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필경 (桂苑筆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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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코리아  2021-10-25, 11:57:47 
중국 정부가 서기 2000년에 설립한 최치원 기념관의 동상
중국 정부가 서기 2000년에 설립한 최치원 기념관의 동상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 일이다. 시주석이 학대 회담 환영사에서 뜻밖에 최치원 선생의 시 "범해(푸른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이 만리를 통하네"라고 시의 앞구절에 운을 띄웠다. 이 시는 최치원 선생이 885년에 17년간의 당나라 생활을 정리하고 신라로 돌아가는 황해 뱃길에서 자신의 착잡한 마음을 읊은 시로 최치원이 모시던 절도사 고병이 황소의 난을 제압하는데 실패하고 절도사 직에서 파면되자 최치원도 암담한 마음으로 헌강왕 때 신라로 돌아오게 된다.
두분 대통령과 함께 최치원 선생의 시를 겻드린 것은 한중간의 역사교류에서 최치원 선생이 상징적으로 최적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범해> 전문을 소개하면,
돗달고 푸른 바다에 배 띄우니 강한 바람불어 만길로 나아가네.
뗏목을 타니 한나라 사신 생각나고 약초를 캐니 진나라 삼천공자 생각나네.
해와 달은 허공에 떠있고 하늘과 땅은 태극 가운데 있네.
봉래산이 지척이라 가까이 보이니 나 또한 신선을 찾아가리.
* 여기서 말하는 한나라 사신은 "장건"을 말하고 봉래산은 전설에 나오는 영주산, 방장산과 함께 나오는 중국 삼신산 중의 하나이다. 

서기 2007년에 최치원 선생의 사상과 문학, 예술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중국 내무부 외교부가 최초로 승인한 외국인 기념관이 장수성, 양주시에 건립되었다. 예전에 수양제의 당성(唐城) 유적지 옆에 황소의 난을 진압하기 위한 회남절도사 주재소가 있던 그 자리에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최치원은 고병 절도사 밑에서 도통순관으로 근무했는데, 유명한 토황소격문과 필생의 자서전 계원필경은 이곳에서 많이 편집되었다. 계원필경은 모두 20권으로 되어 있는데 창작한 시문집만 만여수가 되어 그중 1/10만 편집되었고 나머지는 폐기하였다.

"계원필경"의 제목은 모래를 헤쳐 금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병영에서 기식하며 생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붓으로 농사를 대신한다는 의미로 필경(筆耕)으로 제목을 삼았다고 한다.
이조 성종때 동국통감이라는 역사서를 편찬한 바 있는 서거정은 계원필경이 우리나라 최초의 시문집이고 역사서로 신당서에 실릴만큼 국제적인 저술로 평가하고 있었다.
양주는 양자강 북쪽 대운하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던 수양제의 궁성으로 한 때 마르코 폴로가 관리로 근무했던 국제도시로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50여년전에 이곳 용교에 별장을 짓고 양주의 풍광을 만끽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최치원이 처음으로 벼슬길에 올랐던 리수이 현은 양주에서 뱃길로 2시간 거리에 있었다. 이곳 중학교에서는 최치원의 토황소 격문을 암송하고 있고, 이곳의 화가 왕찐위는 최치원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데, 최치원이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순학과 교류하는 장면과 아름다운 두 처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최치원의 첫 발령지는 리수이 현으로 그의 나이 20세때였다. 어느날 최치원은 리수이 현에서 커다란 무덤을 발견하였다. 이름하여 쌍녀분. 정략 결혼은 비관한 두 자매가 자살해서 이곳에 묻혔다는 사연을 전해 듣는다. 억울하게 죽어간 두 자매를 위해 최치원은 시를 지어 이들을 위로하였다. 그러자 꿈속의 두 자매는 "이곳에서 오랜기간 있었지만 유람을 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시를 써서 애도를 표현하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에 괜찮다면 다시 만나기를 원하였다. 그날밤 최치원의 숙소에 두 자매가 찾아온다. 그들은 밤새 시를 짓고 사랑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쌍녀분을 찾아 기도와 제사를 드리고 소원을 빌고 복을 기원했다고 한다. 리후이 현의 전설 이야기는 당나라는 물론이고 송나라, 원나라와 명청을 거쳐 계속 내려오고 있다.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최치원은 12살때 조기 유학을 했기 때문에 14살이 되어야 국자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최치원은 14살때까지 장안의 명사집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어느날 명사가 최치원에게 시를 써보라고 하자 단번에 써내린 것이 유명한 추야우중이었다. 명사가 감탄하며 앞으로는 다른 일은 하지 말고 글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였다.

