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22세 풍월주風月主 양도공良圖公(4)
보스톤코리아  2021-09-27, 11:47:26 
장수로서의 김양도, 파진찬(4등급) 김양도는 김유신 휘하의 장군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쳐서 삼국통일을 이룩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660년(태종무열왕7년)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킨 후,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이 정림사 5층석탑에 전승기념비문을 새겼는데, 이 비문에 김양도가 ‘우무위중랑장右武衛中郞將 김양도金良圖’ 라고 기록되어 현존하고 있다. 이듬해 661년에는 당나라 군대가 사비성을 탈환하려는 백제 부흥군들에 의해 포위당해 고립되어 있었다. 이에 신라는 문무왕 김법민이 이찬(2등급) 김품일(화랑도의 상징적 인물인 관창의 아버지)을 대당장군大幢將軍에 김양도를 부장에 임명하여 자신도 함께 친정하면서 당군을 구원하였다. 662년(문무왕2년)에는 평양을 포위한 당나라 군대의 식량 및 보급품을 지원하기 위하여 김인문(문무왕의 동생)과 함께 파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김양도는 668년에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하여 신라에서 편성된 지휘부 38총관 중에서 대당총관大幢總官의 임무를 뛰고 참전하여 당나라 군과 함께 고구려를 멸하는 많은 전공을 세웠다. 

김춘추의 외교술로 당의 지원군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쳐서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당나라는 계속 옛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총 5개 도독부)와 옛 고구려 땅에는 안동도호부(총9개 도독부)를 두며 백제와 고구려를 직접 지배하려는 속내를 내비추었다. 심지어 신라왕에게도 계림주대도독이라는 작위를 주는 등 신라까지 삼키려고 하였다(고구려 멸망 전인 663년의 일이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을 지원하여 백제 땅에 주둔해 있던 당군을 공격하였다. 나당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의 지원을 시작으로 선제공격을 하였고, 이어 당의 반격이 있었다(설인귀의 수군 및 당과 말갈의 연합육군). 그러나 신라는 재반격으로 매소성전투에서 대승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그 후로도 십수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지만, 676년 금강 하구인 기벌포 앞바다에서 신라의 수군과 설인귀가 이끄는 당나라의 수군이 싸운 전투에서 신라군의 대승리로 나당전쟁은 막을 내렸다. 

이에 앞서 나당연합군으로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를 멸망 시키자, 당나라는 삼국에 도독부를 설치하면서 직접지배의 야욕을 들어내었다. 이에 맞서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을 지원하여 옛 백제 땅에 주둔하고 있던 당군을 공격하였다. 당나라가 이를 문제 삼고 나왔다. 이를 해명하기 위하여 669년(문무왕9년)에 김양도는 김흠순과 함께 당나라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당고종은 그들을 억류하여 하옥시켰다. 이듬해 670년, 김흠순은 풀려나와 귀국하였으나 김양도는 계속 억류되었고 안타깝게도 이국에서 옥사하였다. 화랑 김양도는 화랑도의 정신인 임전무퇴의 태세로 수 많은 전쟁에 참전하여 무수한 무공을 세움과 동시 특출한 문장과 외교술에도 능하여 왕명을 받들고 당나라에 여섯 번이나 사신으로 다녀 왔다. 사실 그는 다섯번만 귀국하였다. 669년에 각간 김흠순(19세 풍월주, 김유신의 동생)과 함께 웅진도독부 공격에 대한 해명을 하러 당나라에 갔을 때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670년).

김양도는 어머니 양명공주가 김모종과 사통하여 낳은 아들이다. 양명공주는 남편 설보종이 색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김염장(17세 풍월주)과 사통하여 아들 장명長明을 낳았고, 김모종과 사통하여 양도를 낳았다. 그런데 아들이 없었던 보종은 장명은 직접 거두지 않았지만 양도는 친자와 다름없이 함께 살면서 자신의 사자嗣子(대를 이을 아들)로 삼았다. 이에 양도는 보종공을 친부로 알고 자랐다. 하지만 성장하여서는 모종이 친부인 것을 알고 그간 아버지로 존경하고 효를 다하지 못한 회한으로 더욱 효도를 했다. 이에 모종은 친자이기는 하지만 보종공의 사자嗣子이니 자신을 숙공叔公으로 사랑해 주길 원했다. 

한편 김양도는 어려서 부터 기개가 늠름하고 성정이 어질고 총명하여 일찍이 낭계에 발탁되어 화랑이 되었다. 이부형 장명(양도의 어머니 양명과 염장이 낳은 아들) 보다 먼저 화랑도의 입문이 거북스러워 장명에게 양보를 하려하자, 염장이 말하기를 “집과 나라에는 모두 사자가 있으니, 아버지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비록 형에게 우애롭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죄를 얻을 것이다” 하면서 아들 장명에게는 더 이상 형으로 처신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그로부터 장명은 이부동생 양도에게 몸을 굽혀 섬겼다. 양도 역시 친부와 다름없는 도리로 염장을 섬겼다. 

한편 양도의 어머니 양명은 색사에는 무관심인 지아비 보종과 일찍이 낳은 두 딸이 있었다. 그들이 보라寶羅와 보량寶良인데, 보라는 김춘추와 결혼하여 딸 고타소를 낳고 일찍 죽었다(625년경). 보량은 진평왕의 후궁이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아 보로전군寶路殿君을 낳았다. 그런데 승만왕후의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출궁당했다(승만부인 손씨는 마야왕후가 죽은 뒤 들인 후비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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