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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연수생서 49세 소령 진급한 목사의 '슬기로운 미국생활'

미군생활, 뼛속까지 한국인이 미국 사회 이해하는 통로

미국사회, 실력 없어도 진심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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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6-02-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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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 브루클라인 비컨 스트리트에 위치한 늘푸른교회에서 만난 이진택 목사가 '슬기로운 미국생활'을 공개했다. 그는 49세에 소령에 진급했으며 교회 목회는 물론 미 육군 예비역으로 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10일 브루클라인 비컨 스트리트에 위치한 늘푸른교회에서 만난 이진택 목사가 '슬기로운 미국생활'을 공개했다. 그는 49세에 소령에 진급했으며 교회 목회는 물론 미 육군 예비역으로 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 육군 예비역(Army Reserve) 군목으로 복무 중인 이진택 목사(49)가 1월 27일 소령으로 진급했다.  이 목사는 “아미 리저브 7년차로, 처음에는 대위로 임명받아 입대했는데 이번에 소령으로 진급했다”고 말했다. 지난 7년 동안 4개 예비역 부대를 돌며 종교 서비스와 상담을 제공해왔다. 


이 목사는 최근 1년간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CPE 레지던시 프로그램(Clinical Pastoral Education Residency Program)’을 수료했다. 병원 환경에서 원목 역량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과정이다. 그는 “액티브 스테이터스(현역 복무)로 1년간 교육을 받았고, 보드 서티파이드 채플린(Board Certified Chaplain) 자격 과정도 진행 중”이라며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시점에 자연스럽게 진급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진급과 함께 새로운 임무도 주어졌다. 독일에 주기적으로 파견되는 임무가 3월부터 시작된다. 진급 후 미 동부 쪽 사령부에는 소령 임무지가 없어 독일에 있는 미군 주둔사단으로 배정받게 됐다.  3월부터는 세 달에 한 번씩 독일로 가서 6일동안 군목으로 근무한다. 군인들의 종교서비스와 카운슬링을 담당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이 목사가 군에 지원한 것은 7년 전 42세였다. 그에 따르면 군대는 의료관, 법률관 그리고 종교관의 경우는 나이 제한이 비교적 느슨하다. 현역은 42세, 예비역은 48세까지 입대 가능성이 열려있다. 더구나 “입대 전 직업 경력도 인정해줘 그는 소위 중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위로 임명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의 입대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신학교 재학당시 한국계 군 채용 담당자로부터 영주권을 받고 군에 지원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영주권을 받자마자 지원해 8년전 입대 허가를 받았지만,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영주권자들의 입대를 제한하는 정책을 채택하면서 입대가 취소됐다. 그러나 1년 후 군은 다시 연락해 입대를 허용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그가 군을 선택한 것은 ‘이민자로서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었다. 1999년 보스턴에 어학연수로 시작, 교회 활동을 하면서 야간 대학원 과정으로 신학을 전공했다.  전도사로서 담임목회를 맡아 15년을 이어왔다. 그러나 작은 이민교회의 현실 속에서 여러 일을 병행해야 했다. 그는 “청소도 하고 공항 라이드도 하고 식당에서 일도 하고, 우체부도 했다”고 털어놨다.  신분과 재정 문제는 이민자들이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그 어려운 시간을 주어질 때마다 ‘보스턴에 있을 가치가 있느냐’를 되뇌었고 “그에 대한 답이 제게는 분명했다”고 확고하게 말했다.


군복무는 ‘미국을 이해하는 통로’가 됐다.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만 생활하면 미국 사회와의 접점이 적다. 예비역 부대에서는 각자 자신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처음엔 군복 패치도 제대로 못달고, 영어도 ‘브로큰 잉글리시’여서 스트레스가 컸다”면서도 “군목으로서 3분 정도의 짧은 ‘Word of the day’라는 격려사를 하면 존중해주고 박수로 응답하는 것을 경험했다. 한국에서는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는 ‘열심히 하니까 진심이 통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여건이 안되고 실력이 모자라도 열심히 하면 절반의 크레딧을 주는 나라임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는 “뼛속까지 한국사람이지만 미국이 굉장히 희망이 있다고 많다”고 느꼈던 부분이다. 또한 미군이 스스로 악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자각 아래 “군이라는 조직 안에서 도덕성에 대해 비판하고 그런 것들을 대화하고 그걸 숙고하는 게 같은 선상에서 인상깊었다.”고 덧붙였다. 


군대에서 배운 가장 큰 장점으로는 ‘지휘체계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꼽았다. 그는 “군은 체계적으로 플랜을 세우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문화가 돌아간다. 그런 ‘브리핑·커뮤니케이션·평가’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군에서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차별도 겪었다. 훈련 초기에 한 동료 채플린이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대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동양인이 영어도 완벽하지 않은데 캡틴을 달고 있으니 불편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훈련을 함께 받으면서 결국 그분도 태도가 달라졌고 존중해줬다”며 “레이시즘은 어디에나 있지만, 적어도 제가 경험한 환경에서는 대화와 관계 속에서 유연해질 여지도 있었다”고 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보스턴 한인사회’로 넘어갔다. 그는 1999년 이후 보스턴의 한인사회가 “턴오버(구성원 교체)가 매우 큰 구조”라고 진단했다. “오래 살다가도 은퇴하면 애틀랜타나 플로리다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고, 교회나 단체도 생겼다 사라지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턴오버가 (보스턴 지역의) 숙명이어서 정말 어려움이 크다”는 그는 그럼에도 “뿌리를 내리고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분들의 역할이 크다”며 지역 언론의 지속성도 강조했다.


보스턴의 매력에 대해서는 ‘국제성’, ‘걷는 도시의 안전함’, 그리고 ‘시간이 쌓인 뒤 드러나는 친절’이라는 세 가지를 들었다. 그는 “겉으로는 서부처럼 먼저 말을 걸어오는 친절은 없지만,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다름을 존경하는 방식의 친절이 있다”며 “오래 살다 보니 이웃들과 식사 초대도 오가고, 눈이 오면 안부를 주고받는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깊게 관계가 쌓인다”고 말했다. 또 교회가 30년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건물주 교회측의 배려를 언급하며 “코로나 때도 재정 상황을 물어보고 렌트도 배려해줬다. 제가 경험한 보스턴에는 은혜가 있다”고 했다. 그의 가족 모두가 보스턴을 사랑하게 된 이유다. 


이 목사는 마지막으로 한인 1세들에게 리저브·내셔널가드 복무를 “현실적인 교육·경력의 통로”로 제시했다. 그는 “교육 혜택이 크고, MOS(군 직무)를 받으면 로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네트워크가 생긴다. 스테이트 잡 기회나 AGR(풀타임 군무)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특히 1세들은 한인 업종에 갇히기 쉬운데, 군은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여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들이 결정할 일이지만, ROTC 같은 길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며 “언젠가 중령 진급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가족과 함께 진급 세리머니도 하고 싶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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