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22세 풍월주風月主 양도공良圖公(8)
보스톤코리아  2021-10-25, 11:55:03 
637년 김양도가 마침내 22세 풍월주에 취임하였다. 그의 나이 28세였다(양도는 610년 생이니 만 27세로 풍월주에 올랐다). 그러자 5살이나 연상인 부인 보량은 스스로 자신의 색色이 쇠하였다면서 화주花主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없으니 자신의 침비枕婢였던 능보能寶로 하여금 화주로 맞게 하였다(당시 능보는 ‘승진’하여 난방暖房으로 있었다). 그러나 양도는 부인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신은 보종공(보량의 친부)의 사자(대를 잇는 아들)에 지나지 않으며, 부인은 보종의 적녀로서 화주의 자격이 있었기에 자신이 풍월주가 되었다면서, 능보를 화주로 맞기를 거부하였다. 기록에는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은데 분명 화주에게는 화랑도와 관련된 어떤 중책이나 주어진 임무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화주花主는 풍월주의 아내를 가리키는데 화주가 되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미모는 기본이었고 반드시 진골정통이나 대원신통에 속한 인통姻統이어야만 가능했다. 아마도 능보는 양인통에 해당되지 않은 서민/천민 출신이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다음으로 화랑도들과 관련이 있는 여자들로는 봉화奉花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낭두郎頭들의 딸이었다. 봉화는 화랑도들이 수련하는 선문仙門에 기거하면서 화랑들의 총애를 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은 화랑도의 총애를 받아야만 시집을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꿈은 하루라도 빨리 화랑도와 청례靑禮를 치르는 ‘거사’였다. 화랑도의 총애를 받은 봉화는 봉로화奉露花라고 하였고, 화랑의 아들을 낳은 봉화는 봉옥화奉玉花라고 하였다. 봉로화나 봉옥화가 되지 못한 봉화는 낭두들에게 시집을 갈 수가 없었다. 낭두와 결혼을 못한다면 결국 그들은 선문에서 늙어 예졸들의 첩으로 가는 것이 관례였기에 봉화들은 화랑의 총애를 받기 위해 온갖 교태를 다 부렸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유화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서민들의 딸로서 낭문郎門에 속하게 하였으며 30세가 되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낭문이란 화랑도들이 속한 선문과 달리 낭도들이 속한 곳이다). 

상당히 오랬동안 지속되어 내려오던 이런 불합리한 낭정의 폐단을 김양도는 22세 풍월주의 위에 오르면서 모두 금지시켰다. 
또한 낭두들의 등급을 7급에서 9급으로 늘려 낭두들의 벼슬길을 넓혔다.
먼저 낭도郎徒란 일반 서민들로 구성된 낭도들인데 화랑도를 출세의 길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낭두郎頭는 화랑과 낭도 사이에 위치한 화랑도의 중간 세력 집단으로, 화랑도 조직에서 화랑이 아닌 낭도들 중 그 우두머리를 낭두라고 하였다. 나중에는 그들이 특정 세력집단으로 성장하여 화랑도의 낭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그 지위도 상승되었다. 낭두는 처음에 상선과 상랑의 마복자들만이 될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 원칙도 조금씩 허물어지기도 하였다. 양도가 22세 풍월주가 되기 전에는 7등급의 낭두가 있었는데 양도가 취임하면서 9등급으로 늘렸다.355)  

낭정의 폐단을 금지하고 낭두의 직급을 늘리(올리)면서 조직내의 개혁을 하였지만 낭두들의 세력은 점점 확장되었고 그 위세는 올라만 가고 있었다. 24세 풍월주 천광공天光公(643~647년 역임)에 와서는 가야파의 거두 찰인(찰인의 딸은 17세 풍월주 김염장의 첩이다)은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대노두의 자리에 있었고, 처첩과 자녀가 100을 헤아렸으며, 출입하고 거동하는 것이 완전히 상선(전임 풍월주)과 같이 했다. 뿐만아니라 사위는 대도두였으며, 두 아들은 도두로서 처첩 수십을 데리고 살았다.       

신라의 화랑도는 준수한 서민(의 아들들)도 입문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각기 다른 조직체에서 수련과 수양을 하였다. 화랑도들은 선문仙門에서 기거하였지만, 서민의 아들들인 낭도들은 낭문郎門에서 기거하였다. 서민의 아들들인 낭도는 13~14살에는 동도童徒가 되었고, 18~19살에는 평도平徒가 되었으며, 23~24살에는 대도大徒가 되었다. 대도 중에서 입망자入望者는 망두望頭라고 했다. 또한 공功과 재주가 있는 낭도를 천거하여 신두臣頭로 삼았는데, 신두는 낭두가 될 수 없었고 망두만이 낭두가 될 수 있었다. 낭도들은 30살이 되면 병부로 속해서 군인이 되거나, 또한 집으로 돌아가 생업(농공업)에 종사하거나 향리의 장長이 되기도 하였다.

355) 낭두에는 낭두郎頭, 대낭두大郎頭, 낭두별장郎頭別將, 상두上頭, 대두大頭, 도두都頭의 등급이 있었다. 그리고 양도가 22세 풍월주에 위임하면서 7등급의 낭두를 9등급으로 늘렸다. 즉 도두 위에 대도두大都頭와 대노두大老頭를 더했다. 아마 낭두가 되기 위한 모든 자격을 갖춘 최하위 직급인 망두望頭를 포함하여 9등급이라고 한 것 같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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