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가타 백제왕 사적지와 동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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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코리아  2022-05-16, 11:38:22 
동대사 대불전
동대사 대불전
8세기때 일본은 성무천황(聖武天皇) 치세기로 천하태평을 의미하는 천평(天平)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724~749). 그러나 당시 위정자들이 원하는 바람과는 달리 당시 일본의 천하는 결코 태평한 시기가 아니었다. 지진, 태풍, 홍수에 천연두 같은 천재지변이 끈임없이 이어지고 이 재해의 중심에 성무천황과 위정자 후지와라 형제들로 대표되는 귀족들이 있었다.
천황은 신하들의 반란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도성을 전전하며 평성군, 공인궁, 자항락군, 난파궁을 떠돌았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천연두가 유행하여 전국민의 20~30%가 사망하는 참변으로 이어져 농토가 있어도 농사를 지을 일손이 없는 딱한 사태에 이르렀다. 이럴 경우에 천황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가지뿐으로 부처님이라는 절대자를 찾는 것이었다. "나라" 황궁 동쪽에 대화업사를 건축하게 된다.
금당에 모시게 된 "비로자나불"은 화엄사상의 유행과 함께 나타난 불교 부처님의 하나로 화엄경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신불로 나타난 것이 바로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경주 불국사 비로전에도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는데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부처님이다. "비로"는 최고라는 뜻이다. 금강산의 정상이 비로봉이고 소백산의 정상도 비로봉인 것은 봉우리중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동대사의 비로자나불은 엄청난 크기로 유명한 불상이다. 불상 높이가 정확하게 16.19m, 얼굴 길이만 5m, 손바닥 길이는 5m 10cm로 손바닥 위에 사람 16명이 올라갈 수 있다. 동대사 요록에 기록되기를 이 불상 주조에 구리쇠 73만9천5백60근, 연금 1만436냥, 수은 5만8천620냥이 들었다고 한다.
서기 749년에 이 불상이 만들어지고 100년후인 서기 855년에 지진과 화재로 불상의 머리가 떨어져 머리 부분을 복원하였다. 이 불상과 비슷한 불상은 중국 운강 석굴과 용문 석굴의 불상이 있다. 불상을 모신 대불전은 원래 대불전이 불에 타버려 에도시대에 화엄종 코어케이 스님이 완성한 것으로 전체 높이가 47.5m로 16층 규모의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이다. 불에 타버린 원래의 대불전은 지금보다 1.5배가 되는 건물이었다고 한다.
동대사는 물론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되어 있다. 그러면 그 누가 이처럼 큰 대작을 만들었을까? 동대사 어느곳에도 한국 사람들이 건물과 불상을 만들었다는 글귀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동대사는 거의 100%가 한반도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동대사 건축의 총 책임자는 고구려 사람 고려 복신이라고 동경제국대학의 저명한 쿠메 쿠니다케 교수가 밝힌바 있다. 비로자나불을 주조한 사람은 백제 도래인 국중 마려였다. 그는 백제가 멸망할때 일본으로 망명한 덕솔 국골부(國骨富)의 손자였다. 엄청난 크기의 대불전을 만든 책임자는 신라 도래인 저명부 백세였다. 이처럼 동대사를 건축한 실무자들은 모두가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이었다.
의자왕의 아들 부여 선광은 히라가타(당시의 가타노)에 살고 있었다. 그의 후손 부여 경복이 무쓰노군(지금의 도쿄) 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동대사 건축 자금이 태부족하게 되었다. 이에 경복이 금광을 개발해 900냥의 황금을 헌납하면서 100년동안 "백제왕"씨의 번영을 약속 받았고, 백제 왕족들이 "백제왕"이라는 성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이후로 백제왕 경복은 자신의 선조인 선광, 창성, 낭우를 모시는 백제왕 신사를 건립하였다. 고문서 백제왕 유서에 의하면 성무천황은 왕인과 아좌왕이 유교와 불교에 기여한 공적을 기려 히라가타 나가고미야 터전에 백제왕 사묘와 백제사를 건립하여 백제왕의 혼령을 모시게 하였다.
백제사는 가마쿠라 시대때(11~12세기) 두번이나 불에 타서 지금은 터전만 남아있어 백제사 사적공원이라고 부른다. 비록 터전만 남아 있지만 이곳은 딱 두개뿐인 오오사카 특별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또 다른 특별 사적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오오사카 성이다. 당시 이 고장의 태수였던 백제왕 경복은 후일에 간무천황과 깊은 교우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나중에 경복의 딸이 간무천황의 황후가 된다. 간무천황의 어머니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 화신립(和新笠)으로 일본 49대 광인(고닌)천황과 결혼해 황후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백제 무령왕의 왕성이 화(和)씨이고 간무천황 생모의 이름이 화신립(和新笠)인데 일본 왕실의 조상신, 백제신의 이름이 화다지(和多志)인 것은 일본 조상신이 백제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정창원 문서 기록에 의하면 동대사 창건은 3명의 성인들이 있어서 동대사를 세울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 세명은 성무천황, 백제 도래인 행기 스님과 또 다른 백제 도래인 양변 스님을 지칭하고 있었다. 반면에 동대사 관정 스님이 편찬한 동대사 요록에는 세분 성인으로 행기 스님과 양변 스님, 신라 심상 대덕을 꼽고 있는데 한반도 3국인들의 도움이 있어서 동대사를 건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불전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행기 스님을 모신 행기당(行基堂)과 동대사 초대 주지였고 일본 화엄종의 시조인 양변 스님을 모신 개산당(開産堂)이 있다. 경내에 있는 3월당은 신라 고승 심상 대덕이 3년동안 화엄경을 강설했던 곳이고, 그 옆에 카라쿠니 신사는 한국신을 제신으로 모시고 있다. 일본의 국사 경내에 한국신을 모신 신사가 있다는 것이 경이로운 일이다.

의자왕의 아들 선광은 히라가타에 살았다. 쇼무천황이 후손 경복에게 백제왕 신사를 건립
적칠문관목 주자 천지천황이 가지고 있던 것을 성무천황이 소유하게됨
백제 의자왕이 선물했다고 추정되는 장식 바둑돌
의자왕이 후지와라 가마타리에게 하사한 바둑판

정창원(쇼소인) 유물
일본 성무천황이 사망하자 미망인 교묘황후는 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 평소 애용하던 애장품 600여종을 49제에 맞춰 동대사 대불전 북서쪽에 있는 정창원에 헌납하였다. 성무천황, 교묘황후 시대의 전통 공예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보물은 일본, 신라, 백제, 고구려는 물론 멀리 페르시아, 인도, 그리스, 로마, 이집트에서 수입한 공예품과 목공, 도검, 오지그릇, 유리그릇, 악기, 가면 등 고대 미술의 진수가 보관되어 있다. 그중에 삼국시대의 양탄자, 의자왕의 하사품인 적칠관목주자, 백제 의자왕이 일본에 선물했다는 바둑판, 바둑알, 신라 금, 안압지 백동가위, 신라 숫가락, 신라 먹, 놋그릇, 민정 문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9천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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