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11)
보스톤코리아  2023-03-13, 11:31:04 
681년 7월1일 문무왕이 사망하였고, 7월7일 아들 신문왕이 즉위하였다. 삼국을 통일한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전쟁공신들의 세력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신문왕의 장인이며 김유신과 문명왕후의 조카인 김흠돌은 국정과 화랑도의 낭정을 어지럽히며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전제왕권의 확립을 하고자 했던 신문왕은 8월이 되자 상대등 김군관을 병부령으로 강등시키고 진복을 그 자리에 앉혔다. 그러자 흠돌은 자신의 바람막이였던 문명태후가 죽고나자, 곧 우군 김군관의 권력도 빠지는 정국에서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진공과 흥원과 함께 8월8일 역모를 일으켰다. 반란의 조짐을 미리 알고 있었던 신문왕과 자의태후는 북원경(현재의 강원도 원주)에 주둔하고 있었던 김오기를 왕경으로 불러서 호성장군에 임명하면서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김오기가 이끄는 군사들과 상대등 진복의 사병들이 합세하여 흠돌의 난은 당일 진압하였고, 끝까지 흠돌의 편에 섰다가 산속으로 도망쳤던 군사와 화랑도들도 며칠간 추적하여 모두 주살하였다. 주모자 김흠돌, 김흥원, 진공은 일족이 모두 처형되었고, 동조자로 몰린 상대등 김군관을 비롯한 상당수의 귀족들이 대거 처형되거나 숙청되었다. 
그리고 8월16일 신문왕은 교서를 내렸다(삼국사기 권8, 신문왕 원년, 즉위 후 처음내린 교서). 그 내용을 인용해 보면,
“공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은 옛 성인의 좋은 규범이고, 죄가 있는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은 선왕의 훌륭한 법이다. 과인이 보잘것없는 몸과 두텁지 못한 덕으로 숭고한 왕업王業을 이어 지키느라, 먹을 것도 잊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들 때까지 여러 중신들과 함께 나라를 편안케 하려 하였다. 그런데 어찌 상복도 벗지 않은 때에 도성에서 난이 일어나리라 생각했겠는가? 적괴의 우두머리 흠돌, 흥원, 진공 등은 벼슬이 자신의 재주로 오른 것이 아니고, 관직은 실로 성은聖恩으로 오른 것인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삼가 부귀를 보전하지 못하였도다. 마침내 어질고 의롭지 못한 행동으로 복과 위세를 마음대로 부려 관료들을 업신여기고 위아래를 속였다. 날마다 탐욕스러운 뜻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포학한 마음을 제멋대로 부려, 흉악하고 간사한 자들을 불러들이고 궁중의 근시들과 결탁하여 화가 안팎에 통하게 되었다. 똑같은 악인들이 서로 도와서 날짜를 정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반역을 행하고자 하였다. 
과인이 위로 천지天地의 보살핌에 힘입고 아래로 종묘宗廟의 영험을 받은 덕분에,  김흠돌 등의 악이 쌓이고 죄가 가득 차서 그들이 도모하던 역모가 세상에 들어났다. 이는 바로 사람과 신이 함께 버리고,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도의를 범하고 풍속을 해침에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그래서 병사들을 소집하여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린 나쁜 무리들을 없애고자 하였다. 일부는 산골짜기로 도망가 숨고, 일부는 대궐 뜰에서 항복하였다. 그러나 가지나 잎사귀 같은 잔당들을 샅샅이 찾아 모두 죽여 삼사일 안에 죄수 우두머리들이 탕진되었다. 마지못하여 취한 조치였으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니, 근심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어찌 한시라도 잊으리오. 이제 요망한 무리들이 숙청되어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근심이 없게 되었으니 소집한 병마兵馬들을 빨리 돌려보내도록 하고, 사방에 공포하여 이러한 뜻을 알게 하라.”          
신문왕은 위와 같이 교서를 내린 후 왕비 김씨를 폐비하였다. 그 왕비는 김흠돌의 딸이다. 화랑세기에 보면 신문왕은 태자일 때부터 부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형인 소명태자와 정혼한 또 다른 김씨를 좋아하였다. 소명이 일찍 죽자 태자는 정명(신문왕)에게로 이어졌고, 김씨는 소명의 제주祭主가 될길 청했고, 자의왕후는 그 청을 받아드려 김씨를 동궁으로 들어가게 하였고, 그 궁의 이름을 소명궁에서 선명궁善明宮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후일 제32대 효소왕이 되는 이공理恭이 태어났다. 그래서 정처인 흠돌의 딸 김씨가 투기를 했다. 즉 화랑세기에는 정명이 신문왕으로 즉위(681년)하기 전에 이미 후일 신목왕후가 되는 김씨를 좋아하였고 아들 이공도 태어났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신목왕후는 683년에 왕후로 책봉되었고 이공(효소왕)은 687년에 태어났다. (물론 신목왕후 책봉은 첫 왕비를 681년에 폐하고 683년에 할 수도 있지만, 이공의 출생시기는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는 상이하다). 신문왕의 계비 신목왕후의 부모는 김흠운과 요석공주이다. 김흠운은 김달복의 아들로 흠돌과 형제이다(누가 형인지 알 수 없다). 요석의 부모는 태종무열왕(김춘추)과 후궁 보희이다. 보희는 김유신의 누이이다.
요석공주의 남편 김흠운은 655년 조천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김흠운은 8세 풍월주 문노의 문하에서 격검을 수련한 임전무퇴의 정신이 투철한 화랑이었다.  
요석은 나중에 신라의 고승 원효와 혼인하여 설총을 낳았다. 원효의 증조부가 7세 풍월주 설원랑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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