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명이란 무엇인가? 중세 때의 인간의 자아自我와 근대의 자아(modern ego)는 어떻게 다른가? 근대의 계몽주의啓蒙主義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인간이 자기 스스로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런 역사의 지평을 연 사람이 데카르트(1596∼1650)다. 그가 말한 건 인간 생명의 중심에는 이성理性의 불이 타오른다는 것이다. 자기 홀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 그런 천부적인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너무너무 위대한 말이다. 바로 여기서 인간이 종교의 압제로부터, 신神 중심의 도그마로부터 완전히 풀려난 것이다.
데카르트야말로 인간을 해방시킨 위대한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철학은 이원론적인 사고 때문에 또 새로운 종말을 맞이한다. 그게 과학의 유물주의(唯物主義) 때문인데. 그래서 그것을 뿌리뽑기 위해서 새로운 사변 철학의 도끼를 들고 나온 인물이 누군가? 바로 화이트헤드(1861∼1947)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의 뿌리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느냐 하는 것을 정리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앞으로 오는 세상에 대해 철학의 사명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첫째, 서양철학은 16세기로부터 시작해서 19세기 과학혁명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최대의 오류를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즉 과학적 유물론(Scientific Materialism)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물을 분석하고 측정하는 데 치우치다보니, 사물의 변화과정을 본래의 전체 목적과 단절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 저지른 절대적 모순(absolute contradiction)이라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모든 만물은 살아있고 변화를 지속한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적 전진의 연속이다. 모든 것은 자기실현의 과정에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성숙되어 대자연과 하나가 되면 내가 생명의 실재 자체가 된다. 과정이 실재가 되고 실재가 과정이 되는 세계가 우리들의 생명세계다."라는 유기체적인 세계관을 말한다.
우주 만유는 한 덩어리라는 것이다. 무엇 하나도 이 대우주 생명체에서 분리될 수 없다. 작은 먼지 하나도 이 대우주라는 큰 몸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요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역할은, 과학적 메커니즘(mechanism:기계주의), 즉 과학적 유물주의를 다 부수어 버리고 오거니즘(organism:유기체), 즉 생명의 참모습, 살아있는 생명의 본래 세계관을 서양 과학문명사에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흔히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고대에서 중세를 지나 근대로 넘어왔는데, 과연 근대의 개념은 무엇인가? 서양 문화에서는 신神 중심 세상에서 벗어나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을 지는, 르네상스 이후에 일어난 계몽주의를 근대의 출발점으로 말한다. 인류의 전 역사 과정에서 보면 인간이 소년기를 지나서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문턱을 넘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를 넘어 인간의 몽매함을 깨준 서양의 계몽주의 시기는 인류 역사의 한 전환기라 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콩코르드 광장에 가보면, 프랑스 혁명 때 거기서 천여 명의 목이 잘렸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모든 인간의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다. 그런데 그 혁명의 역사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절대 왕정과 식민지 쟁탈전으로 벌어져나가게 된다. 지금부터 3세기 전인 19세기 후반, 영국의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지구촌의 가장 강력한 10여 개 나라들이 자본주의 시장 개척을 위해 동방으로 진출을 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극동 아시아, 이 한반도까지 제국주의가 몰아쳐온 것이다.
그러면 우리 문화를 중심으로 지구촌 역사를 해석할 때, 근대 역사의 출발은 언제부터일인가? 잘 알고 있듯이, 1894년에 전봉준 녹두장군이 일으킨 갑오 동학혁명을 통해서 과거의 부패한 사회 틀이 무너지고 국정의 개혁이 시작된다. 그해에 갑오경장, 청일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왕조가 급속히 패망의 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갑오 동학혁명 때 동학군들이 외친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이마에다가 붉은 글씨로 ‘오만년수운五萬年受運’, 오만 년 운수를 받는다고 쓴 띠를 동여매었다.
