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차별할 수 없지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신영의 세상 스케치 10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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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영 칼럼니스트 작성일본문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 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 1:9-10)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 한쪽은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차별의 태도이다. 다른 한쪽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무조건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분별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경계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지만 모든 것을 허용하지는 않으셨다. 사람은 사랑하되 죄는 미워하셨고, 죄인은 품으셨지만 죄는 책망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로마서 2장 11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니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학력을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재산을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인종을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회적 지위를 보지 않으신다. 세상은 사람의 조건을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사무엘상 16장 7절을 보면, “여오화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예수님께서도 세리와 창녀, 어부와 병자, 어린아이와 과부를 차별하지 않으셨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우월감도 없어야 하고, 열등감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들인 까닭이다.
사랑은 분별력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분별을 반대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사랑은 분별력을 포함한다. 빌립보서 1장 9절의 말씀처럼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바울은 ‘사랑만 풍성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지식과 총명을 가진 사랑’을 기도했다. 왜일까? 사랑이 분별력을 잃으면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분별은 정죄가 아니라 지혜이다. 마태복음 10장 16절을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순결함만 가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혜도 함께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분별은 누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분별은 우월감을 갖는 것도 아니다. 분별은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분별은 하나님이 맡기신 삶을 지키는 지혜이다.
사람과 행동을 구분해야 한다. 성숙한 신앙은 사람과 행동을 구분할 줄 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죄는 인정하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8장 11절을 보면,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최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사람은 사랑하지만 죄까지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은 존중해야 한다. 악한 행동은 거절해야 한다. 사람은 품어야 한다. 해로운 영향은 멀리해야 한다.
분별 없는 사랑은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 사람을 돕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돕는다는 이름으로 계속 이용당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 예수님도 때로는 떠나셨다. 마가복음 1장 35절로 38절까지 말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지만 예수님은 다른 마을로 가셨다. 왜일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랑이다. 할렐루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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