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창조주' 나는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하루
신영의 세상 스케치 724회
보스톤코리아  2019-12-19, 17:00:02 
긴 비행시간이 이유였을까. 한국을 다녀와 2주 후쯤 갑작스러운 생리현상에 어쩔줄을 몰라 했던 일이다.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 어느 곳에 가든지 새로운 곳에서의 음식을 마다하지 않고 추라이하는 편이고, 잠도 잘자는 편이었으며 아침저녁으로 화장실을 가는 일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10여 년 전부터 교회의 선교사역도 여러 번 다녀왔지만, 다른 교인들에 비해 별 불편함이 없이 다녀와 같이 간 다른 분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1박 2일의 종주산행을 가서도 마찬가지였고 타국이나 타 주의 장시간 산행에서도 여전히 그렇게 해왔었다.

한국을 다녀온 지 열흘이 지났는데 시차가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해서는 한 이틀 정도면 시차 극복이 되는가 싶은데, 이상하리만치 미국 집에 돌아오면 일주일은 힘들어한다. 물론 남편의 꾸지람 섞인 뒷말도 이어진다. 한국에 갈 때는 신바람이 나서 시차 극복이 쉬운데, 집에 도착하면 귀찮아서 그런다는 핀잔 섞인 말을 흘린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니 그냥 흘려버리고 말았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다. 집에서 주로 내 할 일을 하는 나는 자유로운 것이 문제였음을 말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밤잠을 못 자면 낮잠을 잔 이유였다.

물론 잠자는 시간이 남다르긴 하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 정리를 하더라도 환한 대낮보다는 조용한 새벽 시간이나 늦은 밤 시간을 많이 택하니 말이다. 여하튼 이유를 불문하고 내게 큰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남편이 일을 나가고 혼자 있는 아침 시간이었다. 남편이랑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주했으니 자연스럽게 커피잔을 씻고 볼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무엇인가 수월치 않음을 직감했다. 이리저리 애를 써보는데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이 내게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 되고 말았다.

문득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25여 년 전 한국에서 시아버님 친하신 친구분 아드님이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다가 30대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일이 있었다.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보통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본능적 행동도 스스럼없이 해보면서 별 생각을 다 했다. 남편을 되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고 가깝게 사는 친구를 부를까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그 친구도 비지니스를 하는 친구니 그냥 마음에서 접고 말았다. 이렇게 다급한 상황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몇 있다는 것이 내게는 또한 감사이고 축복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의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다급한 마음에 가깝게 사시는 우리 교회 여자 부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목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급한 대로 관장약을 부탁드린다고 염치불고하고 말씀을 드린 것이다. 머리와 온몸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목사님께서 우리 집에 오셨다. 눈길이라 운전하시기 힘드시니, 바깥 목사님이 운전을 해주시고 두 아이를 태우고 온 가족이 눈이 펑펑 오는 날 오셨다. 자동차의 눈을 치우시랴 두 아이 챙겨서 차에 태우시랴 얼마나 바쁘셨을까. 생각하니 너무도 감사하고 송구스런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렇듯 생각지 못한 생리적 현상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지 몰라 허둥대는 시간이 내게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머리와 몸에서 식은땀이 나는 때에 이러다 큰 일이 생길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순간 너무도 나약한 나를 또 만난다. 내 몸에서 열린 구멍 하나 막히면 이렇듯 온몸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눈과 귀와 코(콧구멍) 그리고 입과 생식기의 모든 호흡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고 감사한 선물인지 다시 또 '당신은 창조주 나는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디 그뿐일까.

'당신은 창조주 나는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하루'였다. 그리고 다급한 상황에서 내 곁에 누가 있는지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곁에 있는 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음을 서로 보듬어주고 기대어 의지하며 사는 것이 인생임을 다시 또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연로하신 어른들을 그리고 홀로 사시는 어른들을 잠시 또 생각했다. 이렇듯 급한 일이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감사한 축복이 또 있을까. 지금 호흡하는 이 시간이 또 감사한 것을.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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