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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한 장의 무게, 올스턴 거리에서 마주한 냉혹한 현실

거절과 설득이 마주치는 현장, 서명 한 장 받기가 이리 어려울 줄이야

린다 챔피언 서폭지검장 출마 서명지 확보에 뛰어들어 본 하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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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6-04-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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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토요일 오후 올스턴 브라이튼 애비뉴에 위치한 산바다 레스토랑 앞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이들에게 서명을 시도했으나 단 한 사람도 성공하지 못했다
4월 11일 토요일 오후 올스턴 브라이튼 애비뉴에 위치한 산바다 레스토랑 앞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이들에게 서명을 시도했으나 단 한 사람도 성공하지 못했다

서폭지검장에 출마한 린다 챔피언의 1천 명 서명지를 모으는 일에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선거 당시 뉴햄프셔에서 풀뿌리 캔버스 활동을 벌인 이후, 선거운동에 직접 뛰어든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좋은 기억만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명 한 장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울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린다 챔피언 관련 기사를 쓰다가 무작정 메시지를 보내 “도와줄 일이 없는지” 물었다. 린다는 곧바로 올스턴 지역의 서명을 모아달라고 답했다.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 계산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4월 28일은 1천 명 서명지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이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실제로 서명지를 확보는 선거 초기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고된 관문 가운데 하나다. 린다를 뉴턴의 뉴잉글랜드 한국학교에서 만나 서명지를 받아 들고 올스턴으로 향하는 마음은 무거웠다.


필자 자신을 반추해봐도 확률이 적었다. 거리에서 이런 서명지를 내미는 사람들을 나는 늘 매몰차게 지나쳐 왔다. 그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돌아보면 나 역시 거리에서 이런 요청에 응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조건도 까다로웠다. 이름과 주소를 받아야 했다. 보스턴 거주자여야 하고, 18세 이상이어야 하며, 민주당 또는 무소속으로 등록된 유권자여야 했다. 함수로 치면 변수가 너무 많았다. 열 사람에게 말을 걸어 한 사람이 응한다고 해도, 그 한 사람이 다시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이러다 단 한 명의 서명도 못 모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행히 날씨는 좋았다. 그러나 시작부터 일이 꼬였다. 동행한 14세 아들 ‘건’이 제동을 걸었다. 한국가든에서 점심을 먹을 때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서명지를 모으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오늘의 과제가 서명 모으기라는 사실은 몰랐고, 단지 린다 챔피언 선거운동을 취재하는 일인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서명 모으기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아들 설득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돌파구는 있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인 2세 학생에게 먼저 서명을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용을 설명하고 간곡히 서명을 부탁하자, 잠시 망설이던 학생은 끝내 서명에 응했다. 첫 서명이었다.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 


거리로 나섰다. 바빠 보이지 않는 사람을 골라내는 ‘선구안’이 필요했다. 그런데 막상 거리로 나가 보니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모두가 어딘가를 향해 가는 곳이었다.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걸기가 무섭게 지나쳐 갔다. 곧바로 작전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 사람이 아니라 멈춰 서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건이를 재촉해 올스턴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산바다’ 음식점으로 향했다. 긴 줄이 늘어서 있을 것이고, 한인 비율도 높을 것이니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예상대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한 무리씩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유권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타주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고, 유학생과 연구원도 많았다. 단 한 사람에게서도 서명을 받지 못했다. 마침 길가에 정차해 있던 소방차에 한인 어린아이가 관심을 보이자, 인상 좋아 보이는 흑인 소방관이 친절하게 말을 받아주며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었다. 아이와의 대화가 끝나고 차에 다시 오르는 그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아이에게 그렇게 친절하던 그였지만, 서명지에는 난색을 보였다.


다시 하버드 애비뉴로 방향을 틀어 대기 줄이 긴 카페 위크엔드 앞을 공략하기로 했다. 한인보다 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편이 유권자를 만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봤다. 네 팀 정도와 접촉했지만 세 팀은 보스턴에 사느냐고 묻자 거주하지 않는다며 곧바로 등을 돌렸다. 보스턴에 산다는 사람도 서명지의 취지를 설명하자 바로 선을 그었다.


다시 브라이튼 애비뉴와 하버드 애비뉴를 오가며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햇살 좋은 오후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향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멈춰 서지 않는 사람에게 접근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전략을 다시 수정할 시간이었다. 적어도 심리적으로 안정된 공간이어야 했다. 식당 안이나 건물 내부처럼 자기 일을 하고는 있지만, 당장 다른 곳으로 이동할 부담은 없는 사람들을 공략해야 했다. 첫 서명이 나온 이유도 결국 그 때문이었다. 식당 안이라는 공간이 있었기에 말이 닿았고, 설명이 가능했다.


