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사우디와 '원유증산 비밀합의' 했다 뒤통수 맞아"
NYT, 사우디, 유가급락 우려·러시아 입김 등에 변심
보스톤코리아  2022-10-26, 11:50:45 
빈 살만(우) 사우디 왕세자와 주먹 인사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15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빈 살만(우) 사우디 왕세자와 주먹 인사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15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정치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올여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할 당시 미 정부는 사우디와 석유 증산을 위한 비밀 합의를 맺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우디가 약속과 달리 감산을 단행하며 결국 뒤통수를 맞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양국 사이의 논의를 알고 있는 중동 전문가들과 미국과 걸프 국가 관리들과의 인터뷰를 근거로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을 위한 사전 준비가 시작된 올봄부터 최근까지의 6개월은 합의와 희망사항, 빗나간 신호,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로 점철됐다며 이 사이 양국 간에 일어난 일을 재구성했다.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을 지시한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거리를 둬 온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 인권 문제에 대한 소신을 버리면서까지 사우디를 찾아가 그와 대면했다.

이런 행보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 대처가 절실한 바이든 대통령이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가 안정을 위해 굴욕을 감수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는 지난 5일 원유 생산량을 하루 200만 배럴씩 줄이기로 결정하며 바이든 대통령과 미 정부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우디의 이 같은 돌변에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을 밀어붙인 미 행정부는 물론, 사우디와의 비밀리에 맺은 원유 증산 합의를 포함한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효과에 대해 사전 비공개 브리핑을 통해 전달받은 미 의원들도 배신감을 토로하며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 재검토 등 보복 조치를 거론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행에 대한 준비 작업은 바이든 정부의 에너지 안보 분야 선임 고문인 아모스 호흐슈타인 특사, 브렛 맥거크 미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북아프리카 조정관이 사우디에서 빈살만 왕세자와 그의 측근들을 만난 올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전 작업 끝에 미국은 지난 5월 사우디와 2단계로 구성된 원유 증산 계획을 은밀히 타결지었다는 게 미 관리들의 설명이다.

OPEC 플러스가 지난 6월 2일 당초 9월로 계획됐던 하루 40만 배럴의 증산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해 미국과의 비밀 합의의 1단계를 완수하자, 미국은 같은 날 바이든이 조만간 사우디를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화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계획에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을 포함한 미 민주당 중진 위원들이 우려를 표명하자 바이든 정부는 비공개 브리핑을 개최해 사우디와의 원유 증산 합의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7월 15일 빈살만 왕세자와 제다에서 회동할 때까지 원유 가격은 점진적으로 떨어졌고, 양측의 정상회담에서 사우디 측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배럴당 12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던 원유가격이 101달러까지 내려온 수치를 보여주면서 증산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의지를 강조했다.

미국은 당시 회담 이후 사우디의 증산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으나, OPEC 플러스가 9월 증산분으로 미국에 약속한 것의 절반 수준인 하루 10만 배럴을 발표한 8월 3일부터 이상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OPEC 플러스는 이후 9월 5일 회동에서 하루 10만 배럴까지 원유 생산을 오히려 줄이겠다고 선언했고, 이때부터 미 관리들의 혼란과 우려가 커졌다고 NYT는 짚었다.

이후 사우디가 10월 5일 OPEC 플러스 회의에서 대규모 감산을 발표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미국은 이를 막으려 백방으로 뛰었으나 사우디의 변심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9월 24일 미국 관리들이 사우디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과 회동했을 때만 하더라도 사우디 측은 감산이 없을 것이라며 미국을 안심시켰으나, 나흘 뒤 사우디는 입장이 뒤집혔음을 통보했다.

재닛 앨런 미 재무장관이 사우디 재무장관에 전화를 걸어 감산에 반대하며 설전을 벌였으나 사우디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미 관리들은 빈 살만 왕세자가 9월 27일 압둘아지즈 장관과 만난 것이 입장 변화의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원유 증산이 이뤄지면 유가가 배럴당 50달러까지 급락, 빈 살만 왕세자의 핵심 공약인 경제 다변화를 위한 재원 부족으로 이어질 것을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행정부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입김이 사우디의 돌변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알렉산데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이 같은 의혹과 관련, "익명의 소식통이 제기한 이런 소문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주장하면서 "OPEC 플러스의 결정은 회원국 전체의 합의로 이뤄지는 것으로, 정치가 아니라 시장에 의해 정해진다"고 강조했다.

미 백악관 관계자는 사우디의 돌변에 미 정부가 분노하고 있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원유 생산량이 아니라 유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해 들어 원유 가격이 30% 넘게 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정책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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