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spora의 이방인 3편- 문자족계(聞者足戒)
diaspora의 이방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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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스톤 작성일 26-07-01 18:38본문
비참한 말로 참흑한 전쟁
사제가 전쟁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쟁은 목숨 붙어있는 자의 마지막 발악,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모두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궤적을 보면 개인은 윤리와 도덕을 따지고, 국가는 질서와 규범을 강요하지 않았나? 그러면 그 모든 게 뭐란 말인가?“ “그것은 평정을 유지하고 있을 때입니다. 지금은 서로의 목적을 위해 상대의 가장 귀중한 것을 파괴하는 마당에 승리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합니다. 전쟁에서 윤리와 도덕을 따지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생각입니다. 전쟁은 옳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느냐 죽느냐 아닙니까?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무슨 인륜 도덕과 법입니까?” “그러하네만, 인간은 질서로 만들어져 선후의 절차를 따르지 않았는가. 마지막이란 것도 결국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아휴! 모르겠습니다. 내가 먼저 쏘지 않으면 먼저 죽습니다. 여기에 무었이 남습니까?” 협상은 죽음에 비해 살아남은 자의 흥정에 불과합니다.“
맞는 말이며, 틀린 생각이기도 하다. 전쟁은 이길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하지 않을 궁리를 해야 한다. 인간이 군집 생활한 이래 나고 죽는 일(생사)도 용례에 따라 치렀다. 그런데 이 전쟁이라는 막돼먹은 짓 앞에서는 인간이 이룩해 놓은 모든 문명이 파괴된다. 생사 앞에서는 유무형의 전제가 사라진다. 죽음조차 관습으로 맺었는데 전쟁은 그조차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죽은 이후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참으로 경악스러워 형언할 수조차 없다. 생각의 깊이와 고저장단 시비의 척도 모두 패자와 더불어 사라지지만, 승자는 사라진 자의 모든 것이 전리품이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무기를 더 많이 더 크게 파괴하고 만든다. 파괴된 땅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방치될 것이다. 이게 뭐냐는 거다. 누구도 득을 본 쪽이 없다.
그래서 대안으로 만든 것이 경기다. 전쟁을 대신한 룰(Rule) 겨루기. 승패를 나누는 모든 스포츠와 삶 자체가 전쟁의 대리전이다. 축구, 배구, 월드컵과 올림픽 하물며, 세미나 페스티벌, 평가받는 시험, 새로운 기술, 발전을 위한 발명, 회담, 협상, 인류가 집체에서 가용 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무한경쟁이며, 그 마지막이 전쟁이다. 끔찍하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같은 말을 미화하는 덕을 가졌다. 광고다. 포장한다. 옷 입듯이 화장한다. 모두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길(道)은 걷는 사람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는다. 길은 길이 만든 것이 아니며, 나를 밟아주어 고맙다고 말하지 않으며, 사람 발바닥 위로 기어오르거나 피곤하니 업어달라 보채지 않는다.
무위지치(無爲之治)의 위정
세계사를 보면 식민지하에 있던 많은 나라가 수직관계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회주의 빼고 모두 수평 관계다. 평등을 전제한다. 따라서 갑질은 할 수도 당하지도 않는 구조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K-민주주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평등한 국민이란 뜻이다. 그래서 한나라 한민족이라 한다. 이는 근 현대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렵다. 한국만이 유일하다. 이 자부심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이 친일 매국노들과 그 앞잡이 역할 했던 종놈들이다. 이들은 법과 인권 유린했다. 보수나 수구는 그 민족의 유구한 전통과 정의를 수호한다. 그러나 오늘의 극보수 극좌 자처하는 자들이 그러한가? 자국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바른지 모르고, 꽃 한 송이 숭배하는 천민자본주의에 눈먼 꼰대 아닌지 의심스럽다. 법고창신으로 선대의 유구한 궤적에서 배우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집단지성의 바른 태도다.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老子가 말하는 만물의 생성 원리 변화의 시작이다.
방(榜) 공문
구성원 전체에게 공개되지 않은 문서는 공문이 아니다. 문제 많은 단체의 내부에서 편법이 심한 이유는 공문이랍시고 만들어 공개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꼼수 부리는 일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시간에 대한 것이며, 둘째는 대상이 변경된 경우고 셋째는 내용 수정이다. 기타 다른 이유로 만들었으니 공개하지 못하고 어수룩한 개인에게 뒤로 돌리는 것이다. 단체에서 이렇게 하면 공신력이 사라진다. 부서는 반드시 그 시점에 만들어져 담당자와 전결권자의 최종 서명이나 직인 있는 문서로 전체 구성원에게 공개되어야 공문의 효력을 가진다. 당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문서가 몇 달 혹은 몇 년 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부서명-일련번호(발행일자)로 기록의 중요성을 보존한다. 기록 없는 단체는 기둥 없는 집과 같다.
하방연대 풀뿌리 조직(Grassroots Organization)
민간단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 중에는 동포는 도탄에 빠져있는데 저희만 둘러앉아 잔치 벌이는 꼴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분도 있다. 한인회는 주제국 미국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 의미는 750만 동포의 공동체를 결속하고 한인의 권익 보호를 대변하며, 나아가 미래세대가 거주국 주류 사회에 동참하게 하는 가교역할 하기 위한 한민족 공동체의 전초기지 자율단체이다.
