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같은 그녀 |
신영의 세상 스케치 907회 |
보스톤코리아 2023-10-02, 11:28:06 |
"나는 그림이랑 결혼했는걸!" "언니, 정말 제대로 된 연애는 해보긴 해본 거야?" 이렇게 열정적인 두 여자의 대화는 시작된다. 어떤 일에 있어 거침이 없는 한 여자와 다소곳하지만 깊은 우물 속 샘물 같은 속 깊은 한 여자가 만나면 둘이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세상 나이 오십 중반에 있는 멋진 미혼인 아가씨 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 나이 든 노(老)처녀가 아닌 언제나 이슬 같은 노(露)처녀다.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아이처럼 해맑고 순박한 순백의 영혼을 가진 화가 유수례님이 바로 그녀이다. 처음에는 그림이 좋아 화가인 그녀를 그렇게 관람자로 만났다. 그렇게 서로를 천천히 알아가며 그녀가 살아온 어린 시절의 얘기와 한참 잘나가던 때의 얘기는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평상시에는 말이 없고 조용한 성품의 그녀가 그림 얘기만 나오면 아니 그림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그녀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그녀에게서는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가끔은 그 매력이 지나쳐 마력마저 느껴지는 묘한 에너지가 그녀에게 숨어 있다. 그래서 글쟁이인 나는 평범하지 않은 오십 중반에 있는 노처녀 화가의 보이지 않는 속내가 그녀의 깊은 생각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녀의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은 참으로 가난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깊어 맑은 영혼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한국에서 유명한 꼽추화가 손상기 화백이었다. 그녀는 그의 수제자였고, 가르치는 스승과 배우는 제자는 닮음꼴이랄까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대단했단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가난했던만큼 그녀의 그림에서도 떨쳐버릴 수 없는 외로움과 깊은 고독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움츠려들지 않고 도망치려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림으로 표현하며 승화시켜온 것이다. 그녀는 오래전 한국에서 손 화백과 함께 한국의 달동네를 처음 화폭에 담아냈던 화가라고 한다. 그 달동네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수십 번 수백 번씩 달동네를 수없이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사람과 삶을 솔직하고 진실하게 캔버스에 담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처럼 처음에는 사실화로 출발하여 구상화까지 많은 달동네를 탄생시켰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작업실에는 입시생들이 많았으며 가르치던 제자들 중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그 감격이란 정말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단다. 여느 사람들보다 예술가들에게서 느껴지는 특별한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멈추지 않는 아니 멈출 수 없는 타오르는 창작의 열정 활활 타오르는 그 열정의 불꽃일 것이다. 설령 그 불꽃에 제 살갗이 데일지언정 그 데인 상처 자국으로 더 깊은 영혼의 불꽃 심지를 만드는 그 예술혼은 가히 보는 이로 하여금 말문을 닫게 한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창작에 대한 불꽃으로 있으면서도 가끔은 무엇인가 덜 채워진 것 같은 허기를 느끼고 있었던 차에 미국에 친지들도 있고 몸도 마음도 식힐 겸 여행을 왔다가 그만 그림 공부를 더 시작하게 되었단다. 그렇게 공부를 마치면 돌아가자던 것이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언젠가 둘이서 바닷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하루였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에 눈감고 귀 기울이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기분이 맑아지는 그런 인적이 드문 어느 하루의 오후였다. 그렇게 한참을 앉았다가 우리 둘이는 고운 햇살 아래 반짝이는 하얀 모래밭을 걷게 되었는데 언니는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들락거리는 바닷물과 이리저리 휘도는 바람과 사정없이 내리붙는 땡볕에 씻기고 깎이고 바랬을 볼품없는 나무 조각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언니의 갤러리를 들르게 되었는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 허름했던 나무 조각이 작품이 되어 갤러리를 지키고 있지 않던가.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보자면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그녀다. 하지만 가지지 않아 더욱 많이 가진 그녀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녀는 욕심이 없는 '가난한 부자'인 까닭이다. 남들이 쉬이 가질 수 없는 넉넉하고 풍족한 마음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에게서는 어머니 품처럼 푸근함이 있는가 하면 한겨울 처마 밑의 고드름처럼 차갑고 냉정한 구석도 함께 있다. 그녀에게서는 알 수 없는 남다른 매력이 있다. 조용하면서도 활달하고 천상 여자 같으면서도 때로는 호탕한 남자 같은 그런 매력이 있는 그 매력이 깊어 마력이 있는 아주 멋진 이슬 같은 노(露)처녀인 그녀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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