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남모南毛와 준정俊貞(1) |
보스톤코리아 2023-09-18, 11:18:46 |
먼저 삼국사기(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흥왕 37년) 에 <화랑을 받들다>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기록을 인용해 본다. 진흥왕37년은 576년이다. <37년 봄에 처음으로 원화源花를 받들었다. 처음에 임금과 신하들이 인재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근심하다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리를 지어 놀게 하고 그 행실을 관찰한 연후에 발탁해서 등용하고자 하였다. 마침내 미녀 두 사람을 뽑았는데, 한 사람은 남모南毛이고, 또 한 사람은 준정俊貞으로 무리 3백여 인을 모았다. 두 여자가 아름다움을 다투고 서로 질투하였는데,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한 뒤 억지로 술을 권하여 취하게 되자, (남모를) 끌고 가 강물에 던져 죽였다. (일이 발각되어) 준정은 사형에 처해졌고, 무리들도 사이가 나빠져 흩어졌다. 그 후에 다시 미모의 남자을 선발하여 곱게 꾸미고 화랑花郞이라 이름하고 받들었는데,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 혹은 도의道義로써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써 서로 즐겨서 산과 내를 찾아노닐며 멀리까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의 그릇됨과 올바름을 알게 되어, 훌륭한 자를 발탁하여 조정에 천거하였다. 이런 까닭에 김대문金大問의 화랑세기花郞世紀에는 “현명한 보필자와 충성스러운 신하가 여기에서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졸이 이로부터 생겨났다(현좌충신종차이수 양장용졸유시이생賢佐忠臣從此而秀良將勇卒由是而生, 현좌충신양장용졸)” 라고 하였다.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鸞郞碑 서문序文에는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었는데, 풍류風流라고 이른다. 교화를 행하는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仙史에 자세하게 갖추어 있는데, 실로 이에 삼교三敎를 포함하여 중생衆生들을 접하여 교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들어와서는 집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라고 하는 것은 노魯나라 사구司寇의 가르침이다. 무위無爲의 일에 처하고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周나라 주사柱史의 본뜻이다. 갖가지 악惡을 행하지 말고 갖가지 선善을 받들어 행하라고 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의 교화이다” 라고 하였다. 당唐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국기新羅國記에는 “귀인貴人 자제子弟 가운데 아름다운 이를 선발하여 분을 바르고 곱게 꾸며 이름을 화랑花郞이라고 하였는데, 나라 사람들이 모두 떠받들며 섬겼다” 라고 하였다.> 진흥왕 삼맥종은 540년(7세 – 삼국사기, 15세 – 삼국유사)에 즉위하였다. 그리고 인재들을 바르게 등용하려고 젊은이들을 무리지어 놀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를 여자로 하면서 원화라고 이름하였다. 수장이 한 명이었다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미녀 두 명이다가 보니 문제가 생겼다. 시기와 질투는 죽음을 불러왔다. 준정은 남모를 살해하였고 준정 역시 사형당했다. 그리고 원화제도는 폐지되었고, 즉 낭도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를 여자에서 남자로 바꾸어서 화랑花郞이라고 하였다. 576년 봄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런데 576년은 진흥왕이 사망한 해이다. 그리고 신라인 김대문의 화랑세기에는 화랑의 설치 년도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달리 540년에 설치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화랑세기의 기록으로 보면 576년에는 이미 7세 풍월주인 설원랑이 화랑의 우두머리로 낭도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초대 풍월주 위화랑의 부모를 보면, 아버지는 선심공(염신공)이며 어머니는 벽아부인이다. 제21대 비처왕(소지왕, 재위기간 471 ~ 500년)이 어느날 날이군(현 경북 영주)으로 순시를 갔었는데 그곳의 파로波路가 아름다운 자신의 딸 벽화를 왕에게 바쳤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잠을 못이룬 왕은 몇번이나 왕래를 하다가 500년 어느날 벽화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뿐만아니라 그녀의 어머니 벽아도 함께 데리고 와서 후궁으로 삼았다. 아마도 곧 벽아는 섬신공에게로 출가하였고 위화랑이 태어났다(자세한 내용은 1세 풍월주 위화랑조에 기술되어 있다). 위화랑의 아버지 섬심공과 파로가 동일인라는 설도 있는데, 선심공의 할머니가 청아靑我이고, 청아의 부모가 박제상과 치술공주이기에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위화랑의 생몰년 기록은 없지만 어머니 벽아는 500년 전에 이미 과년瓜年한 딸 벽화가 있었다. 벽아의 가임연령을 봤을때 위화랑은 늦어도 510년 전에 태어났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30세 무렵에 초대 풍월주가 되었다(삼국사기의 기록대로 576년에 화랑이 설치되었다면 위화랑은 66세에 풍월주가 되었다!?). 또한 2세 풍월주 미진부는 525년에 출생하였고, 551년(진흥왕12년) 거칠부 등 7명의 장군과 함께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3세 풍월주 모랑(제23대 법흥왕과 후궁 보과공주의 아들이며, 원화 남모의 동생이다)은 555년 비사벌을 유람하던 도중 갑자기 병을 얻어 요절하였다. 그리고 5세 풍월주 사다함은 562년(이는 삼국사기의 기록이고, 화랑세기에는 561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사부가 대가야를 공격할때 15~6세의 나이로 화랑도들을 이끌고 귀당비장貴幢裨將으로 참전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에 와서 김종서 등이 지은 고려사절요에도 화랑이 540년에 설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화랑의 정확한 설치년대의 기록은 없지만 여러 사료를 종합해본면 540년에 설치되었고, 원화 남모와 준정의 사망사건도 576년이 아닌 540년에 일어났을 개연성이 크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고려사절요,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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