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로 결심한 의사, 의료구호 현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
정상훈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출간
보스톤코리아  2021-06-16, 22:49:04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공의로 일하던 30대 중반의 정상훈 씨에게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온다. 2년에 걸친 치료로 회복한 정씨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국경없는의사회'의 해외 구호활동가로 가난한 나라들로 향한다.

정씨는 2011년 11월부터 9개월간 아르메니아에서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을 치료했고, 2013년 8월부터 6개월간 레바논에서 시리아 난민을 위한 진료소에서 일했다. 또 2014년 11월부터 5주간 '죽음의 병'으로 불리는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 지역 시에라리온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돌봤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시에라리온에서 의료 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에볼라 의사'로 불렸다. 하지만 늘 자신이 시에라리온에 파견된 700번째 의료인에 불과하고, 살린 사람보다 살리지 못한 환자가 더 많다고 말한다.

정씨는 오는 25일 출간하는 에세이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웅진지식하우스)에 세계의 가장 밑바닥 삶을 경험하며 느낀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의미를 담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우울증에 대해서, 더구나 의사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며 "의사이면서도 정신 질환을 수치스럽게 여겼고,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구체적인 방법들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아르메니아에서의 그의 첫 임무는 환자에게 '치료 실패'를 통보하는 것이었다. 에이즈나 암 등을 앓는 환자 가운데 치료 효과가 없는 환자의 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의료 자원이 부족한 가난한 나라의 의료진 앞에 놓인 불가피한 현실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생계를 위해 해외로 떠나는 노동자, 가부장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치료를 포기한 아기 엄마, 돈 벌러 간 아들을 기다리다 끝내 세상을 떠난 아버지, 50대에 은퇴한 군인 등을 떠올리며 "고통을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의료 행위조차 무의미했다. 한쪽에서는 낭비가 문제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꼭 써야 할 돈도 없었다"고 말한다.

정씨는 시리아 내전의 긴장과 갈등이 여전한 레바논에서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총격전이 이어지고 시급 10달러를 벌기 위해 젊은이들이 총을 들고 용병이 되는 모습을 마주한다.

그는 "꽤 오랫동안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묻지 않았다. 질문에 해답을 얻어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며 "레바논에서는 '내'가 아니라 '우리'로 살았다. 위험 구역에서 총격전과 죽음, 슬픔과 분노를 통해 새로운 '우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정씨는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도 치료 약도 없는 시에라리온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 앞에 무거운 마음으로 선다. 자신을 '엉클'(삼촌)이라고 부르며 애타게 찾는 소년과 에볼라에 걸린 2살 아이를 치료하면서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운명에 맞서고, 죽음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 곳곳에는 치매로 5년간 투병하다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정씨 어머니 이야기도 나온다. 어릴 적 기억은 부모님의 부부 싸움뿐이었다는 그는 엄마는 그저 집의 평화를 깨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엄마와 자신은 서로에게 상처 주기 전문가였다고 고백하면서도 치매 진단 이후 엄마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은 뭉클하게 한다.

그는 "이름도 모르던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뛰어다녔지만, 같은 (우울증) 병을 나눠 가진 엄마는 미워했다. 내 몸과 마음은 그렇게 갈라져 있었다"며 "그 분열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먼저 손 내민 쪽은 엄마였다. 엄마의 병이 말을 걸어왔다. 엄마가 평화와 함께 잠드셨기를 기원한다"고 말한다.

정씨는 뒤늦게 책을 펴낸 이유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그는 "코로나19가 불러온 셀 수 없는 비극, 안타깝고 황망한 죽음들, 세상을 갈라놓는 빈곤과 혐오를 목격하면서 책 낼 마음을 먹었다. 언제 어디에나 있는 죽음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260쪽. 1만5천 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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