제품의 5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이며, 특정 소프트웨어와 작업에 맞춰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구글은 이미 자체 AI 반도체를 앤트로픽에 공급하고 있으며, 아마존도 자체 칩 사업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는 자체 주문형 반도체가 전 세계 AI 프로세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약 40%에서 2030년에는 50% 정도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AI 기업 투자자가 된 엔비디아…올해만 58조원 쏟아부어엔비디아는 이에 대응해 대형 기술기업에 속하지 않은 AI 연구소와 신생 클라우드업체, 오픈소스 AI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성장할수록 엔비디아 반도체를 구매하는 독립적인 고객층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약 90개 기업에 투자했으며 이는 2년 전의 거의 두 배다. 올해 들어서도 이미 60여건의 투자를 결정했다. AI 코딩모델 개발업체 풀사이드의 소프트웨어 사용권을 60억달러에 확보하고 별도로 10억달러를 투자했으며, 오픈소스 AI 플랫폼 허깅페이스도 129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러한 금융 지원이 실제 시장 수요를 돕는 것인지, 아니면 엔비디아가 자사 제품을 구매할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포트리서치파트너스의 제이 골드버그는 엔비디아가 수요를 ‘가능하게 하는 것’과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직 그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구조는 1990년대 말 닷컴 거품 당시 통신장비업체들이 고객사에 돈을 빌려주면서 자사 장비를 판매했던 방식과도 닮았다. 당시 시스코와 루슨트 등은 통신업체에 수십억달러를 빌려줬지만, 예상했던 통신 수요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고객사가 파산하고 장비업체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엔비디아의 전략을 지탱하는 전제는 크게 두 가지다. AI 연산 수요가 계속 빠르게 증가하고, 엔비디아의 반도체가 수년 뒤에도 높은 자산가치를 유지해야 한다.
젠슨 황은 엔비디아 칩이 여러 곳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오랫동안 성능을 유지하기 때문에 대출 담보로도 충분한 자산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2020년 출시된 A100 칩은 지금도 수요가 있으며, 코어위브는 지난 8월 이 칩을 2029년까지 사용하는 계약을 발표했다. AI 산업의 대표 제품인 H100의 1년 계약 기준 시간당 임대료도 2023년 출시 당시보다 약 10% 하락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구형 칩의 가치가 유지되는 것은 AI 연산장비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 공급이 늘어나고 구글과 아마존, 오픈AI 등이 추론 작업에 특화된 자체 반도체를 확대하면 연산 서비스 가격과 중고 칩의 가치가 동시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엔비디아가 매년 더 강력한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점도 모순이다. 고객과 금융회사에는 구형 칩의 가치가 오래 유지된다고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제품을 대체할 신제품을 계속 판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AI 수요가 예상보다 둔화할 경우 위험은 더욱 커진다. 데이터센터 운영업체가 연산 능력을 충분히 판매하지 못하면 엔비디아는 약정에 따라 사용되지 않은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장비가격 하락분과 전력 계약 비용을 대신 부담해야 한다.
동시에 데이터센터 업체들의 신규 칩 주문도 감소한다. 엔비디아로서는 매출과 현금흐름이 줄어드는 시점에 고객에게 제공한 보증 부담이 현실화하는 이중 충격을 받을 수 있다. AI 수요가 붕괴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높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시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엔비디아가 향후 집행하기로 한 지분투자는 약 250억달러이며 부채는 약 330억달러다. 고객사에 제공한 잠재적 보증과 구매 약정은 약 3,000억달러에 달하지만, 일정한 조건이 발생해야 지급 의무가 생기기 때문에 대부분 재무제표상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다만 3,000억달러를 한꺼번에 부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계약 기간이 여러 해에 걸쳐 있고, 특정 고객이 데이터센터 임대료를 지급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업자를 입주시켜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엔비디아는 현재 현금과 유동성 자산 약 99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약 2,000억달러의 현금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AI 산업 전체가 붕괴하고 엔비디아의 수익까지 거의 사라지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회사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러나 금융 지원 규모가 계속 확대되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엔비디아는 AI 투자 붐의 가장 큰 수혜자인 동시에 그 붐에 필요한 자금까지 공급하는 최대 후원자가 됐다. AI 호황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칩 판매와 투자 수익을 모두 얻지만, 거품이 꺼질 경우 고객에게 넘겼던 위험까지 되돌아오게 된다.
엔비디아가 ‘AI의 중앙은행’이라면 지금 시장이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엔비디아가 공급하는 막대한 자금이 건전한 AI 수요를 키우고 있는지, 아니면 미래의 수요를 오늘로 앞당기고 있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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