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19)
보스톤코리아  2023-05-08, 11:49:10 
다음은 경문왕을 도와 정치를 보좌하고, 전국을 유람하면서 왕의 업적을 노래로 찬양讚揚/홍보한 화랑들을 살펴 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요원랑과 예흔랑이 대표적이다. 
먼저 삼국유사(기이 제2, 경문대왕, 화랑들이 노래를 짓다) 에 실린 내용을 인용해보면,
<국선國仙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등이 금란金蘭을 유람할 때 은근히 임금을 도와 나라를 다스릴 뜻이 있었다. 이에 노래 세 수를 짓고, 심필心弼 사지舍知를 시켜 침권針券을 주어 대구화상大矩和尙의 거처에 보내 세 가지 곡을 짓게 하니 첫째가 현금포곡玄琴抱曲이고, 둘째가 대도곡大道曲이며, 셋째는 문군곡問群曲이었다. 들어가 왕에게 아뢰니, 왕은 크게 기뻐하여 칭찬했다. 노래는 알 수 없다.>
국선 부례랑이 693년(효소왕2년)에 안상 등 1,000여명의 화랑들을 이끌고 전국을 순례할 때도 금란을 다녀왔다. 
국선 요원랑 등의 화랑들이 경문왕 재위시에도 금란을 순례하였다. 제48대 경문왕은 861년에 즉위하여 875년까지 재위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아 금란은 화랑도들의 정기순례 지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물론 그 사이의 기록물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단 두 차례의 순례를 삼국유사가 모두 기록했다고 볼 수는 없기에 그렇게 추정해 본다). 그럼 금란은 어디인가? 금란은 현재 강원도 통천인데, 동국東國 제일의 선경仙境(신선이 노니는 지방)으로 총석정, 금란산, 금란굴 등이 소재한 해안지대이다. 즉 금강산에서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일대를 말한다. 그리고 국선 요원랑 등은 화랑 출신인 경문왕을 위하며 그의 치국을 찬양하는 노래 3수를 지어 불렀다. 다시 사지舍知(13등급) 심필을 시켜서 이를 향가의 작가로 명성이 높았던 대구화상에게 보내 곡을 붙이게 하였다. 즉 작사/작시는 요원랑 등의 화랑들이 하였고 작곡은 대구화상이 하였다. 아쉽게도 그 가사는 전하지 않지만 제목은 전하고 있다. 그들이 현금포곡玄琴抱曲, 대도곡大道曲, 문군곡問群曲이다.
한편 삼국사기의 기록에 보면 제51대 진성여왕(경문왕의 딸 김만金曼이다)이 향가 모음집인 삼대목三代目을 대구화상과 김위홍에게 편찬하도록 하였다. 삼대목은 현존하지 않아 어떤 향가가 실렸는지 알 수 없다. 대구화상은 승려였고, 김위홍은 경문왕의 친동생이다. 김위홍의 정처 부호부인이 진성여왕의 유모였고, 위홍은 후일 질녀인 진성여왕과 상통하기도 하였다(단지 근친상간을 벌인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당시는 골품제의 특성상 근친혼은 일상사였다. 즉 당시의 시대상을 알면 특이하거나 불륜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관계였다).
경문왕의 치세 후반에는 자연재해가 끊이질 않았다. 특히 870년에는 왕도王都에 지진, 홍수 등이 일어났고 그해 겨울에는 역병이 돌아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다. 재해의 복구나 역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틈도 없이, 873년에는 가뭄으로 인한 기아가 덮쳐, 비축했던 곡물을 모두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백성들을 구제하지 못하였고, 게다가 또 한 차례의 역병으로 백성들은 죽음의 사자와 함께 살아야 했으니 국정은 안정될 여유를 갖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경문왕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백성들의 삶은 곤고하였다. 늘 뱀(들)과 잠을 자고 귀가 커서 백성들의 말을 잘 들었던(?) 경문왕은 29세(또는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경문왕을 이어 866년에 태자, 즉 왕의 장남 김정金晸이 즉위하였다. 김정이 제49대 헌강왕이다. 헌강왕대의 기록을 보면 아버지 경문왕 재위시와는 상이하게 최소한 왕도인 서라벌 일대는 태평성대를 누린 것같다. 먼저 삼국사기(헌강왕 본기)의 기록을 보면, <어느날 왕은 월상루에 올라가 민가를 바라보면서 시중 민공에게 묻기를, “내가 듣건대 지금 민간에서는 짚이 아닌 기와로 지붕을 덮고, 나무가 아닌 숯으로 밥을 짓는다 하니 과연 그러한가?”
이에 민공은 “저도 일찍이 그렇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왕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바람과 비가 순조로워서 해마다 풍년이 들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넉넉하며, 변경이 안정되고, 시정이 즐거워하니, 이는 임금의 어진 덕으로 어루어진 것입니다.”
왕은 이에 즐거워하며 “이는 여러 신하들의 도움 때문이지, 짐에게 무슨 덕이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또한 삼국유사에도 태평성대를 입증하는 기록이 있다. <제49대 헌강왕 때는 성 안에 초가집은 하나도 없고, 집의 처마와 담이 이웃과 서로 연해 있었다. 또 노랫소리와 피리 부는 소리가 길거리에 가득 차서 밤낮으로 끊이질 않았다.>
헌강왕은 11년간 재위하였다. 제48대 경문왕 재위시는 모든 천재지변과 역병에다 역모까지 여러차례 일어났는데, 헌강왕 재위 동안에는 태평성대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헌강왕이 죽은 뒤 1년 후에 즉위한 제51대 진성여왕 시대에는 세금이 걷히지 않아 조정이 곤궁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납득하기가 어렵지만 역사의 기록을 그대로 믿기로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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