추야우중(秋夜雨中)을 소개하면,
가을 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니 세상에 날 알아주는 이 없네.
창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등불 앞에 내마음 만리 밖을 내닫네.

어찌되었든 최치원이 국자감에서 제대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14살때부터였다. 그리고 4년후인 18살에 빈공과 시험에 함격하였다. 비록 장원으로 합격했지만 관직이 나오지 않아 2년동안을 허송세월하면서 서류를 대필해주며 끼니를 때웠다. 다행히 2년만에 율수현위에 임명되었다. 현위 임기를 3년만에 마치자 다시 대기발령 상태가 되었다. 

잠시 백수가 된 최치원은 산에 들어가 박학굉사과라는 중국 내국인을 대상으로한 시험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는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한 일종의 승진시험으로 조선시대의 중시(重試)에 해당된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황소의 난으로 온나라가 혼란스러워 박학굉사과는 영영 열리지 못했다. 결국 관직에 있던 시절에 나오던 녹봉이 떨어져 배를 굶게 되었다. 당시 당나라는 황소의 난을 진압할 인물로 양주의 회남절도사 고병을 임명하였다. 절도사 고병은 신당서에 열전으로 기록될만큼 중국 역사에서 꽤나 중요한 인물이었다. 고병의 성가가 높아지자 도처에서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최치원도 줄을 대게 되었다. 이때 최치원의 과거 동기이며 가장 절친한 친구인 고은과 왕랑층들이 절도사 고병에게 최치원을 적극 추천하였다. 최치원은 외국인이지만 그의 재능이 출중하여 뽑히게 된 것이다.

당시에 당나라는 정치 혼란과 흉년 속에 최대의 혼란기에 있었다. 소금 장수 황소가 일으킨 난리는(875~884) 산동지방에서 시작되어 당나라 전역을 휩쓸고 수도 장안이 함락되었다. 이때 세상에 나온 것이 "격황소서"로 총사령인 고병을 대신하여 최치원이 격문을 쓰게 되었다. 이로 인해 최치원의 문명이 온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긴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당나라 사람들은 황소를 격퇴한 것은 칼로 무찌른 것이 아니고 최치원의 격문이라고 하였다. 토황소격문에서 최치원은 처음에는 도덕경, 춘추전의 구절을 인용하여 황소르 꾸짖었다.
"너는 듣지 못했는냐. 도덕경에 회오리 바람은 하루 아침을 못 넘기고 소나기는 하루를 못넘긴다고 하였으니 천지자연도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너는 또 듣지 못했느냐? 춘추전에 하늘이 나쁜 사람을 놓아주는 것은 그에게 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흉악함이 더 심해지기를 기다려 벌을 주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토황소격문을 읽고 나서 이어령 교수는 최치원 선생의 성토는 강약의 리듬을 갖춘 성토문이라고 극찬하였다. 성토의 결정판에서 최치원은 "오직 사람들만 너를 죽이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땅속의 귀신들까지도 이미 암암리에 너를 처단할 논의를 마쳤느니라. 비록 네가 숨은 붙어있어 혼이 논다고 하지만 벌써 정신은 달아났을 것이다."라고 몰아 부쳤다.
그리고 결정타는 "너의 몸뚱이는 도끼날의 기름이 되고 뼈는 수례 밑의 가루가 될 것이며 처자는 잡혀죽고 권속들은 베임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 임금의 군사는 정벌하되 싸우는 것이 아니며 눈에는 은혜를 앞세우고 죽이는 것은 뒤로한다." 황소가 이 구절에 이르자 간담이 서늘해져 저도 모르게 침상에서 떨어져 무릎을 꿇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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