감자탕 전문점 한마루를 찾아 들어갔지만 보스턴 거주자는 없었다. 그때 문득 사람들이 꾸준히 드나드는 곳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오른 곳은 보스톤코리아가 입주해 있는 161 Harvard Avenue 건물이었다. 살사 댄스 교습소가 있고, 네일숍이 있으며, 매니아층을 겨냥한 옷가게도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고, 무엇보다 실내 공간이라는 점이 심리적 안정감을 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비교적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들 건에게서 나타났다. 아버지가 수많은 사람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더니, 어느 정도는 될 사람과 안 될 사람을 구분하는 감각이 생기기 시작한 듯했다. 그래서 “아빠, 저 사람은 될 것 같아. 안 될 것 같아” 하고 조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그럼 너도 한번 해봐”라고 하자,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시큰둥하던 그가 “내가 보여줄게요”라며 나섰다.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보스턴에 사세요?”라고 묻기 시작했다. 큰 도움이 됐다. 나는 우리가 린다 챔피언을 서폭지검장 선거 투표용지에 올리기 위해 1천 명의 서명을 모으고 있다고 설명한 뒤, 민주당 또는 무소속 유권자인지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면 그다음에 서명 가능 여부를 물었다. 거기까지 답하는 사람들은 실제 서명 확률이 훨씬 높았다.


물론 대부분은 보스턴 거주자가 아니었다. 서명을 받는 나조차 보스턴 거주자가 아니지 않은가. 케임브리지, 브루클라인, 뉴턴, 서머빌, 메드퍼드, 심지어 뉴햄프셔 거주자도 있었다.


뉴햄프셔 하원의원이라는 한 여성은 딸과 함께 있었다. 자신은 민주당원이지만, 딸은 보스턴에 거주하되 공화당원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서명 대상이 아니었다. 그 의원은 대신 조언을 건넸다. 서명을 받으려면 후보 프로필이 담긴 간단한 홍보지(Handout)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을 투표용지에 올리기 위해 서명한다는 것은 거의 그 사람을 찍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서, 그러려면 후보 프로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조언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보스턴 거주자이고 민주당 유권자이지만, 린다 챔피언이 어떤 사람인지 묻는 이들이 계속 나왔다. 성향이 어떤지, 어떤 이력을 가졌는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좀 더 검색해 본 뒤 판단하겠다며 정중하게 서명을 거절했다. 그 커플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상당수가 같은 질문을 던졌고, 잘 모르는 후보에게는 서명할 수 없다고 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두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대 백인 여성이었다. 서명 의사를 묻자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Absolutely”라고 말하며 바로 서명했다. 너무 시원했다. 그런데 마지막 주소를 적는 칸에 보스턴이 아니라 브루클라인이라고 적는 것이 아닌가. 결국 무효가 되는 서명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선뜻 응해 준 사람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중국계 남성 대학생 유권자였다. 보스턴에 사는 무소속이라고 답한 그는 린다 챔피언이 어떤 후보인지 물었다. 나는 현재 서폭지검장 선거 구도와, 린다가 현 지검장의 고문 출신이며 케빈 헤이든의 보스턴 경찰 기소 문제를 계기로 출마하게 됐다는 점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린다 챔피언이 과거 어떤 중요한 기소를 했고,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물었다.


나는 린다 챔피언이 과거 서폭지검 검사로서 어떤 사건을 맡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다만 내가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시민협회(KACL) 회장으로서 비영리단체 전환, 아시안 커뮤니티와의 교류 활성화, 2세대 전환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들을 보면 린다가 서폭지검장으로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KACL을 검색했다. 그 사이 나는 린다에게 메시지를 보내 프로필의 필요성을 알렸다. 린다는 즉각 장문의 프로필을 보내왔다. 제목은 “헌병의 딸 린다 챔피언”이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마침내 서명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분명했다. “린다가 중국계 커뮤니티에도 다리를 놓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점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똑똑한 친구네. 아주 분명하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모습을 아들이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스쳤다.


성공보다 실패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총 서명은 겨우 7개에 머물렀다. 그러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도 햇살은 여전히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옆에 앉은 아들 건이가 말을 건넸다.


“아직도 해가 있네요. 오늘 하루는 정말 많은 일을 했는데…. 그래도 정말 프로덕티브한 하루였네요.”


아침에는 한국학교 친구와 함께 김구 선생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자리를 옮겨 올스턴 거리에서 서명지를 받는 활동까지 했으니 그에게는 긴 하루였을 수밖에 없었다. 95번 노스가 사고로 막혀 구글은 로컬도로를 안내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상하게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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