동학혁명 30여 년 전인 1860년 4월 5일, 동학의 교조인 최수운 대신사가 도통을 받을 때 “물구물공勿懼勿恐하라. 세인世人이 위아상제謂我上帝어늘 여부지상제야汝不知上帝耶아.” 『동경대전』「포덕문」‘두려워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예로부터 나를 상제님이라 불러왔는데, 너는 구도자로서 어찌 상제를 모르느냐.’ 그런데 동학이 3대 교조 손병희 선생에 의해 ‘천도교’로 바뀌면서 상제관이 완전히 왜곡이 된다. 어린이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배우는 모든 국사 교과서, 국민윤리 교과서에 ‘천도교의 사상은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으로서 인간 존엄의 극치를 외쳤다’고 되어 있다. 완전히 왜곡된 것이다.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포덕문」을 보면, 상제님께서 최수운 대신사에게 “주문을 받아라. 대도를 펴라”고 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 내려주신 주문이 바로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열석 자이다. 최수운 대신사는 또 “호천금궐 상제님을 너희 어찌 알까보냐” 「安心歌」라고 노래했다.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을 받은 나도 상제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세속의 너희들이 어떻게 상제님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는 뜻이다.
동학의 핵심은 ‘상제님이 천주, 즉 하늘의 주인이라는 것’과 ‘상제님의 강세와 후천개벽이 올 것’을 선언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천도교에 대해 논문도 쓰고 책을 냈는데, 하나같이 상제관이 잘못되어져 있다. 우리 동방 한민족의 시원문화 역사가 말살된 것처럼, 그 첫 출발에서부터 진리의 본래 한 소식이 왜곡되어 그 뿌리가 뽑히고 말았다.
갑오 동학혁명 때 동학군들이 이마에다가 붉은 글씨로 ‘오만년수운五萬年受運’, 오만 년 운수를 받는다고 한, 오만년수운五萬年受運은 무슨 의미인가?
대자연의 창조 이법, 이(理)란 문자 그대로 이법(理法, principle)이다.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가, 우주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 하는 만물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치를 말한다. 리(理)는 이법, 섭리, 우주의 창조 법칙이다. 곧 자연과 인간이 태어나고 살다 죽는 대자연의 이법을 말한다. 우주는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인류의 기원과 인간의 삶의 목적, 인류의 미래 등 모든 것이 이 리理 자 속에 들어 있다. 이 이법理法을 알아야 무지로부터 해방된다. 이법을 제대로 깨야 사람이 밝아진다.
자연 속에 있는 숱한 이치를 찾아내는 것, 이것이 역사의 과정이요 문명의 과정이다. 그렇게 해서 자꾸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간은 밤이 되면 불을 켤 줄 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바로 그 이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는 두 가지 전류 변화가 있다. 양전기, 음전기, 이것이 음양의 이치다. 우주 만유, 사물에는 두 가지 변화의 얼굴이 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음적인 게 있으면 양적인 게 있다. 그 변화의 이치가 바로 음양의 원리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자연에 대한 변화를 들여다보고 깨달은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곧 음양론이다. 한 번은 음(陰)운동을 하고, 한 번은 양(陽)운동을 하는 것! 그 가운데 가장 작은 음양의 변화는, 하루 낮과 밤[晝夜]이 바뀌는 것이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주기만 좀 다를 뿐이지, 낮과 밤은 어김없이 바뀐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한 번 음 운동, 한 번 양 운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변화하는 게, 자연의 근원 질서[道]라는 말이다. 낮과 밤의 지속적인 반복, 그것이 순환(circulation)이다.
이 우주 만물은 순환한다. 지구의 자전운동, 우리 몸의 기혈 순환운동, 호흡운동 등 모든 것은 순환을 함으로써 변화가 지속된다. 하루도 낮과 밤이 계속 지속되고, 지구 일년 사계절도 생장염장(生長斂藏)으로 순환한다. 이 우주의 법칙, 대우주의 기본 틀이라는 것은 순환의 도(道)로 둥글어간다. 이 대자연을 향한 신비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우주가 생겨나 변화하는 창조이법에 대해 깨치는 것이다. 그걸 아는 게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니다.
