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오준
보스톤코리아  2021-04-26, 11:42:23 
지난 주말이었다. 보스톤엔 때아닌 폭설이 내렸다. 눈과 비가 섞여 젖어 무거웠는데, 한창 봄에 무슨 눈인가. 4월의 폭설 되었고, 피고 있던 개나리와 목련꽃이 마냥 춥기만 했다. 눈雪과 꽃은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소설가 김훈의 말을 인용한다. 소설 남한산성에서 직접 따왔다. 후금後金의 왕 칸의 말이다. 문장에 대해 배운바는 얕다만, 이 문장에선 놀라웠다. 칸의 입을 통해 본인의 글철학을 내비쳤던 거다.  

‘ 칸은 붓을 들어서 문장를 쓰는 일은 없었으나, 문헌관들의 붓놀림을 엄히 다스렸다. 칸은 고사를 끌어 대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칸은 문체를 꾸며서 부화富華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隱祕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迂遠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칸은 늘 말했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다시 김훈의 말이다.  ‘오준은 당대의 명필로 꼽힌다. 병자호란 뒤에 외교사절로 여러 번 심양에 다녀왔다. 왕희지체에 속하는 단아한 필체를 구사했으며, 수많은 비석의 글씨를 남겨 후세에 전한다. 충남 아산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비의 글씨를 썼고, 삼전도비석의 글씨도 썼다. ‘근역서화징’에는 “오준이 글씨를 잘 쓰고 문장에도 능해서 삼전도비의 글씨를 썼으나 그로 인해 한을 품고 죽었다.”

내가 주목한건 삼전도비 글씨이다.  글씨를 쓴 오준에게 심사가 어떠냐 묻는건 차마 잔인하다.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아도 분명 참담한 심경이었을 터. 글씨를 쓴 다음 돌로 자신의 오른손을 찧었다 던가. 그가 남긴 시조 한편이라 했다. 읽기에 허허롭기 짝이 없다.  그는 술로 부끄러움을 잊으려 했다고도 전한다. 

살아서 먹던 술을 죽은 후에 내 알더냐.
팔진미八珍味 천일주千日酒를 가득 벌여 놓았은들
공산空山에 긴 잠든 후는 다 허산가 하노라.

삼전도비문碑文의 글을 지은 당대의 문장가 이경석도 있다. 그는 자신의 글이 선정되자, 글공부 한것이 천추의 한恨이라 했다. 

어느 전직 한국 장관님이다. 그가 에스엔에스에 올렸던 글들이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아니 부메랑이라 해야할까. 생각없이 내질렀던 글들이 되살아 났던 거다. 남을 심히 질책했는데, 이제는 제모습을 나무라야 하는 모양새 인게다. 글줄이나 읽고  아는 이가 받아야 할 값인가. 
요샌 그가 입을 다물고 있다던데, 멋적게 됐다. 눈덮힌 남한산성 사진처럼 썰렁해 진거다. 

기록되었은 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한 6:4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021.04.26
김예원은 진평왕의 사위로서 왕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풍월주에 올라 낭정을 공정하게 수행하며 인사도 파벌이나 대상에 지우치지 않고 균등하게 등용하였기에 뭇 낭도들..
주저하다가 주저앉는다 2021.04.26
무엇인가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할 때 곰곰이 생각하고 따져보는 습관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결정하시는 시기를 놓쳐버릴 때가 있다...
한담객설閑談客說: 오준 2021.04.26
지난 주말이었다. 보스톤엔 때아닌 폭설이 내렸다. 눈과 비가 섞여 젖어 무거웠는데, 한창 봄에 무슨 눈인가. 4월의 폭설 되었고, 피고 있던 개나리와 목련꽃이 마..
<요가쏭의 5분요가 > 굽은 등은 펴지고, 뻣뻣한 목은 부드럽게! 2021.04.22
평소 휴대폰이나 컴퓨터 많이 사용하시나요? 사용 후에 목과 어깨의 긴장감, 뻣뻣함이나 통증 같은거 느껴지시나요?잘못된 자세나 정신적 스트레스는 목의 긴장감을 가져..
투자경비와 잭 보글 2021.04.19
미국에 이민 와서 아이들 키우며 한 푼 한 푼 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주부가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가격이 얼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