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담은 USB, 북한 주민 마음 바꾼다
보스톤코리아  2015-02-26, 20:18:41 
지난 24일 하버드 스퀘어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북한 출신' 김은주 씨(왼쪽)와 정광성 씨
지난 24일 하버드 스퀘어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북한 출신' 김은주 씨(왼쪽)와 정광성 씨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유다인 기자 = “만 원어치의 식량은 북한 주민들의 굶주린 배를 몇 끼 달랠 수 있겠지만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담긴 만 원짜리 USB(이동식 디스크)는 북한 주민들의 인식과 삶의 태도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북한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다 2004년 탈북한 박세준 씨의 말이다. 박 씨는 현재 탈북청년단체인 ‘우리하나(Woorihana)’의 대표로 USB에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담아 북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작은 사이즈로 북한 주민들이 숨기거나 몰래 가지고 다니기에 적합한 USB는 북한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한류의 유일한 통로다. 남한에 대한 잘못된 교육을 평생 받는 북한 청년들에게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그야말로 신세계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화면 속의 공간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많은 북한 청년들의 주된 탈북 계기다. 

지난 24일 미주 대학 컨퍼런스 차 보스톤을 방문한 탈북자 세 명, 박세준, 김은주, 정광성 씨를 만나 그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버드 스퀘어 앞 오봉팽(Au Bon Pain)에서 만난 이들은 겉모습부터 말투, 소탈한 웃음까지 여느 한국인과 다를 것 없었다. 단, 그들은 자유와 권리를 위해 두만강을 건넜고 이처럼 생사를 담보로 한 경험은 그들만의 것이다.
 
정광성 씨(27)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탈북의 꿈을 키웠다. “북한에서 가르치는 남한의 이미지는 헐벗고 우리가 도움을 줘야만 하는 나라였다”는 정 씨는 “드라마 속 남한은 그야말로 신세계였고, 내가 속았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해줬다”며 탈북의 계기를 전했다. 정 씨는 “드라마 <올인>에 빠져 꼭 제주도에 가보고 배우 송혜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전하며 쑥스러운듯 웃었다. 2006년 부모님이 지불한 브로커를 통해 탈북한 정 씨는 현재 서강대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며 텍사스에서 어학연수 중이다. 

‘열한 살의 유서’의 저자 김은주 씨(30)는 견딜 수 없는 식량난으로 탈북한 경우다.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제삿상에서 음식을 훔쳐 먹던 아버지의 친구를 보며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얼음장 같은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서 접시를 닦으며 새 삶을 시작한 김 씨와 어머니는 2006년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고, 서강대 교육학과를 공부하며 현재는 대학원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박세준 씨는 “의사였다고 소개하면 흔히 ‘먹고 살만 할텐데 왜 탈북을 했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의사여서 더 나은 건 없었다. 배급제도가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에서 의사의 아이들은 늘 굶어야 했다”며 북한의 제도를 비판했다. 

미주 대학들을 방문하며 북한 인권의 실상에 대해 알리고 있는 이들은 “한국인이나 외국인들이 북한 인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하지만 너무 막연하게 알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짧은 여행을 통해 북한의 단면만 보며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친 탈북자들은 한없이 답답하기만 하다. 

“권리라는 개념조차 알지 못했다”는 정광성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도 때도 없이 공사장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고 밝혔다. 

14살에 7살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왜소했던 김은주 씨도 초등학교 2학년 때 2미터가 넘는 옥수수 밭에서 몇 시간씩 맨 손으로 풀을 뽑아야 해야 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심지어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도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군인들을 위해 토끼 가죽이나 비료 몇 구루마씩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이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 이들은 한결같이 내부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어떠한 국제적인 압력도 정작 북한 사람들의 사고가 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박세준 씨는 이러한 이유로 USB 전달 프로젝트를 더욱 강조한다. 정확한 정보를 통해 스스로 눈을 뜨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과 터프츠, 보스톤 대학을 방문한 우리하나 탈북청년단체는 보스톤의 일정을 마치고 25일 예일 대학을 거쳐 컬럼비아, 조지타운,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북한 인권 관련 컨퍼런스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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