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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고, 마포종점의 쓸쓸함을 알았다

고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에게 보내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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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7-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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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토요일 브루클라인에 위치한 보스톤한인교회에 마련된 장례예배에 웃는 사진과 유골로 참여한 고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7월 11일 토요일 브루클라인에 위치한 보스톤한인교회에 마련된 장례예배에 웃는 사진과 유골로 참여한 고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아내가 물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신을 사랑했던 일”이라고 답했다. 아들의 말처럼 그에게 세상의 중심은 아내였다. 


고 김화옥 칼럼니스트의 첫 기고는 ‘아내의 생일’이었다. 2012년 7월 청록의 계절에 아내에게 준비한 ‘서프라이즈’ 생일 선물이었다. “아내가 글을 읽으면 당황할 것”이라고 두근거려했고, 그러면 “자신이 더 당황할 것 같다”고 20대 청년 같은 풋풋한 마음을 담았다. 


평생을 실험실에서 보낸 생명공학자가 펜을 들고 가장 먼저 선택한 주제는 과학이나 거창한 담론이 아닌 ‘아내와 가족’이었다. 유난히 무덥던 그 여름 첫 선물 보따리를 풀어낸 그는 그해 가을 들어 ‘아들의 생일’을 아들에게 남겼다. 한담객설 특유의 따뜻하고 가슴을 적시는 감수성의 첫 발걸음들이었다. 이듬해인 2013년 1월부터 본격적인 연재를 시작했다. 


스스로 붙인 칼럼의 이름은 ‘한담객설’이다. 사전적 의미로 “격식을 차리지 않고 가볍게 나누는 농담이나 별 의미 없는 수다”를 뜻한다. 이름과는 달리 깊은 사색이 그릇이 됐다. 이민생활의 애환과 사랑하는 가족, 과학자로서의 통찰이 버무려져 매주 색다른 맛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늘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부드러우며 여유로운 글을 썼지만 과학자이자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김 선생 내면의 단단한 철학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의 그의 칼럼 ‘불광불급’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이민자인 한인들에게 그리고 무언가에 열정을 쏟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묵직한 동기부여를 안겼다. 


7월 11일 브루클라인 소재 보스톤한인교회에서 장례예배가 열렸다. 고 김  선생의 아들 김선우 박사는 조사에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아버지와 함께 새벽 4시에 맥도날드를 찾아 아침을 함께 먹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맥도날드 직원은 아버지 김화옥 선생을 알아봤다.  그러면서 "새벽 세 시까지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늘 웃는 청년이더라. 저런 사람은 무슨 일이든 반드시 해낼 거야."라고 말했던 김화옥 선생의 말을 전했다.  칼럼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그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김 박사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아내에 대한 사랑을 놓치지 않았던 아버지를 ‘로맨티스트’라 불렀다. 


그는 아버지를 “과학자였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회의론자였습니다. 동시에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고, 낭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잘 발견하는 사람이었습니다.”라고 표현했다. 


김 박사는 “아버지는 아름다운 것은 진실이어야 하고, 진실한 것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칼럼도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칼럼은 한담객설 특유의 구조가 있다.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문화를 발견하고 그 문화를 단단하게 다지는 철학으로 마무리된다. 생각하는 바를 우기지 않고 독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거기에 직접 그린 그림을 얹었다. 담백한 절밥 같았다고나 할까.


세월이 쌓이며 그의 글도 켜켜이 쌓였다. 600여편의 글이 14년여에 게재되면서 편집자에게도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당연한 일상의 일부가 됐다. 익숙하다는 것은 변화의 다른 이름이란 것을 우리는 늘 일이 발생한 후에 알아 챈다. 


지난해 12월, 600호를 기념하는 이메일을 받게 된 직후였다. 1월 “당분간 한담객설은 쉬어야 겠습니다. 제 몸이 여엉 시원치 않아서요. 그동안 ‘졸문’을 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레 연락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정말 예상치 못했던 메일을 받게 됐다. 말기암을 진단받았다는 소식을 그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필자의 친형, 장양술 장로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2026년 1월은 유난히 폭설이 많았다. 김화옥 선생은 한 칼럼에서 ‘유난하지 않은 여름은 없다’고 썼으나 실제로 유난하지 않은 계절은 없다. 도대체 쌓인 눈이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인도와 차로를 담벼락처럼 양분하고 있던 눈을 헤치고 브루클라인 브리검앤위민스 병원에서 김화옥 선생을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부쩍 여윈 김 선생과 커피를 맛있게 마셨다. 마치 한여름에 땀을 흘린 후 들이키는 맥주처럼 겨울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가 맛있었다. 눈 덮인 거리로 다시 나서기 전 김화옥 선생은 두가지 부탁을 어렵게 꺼냈다. 필자는 두가지 약속을 안고 거리로 나섰다. 


그의 마지막 칼럼은 ‘나빌레라’였다. 그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시련이 닥치면 나비는 과연 숨죽이고 견뎌낼 수 있을까” 였다.  그 뒤에 늘 그렇듯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는 로마서의 성경구절을 덧붙였다. 필자는 김 선생의 글을 되 읽으며 ‘견뎌낼 수 있을까’가 아닌 “소망을 이루는”에 큰 방점을 두었다. 너무 헛된 바램이었을까.


그의 장례예배는 성대했다. 150여명을 넘어 200명에 가까운 조문객들이 예배를 찾았다. 가족의 요청으로 장례장소와 시간도 부고에 넣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들 김 박사도 늘 책만 읽고 글을 쓰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장례식을 나서며 그의 칼럼 ‘마포종점’처럼 누구에게나 종점이 있음을 새삼 인식하게 됐다. 그러나 은방울 자매의 노래처럼 그 종점은 쓸쓸하거나 구슬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조문객들이 그의 길에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담객설을 통해 독자들은 늘 그를 기억할 것이다.


덧붙임. 가장 기억에 남는 칼럼 중의 하나는 ‘의리’였다. “사람과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는 정의다. 그는 칼럼에서 ‘의리’는 일본에서는 이름값으로 쓰인다고 했다. 그리고 칼럼의 마무리는 “의리는 이름값이다만, 바겐세일은 없다.”고 특유의 유머로 마무리했다. 바겐세일이 없는 김 칼럼니스트와 약속의 무게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무거워졌다. 그 무게의 일부를 이 ‘졸문’에 담는다. 어느새 유난히 더운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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