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4) |
보스톤코리아 2023-11-13, 11:27:39 |
561년경 어느날, 지소태후(지소는 제24대 진흥왕의 모후이며, 세종의 어머니이다. 진흥왕의 아버지는 지소의 숙부인 입종이고, 세종의 아버지는 이사부이다) 는 진골귀족의 미녀들을 궁중으로 모이게 하여 아들인 세종이 누구에게 마음을 주는가 시험해 보았다. 세종의 눈과 마음은 단연코 군계일학같은 미실에게로 쏠렸다. 한편 미실의 외할머니인 옥진은 미실에게 색도와 가무를 가르쳐 자신의 인맥姻脈인 대원신통의 도道를 이으려고 했는데, 왕후나 후궁도 아닌 전군殿君의 부인으로 들어가게 되는 그녀를 보고 많이 상심하였다. 그러나 미실은 자신의 도는 색공에 있는데 어찌 임금을 받들지 못하겠느냐며 오히려 외조모 옥진을 위로하였다. 이에 옥진은 자신들의 도道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미실을 보고 기뻐하며 근심을 떨쳤다. 세종이 그 많은 미녀들 중에서 미실을 가장 좋아하게 되자, 지소는 진흥왕의 의견을 물었다. 왕은 모후가 정할 일이니 자신과는 무관하다며, 다만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 이사부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하니, 지소는 곧 이사부를 불러 며느리를 얻는데 지아비와 의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사부의 의견을 구하자, 이에 이사부는 “폐하의 집안 일에 어찌 감히 말씀드리겠습니까” 라고 대답하면서, 아들의 혼사임에도 세종을 전군殿君으로만 대하며 칭신稱臣의 자세를 유지했다. 세종이 미실을 가장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지소는 탐탁치 않았다. 이는 미실이 박영실의 외손녀이기 때문이었다. 박영실과 옥진은 부부이고 그들 사이에서 묘도가 태어났으며, 묘도가 2세 풍월주 미진부와 혼인하여 미실을 낳았다. 지소는 첫 남편(숙부이기도 하다) 입종이 조졸하자 아버지 법흥왕의 명으로 박영실을 계부繼夫로 맞이하였다. 그런데 지소는 영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법흥왕의 명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왕위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인 정적政敵이었다. 게다가 미실은 대원신통의 인맥姻脈이기에, 지소 자신이 종주宗主인 진골정통과 왕실에 왕비나 후궁을 공급하는 인통姻統의 경쟁관계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에 이사부는 지소태후에게 박영실은 법흥왕의 총신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종이 미실을 좋아한다면 사도왕후(진흥왕의 왕비이며, 부모는 박영실과 옥진이다. 즉 미실의 이모이다) 도 위로할 수 있으니 적합하다고 말했다. 마침내 지소태후는 미실로 하여금 입궁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미실은 첫사랑 사다함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세종에게로 갔다. 입궁한 미실은 세종전군을 교태로 섬기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상통하였고, 세종은 그녀에게 깊이 빠져들어 기동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지소태후는 세종이 감당하지 못할까 크게 염려하였다. 그때 지소는 자신의 딸인 숙명공주를 진흥왕의 비로 삼으려는 계책을 꾸미고 있었다(숙명공주의 부모는 이사부와 지소이고, 진흥왕의 부모는 입종과 지소이다). 즉 사도왕후를 폐하고 숙명을 왕후로 삼아 자신의 인통姻統인 진골정통으로 인맥姻脈을 이으려고 하였다. 이 계책의 비밀을 입수한 미실은 이모인 사도왕후에게 고했다. 그러자 사도왕후는 진흥왕에게 호소했고, 진흥왕은 원래 사도를 총애하였지만, 모후의 의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도왕후를 더욱 사랑하였다. 지소는 자신이 세운 계책이 무위로 끝나자 미실을 입궁시킨 걸 후회하였다. 미실을 불러서 “너로 하여금 전군을 받들게 한 것은 단지 옷을 드리고 음식을 받드는 것이다. 그런데 감히 사사로이 색사色事로 전군의 성정을 어지럽혔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고 꾸짖으며 미실에게 출궁을 명하였다. 그러나 미실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궁궐을 나와서 곧장 옛 연인 사다함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못다한 사랑을 나누며 심지어 부부가 되기로 약속하였다. 한편, 지소태후는 기어이 자신의 계획대로 아들 진흥왕과 딸 숙명공주를 혼인 시켜 숙명을 왕후로 삼았지만, 진흥왕은 숙명을 (부인으로) 좋아하지 않았고, 사도왕후를 더욱 사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흥왕과 숙명왕후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가 정숙태자貞肅太子인데 생몰년은 미상이며 조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도왕후의 장남 동륜이 566년에 태자에 책봉되었다(정숙태자가 사망하였기에 동륜이 태자에 책봉되었다는 설과 정숙태자가 어머니 숙명의 폐위로 인해 함께 폐위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편 진흥왕의 사랑을 받지 못한 숙명은 당시 궁궐에 들어와서 지소태후의 총애를 받고 있던 이화랑을 사랑하였다. 이화랑은 초대 풍월주 위화랑의 아들인데, 12살에 3세 풍월주 모랑毛郞의 부제에 발탁되었다. 피부가 옥과 같이 부드럽고 미소 짓는 눈은 꽃과 같았으며, 음률과 문장을 잘했다. 수려한 젊은 이화랑은 문무를 겸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소태후가 궁으로 불러 딸들인 황화黃華, 송화松花, 숙명공주叔明公主와 어울리게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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