한인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일궈 낸 흔적은 자랑스럽고 존경할 분들이 많다. 그 한분 한분의 이야기가 미주 이민사며, 그분들의 몸에 밴 검소한 실천이 삶의 본보기인 분들이다. 필자가 언급하는 미주 총연의 문제는 불특정 집단에서 1,600여 명의 전 현직 한인회장 구성 요건 중에 파생된 일부분이다. 한인회는 법적 권한이 없는 민간 자율 자생 하방연대의 풀뿌리 봉사 단체이다. 따라서 행정력과 정치적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다만, 상식과 도덕에 근거해 회칙에 의한 자율 규제이다. 이를 대한민국 외교부가 재외 동포의 포용법에 명시된 한민족의 웅비로 어깨동무하며 동질성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여기에는 각 대륙에 퍼져있는 동포 중 재외국민 영주권자와 각 나라 시민권자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해 바르게 국위 선양하고 흩어진 동포의 역량을 모으자고 한민족의 큰 집체를 형성한 이름이 한인회이다. 누구도 강제할 수 없으며 법적 권한도 없다.
“대립과 갈등이 있어야 더 나은 정책이 나온다.”
“서로 경쟁해야 발전한다.”
즉, 제도를 정의하지 못하는 단체나 국가는 반목하기 쉽다. 규정(rule)이 불명확하니 문제가 발생하고, 회칙이 자주 바뀌며 총회장이 바뀔 때마다 제도가 뒤집히는 것이다. 타협을 강제하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정당이든 단체든 협상 구조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에 그때마다 땜질식의 보수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양극화 없이도 상생하며 잘 사는 나라 많다. 불필요한 이론으로 없는 현상 복잡하게 포장하는 말 만들어 헷갈리게 하는 부분도 문제다. 개인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지만, 집단은 이해관계 때문에 말이 달라지고, 그게 결국 다른 문장으로 변질된다.
29대 중반 무렵 변재성, 김도수 회장께서 주도하는 풀뿌리 운동(Grassroots Movement)이 발족했다. 풀뿌리는 말 그대로 현직 한인회장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정작 현직 한인회장들은 무감각했다. 자발적으로 힘을 합쳐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향식(Bottom-up) 사회 변화를 끌어내는 활동이라 현직 회장의 주 의제였지만. 논쟁만 남기고 배척되다시피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총연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다. 변재성 회장께서 주장한 것은 현 지역 한인회장인 현직 한인회장이 주체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총연의 노장들이 달가워할 리 없었다. 변재성 회장도 젊은 분이 아니었지만, 개혁가였다. 변화를 유도할 혁신가.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인 현직 회장들이 먼 산 바라보는 꼴이었다. 필자는 견제당한 것으로 보았다. 공동체가 다른 시그널(풀뿌리 운동)로 채널 바꾸면 힘이 전이되기 때문이다.
총연은 분할통치(Divide and rule)로 현직한인회장협의회를 이용해서는 안된다. 현직이 잘할 수 있도록 원로도 제 역할을 하고, 현직은 선배를 예우할 때 그게 제대로 된 거대 미주 총연의 모델이다. 물론 총회장은 경륜과 덕 겸비한 전직 회장이 하는 것이 맞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총회나 행사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난전이 섰다. 만남은 이유를 불문하고 아름다웠다. 지긋한 연륜에 적절히 배인 예(禮)는 농염함을 넘어서고 있었다. 서로가 이방인이었지만 모두 낯 익었다. 여성 회장의 아름다운 미모와 넘치는 커리어는 자유의 여신상에 비할 바 아니었다. 박가분에 황진이가 사용했다는 사향은 프로럴 계열이 아니었다. 젠더를 향해 던지는 치명적인 스킬은 팜므파탈이 무색할 정도였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도도했다. 모두 영포티였다.
사내의 예리한 촉은 코다. 개코 !! 먼발치로 스치기만 해도 낙상이었다. 포마드에 동백기름으로 연막 피웠으나 가령취(노인 냄세)를 감추지는 못했다. 그래도 신사였다. 젠틀맨!! 유기체가 육감으로 만들어내는 농후한 후각은 촉수로 상대를 더듬었다. 이만하면 미주한인회장님들 멋졌다. 지상 최고의 나라 미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인데 이 정도는 되어야 사내다웠고, 모두 가인이었다. 이런 맛에 모이는 것이지. 요즘 세상에 먹고 놀기만 했것어! 사진도 한 장 박았것제!!
가라사대...
늘 말하면서도 말하기 꺼리는 종교가 예수 가라사대이다. 이런 현상은 사이비 목사나 가라 신자일수록 더하다. 습관이다. 입술에 하나님 예수, '아멘'을 달고 산다. 미안하지만 진정성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싸구려의 공통 습관이다. 가발 쓴 중이 비 맞은 것 같다. 궁시렁궁시렁... 진정성이란 결정적일 때 차분히 해야 울림을 준다.
기독교와 이스라엘이 외면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두 같은 피조물인데,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탄, 마귀라 미사일로 팬다. 예수와 하느님이 목사와 성도 피해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잡히면 큰일이다. 귀 기울여 듣는 자가 말하는 자로 둔갑한 것이 이 집안의 우환이다. 좋은 일 하면서 나쁘게 보지 말라는 말은 부정적인 일 하면서 좋게 보아 달라는 말과 같다. 이 말은 아이를 계속 때리면서 울지 말라는 소리의 다름 아니다.
다음 편에 계속
※ 첨언/ 본 칼럼은 필자가 민간 자율 단체인 미주한인회 언저리에서 활동하며 격은 느낌을 옴니버스(Omnibus)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메인 타이틀 「diaspora의 이방인」 아래 각 편의 소제목을 붙여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서 천
미주한인회총연합회 29대 기획조정실장
미연방총한인회 기획수석
미주현직한인회장협의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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