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드프랭크법의 저자 MA주 전 연방하원의원, 바니 프랭크 별세
미 의회 최초 자발적 커밍아웃 의원, '도드-프랭크 법'으로 금융개혁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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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새벽 기자 작성일본문
매사추세츠를 32년간 대표한 민주당 연방하원의원이자 게이 인권 운동의 선구자, 그리고 한 세대 최대 규모의 금융개혁을 이끈 진보 정치인 바니 프랭크 전 의원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32년간 연방의회에서 활동했던 그는 남편과 함께 메인주 오공큇으로 이주했으며, 지난 4월 울혈성 심부전으로 호스피스에 들어갔다. 남편과 누나인 민주당 베테랑 전략가 앤 루이스가 유족으로 남았다.
WBUR에 따르면 스스로를 "왼손잡이 게이 유태인"이라고 칭한 프랭크는 신랄한 재치와 호전적인 스타일, 그리고 소외된 공동체에 대한 지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진보층을 대변하면서도 민주당 지도부와도 가까운 균형잡힌 의정활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무엇보다 엘지비티(LGBT) 인권의 개척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수십 년간 자신의 성 정체성과 씨름한 끝에 그는 1987년 공개적으로 게이임을 밝혔다. 자발적으로 커밍아웃한 최초의 미국 연방의원이었다. 2012년 현재의 남편 레디와 결혼하면서 동성과 결혼한 최초의 현직 연방의원이 되기도 했다.
호스피스에 들어가기 직전인 지난 4월 인터뷰에서 프랭크는 자신이 진보적 이상을 추구하되 유권자들에게 그것을 너무 성급하게 강요하지 않는 정치 스타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개선, 특히 경제적·사회적 불공정을 줄이는 것을 당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전통적인 정치적 수단을 통해서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진보적인 좌파들과의 일정한 거리두기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1940년 뉴저지주 베이욘에서 태어난 프랭크는 2015년 회고록에서, 시카고 출신의 14세 흑인 소년 에밋 틸이 미시시피주에서 백인 남성들에게 린치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공직에 끌렸다고 밝혔다. 그는 1964년 '프리덤 서머' 기간 미시시피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1968년 케빈 화이트 보스턴 시장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72년 매사추세츠 주하원의원에 당선됐고, 1980년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다.
프랭크의 실용적 스타일은 의정 활동 초기부터 드러났다. 한 대규모 세제 개편안 때 그는 최고세율 인하에 반대해 '반대' 표를 던질 생각이었으나, 저렴한 주택 세액공제를 늘리는 합의를 끌어내자 마음을 바꿨다. 그는 "어차피 내가 있든 없든 법이 될 법안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내 이념적 순수성은 기꺼이 희생할 수 있었다"고 썼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전기요금 크레딧 돌려 받는다...힐리 주지사 즉시 환급요구전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프랭크를 "더할 나위 없는 이상주의자"라고 평하며 "목표, 비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가능성에서 그를 능가할 사람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워싱턴 초기 시절 프랭크는 일종의 이중생활을 했다. 사적으로는 워싱턴 디시의 게이 커뮤니티에서 교류했지만 공개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1987년 한 기자가 그의 사무실에서 공식적으로 게이가 맞는지 물었을 때, 프랭크는 "예, 그래서요?"라고 답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 덕분에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 정치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게이 지도자가 됐다. 그는 에이즈 관련 예산 확보에 기여했고,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에 군대 내 게이 복무 금지 정책 철회를 압박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저점도 있었다. 1985년 그가 고용한 남성 성매매자와 관련된 부적절한 판단으로 1987년 하원으로부터 견책을 당했다. 당시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더 강한 처벌을 시도하기도 했다.
프랭크는 의회에서 가장 인용할 만한 의원 가운데 한 명으로도 알려졌다. 낙태 문제와 관련해 그는 공화당이 "생명은 수태에서 시작해 출생에서 끝난다고 믿는다"고 꼬집으며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 추진을 비판했다.
2007년 프랭크는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이 됐고, 미국 경제가 붕괴를 향해 치닫는 가운데 그는 정책적으로 가장 오래 남을 족적을 남기게 된다. 초기 위기가 진정되자 프랭크는 뉴딜 이후 가장 의미 있는 개혁 입법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코네티컷주 민주당 크리스 도드 당시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만든 '도드-프랭크 법(Dodd-Frank Act)'은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은행에 새로운 자본 요건을 부과했으며, 규제 당국의 위험 감독 능력을 확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동안 공화당 행정부는 이 법안의 많은 조항이 너무 부담스럽다며 되돌리는 작업을 벌여왔다.
프랭크는 2010년 티 파티 운동으로 인해 수년 만에 가장 힘든 재선 캠페인을 치른 뒤 2012년 재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의회를 떠난 뒤로도 정치에 깊이 관여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매서운 비판자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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