과학에서도 자연의 질서를 설명하는 <;;통일장 이론: unified theory of field>;;을 얘기하고 있다. 이것을 흔히 만사형통의 원리('theory of everything')라고 한다.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는 말이다. 우주론의 결론으로 말하면 그 통일장의 원리가 바로 생장염장(生長斂藏)이다. 하루의 낮과 밤, 그리고 지구일년을 관통하는 시간 질서, 우주변화의 기본이법이 곧 생장염장이다. 하늘과 땅 · 역사와 문명 · 극미의 원자와 극대 우주, 그리고 인생의 섭리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생장염장의 틀로 설명한다. 이것을 알기 쉽게 얘기하면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의 변화다.
이 순환의 질서, 우주변화의 도(道)가 '생장염장'이다. 우주의 변화법칙인 생장염장에 의해서 천지는 만물을 낳아 기르고 거두고 폐장하고 쉰다. 그렇게 해서 겨울에 쉬는 시간을 넘어 다시 또 봄이 온다. 이 우주에 또 다른 봄이 오고 인간이 또 창조되기 시작한다. 지금 과학에서는 지구 탄생 이래로 빙하기가 다섯 번에서 일곱 번 있었다고 하고, 또 지구의 남극과 북극이 뒤바뀌어지는 큰 변화가 자그마치 2백 회나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과학에서 밝히는 시간의 큰 주기(Cosmic Year)
● 남극대륙의 빙하에 3,623m나 되는 구멍을 낸 러시아, 미국, 프랑스의 공동 탐사팀은 빙하에 남겨진 기록으로부터 335,000년 245,000년 13만5,000년 간격으로 빙하기와 간빙기 사이의 전이를 발견하였다. (Bernhard Stauffer. "Climate change: Cornucopia of ice core results". Nature 399. 1999. 412쪽)
●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2만에서 2백만 년 전 플라이스토신기(更新世)의 빙하량 변화를 조사한 SPECMAP(Spectral Mapping Project) 시간 척도는 지난 해빙기 중심을 12만7,000년으로 보고하고 있다. (J. Imbrie. et. al. Milankovitch and Climate. edited by A. L. Berger et. al. Reidel. Dordrwcht. 1984. 269쪽: J. Imbrie. et. al. "On the structure and origin of major glaciation cycles: I. Linear responses to Milankovitch forcing". Paleoceanography 7. 1992. 701쪽)
● 더욱이 산호층 단구의 연대는 12만8,000 ~ 12만2,000년 전 해수면이 최대 정점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C. H. Stirling. et. al. "Timing and duration of the Last Interglacial:Evidence for a restricted interval of widespread coral reef growth". 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 160. 1998. 745쪽)
지구 1년을 보라. 지구는 하루에 360도 자전한다. 하루의 주야 동정(動靜)은 모든 변화의 기본이다. 이 만물 생명의 기본 변화인 동정의 리듬을 만드는 어머니 지구가, 1년 동안 360회 자전을 지속하면서 태양을 안고 공전하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면 지구 1년 4계절 생장염장의 변화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 1년 4계절이 열려서, 봄이 되면 초목에서 새싹이 나와[生], 여름이면 잎과 줄기가 자라서 하늘을 덮었다가[長],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거두고[斂], 겨울에는 쉰다[藏]. 그러고 나면 또 다른 지구 1년이 열리고, 봄이 오는 것이다.
지구 1년의 순환도수는, 자전360도, 공전360도 순환 반복하므로 360°×360° = 12만9천6백 도다. 인간의 몸도 음양으로 변화한다. 즉 맥[陰]이 뛰고 호흡[陽]을 한다. 맥이 뛰는 건 혈맥(血脈)이고, 호흡은 기맥(氣脈)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두 맥을 합치면, 하루에 12만9천6백 도수이다(하루의 혈맥 수:72×60×24=103,680, 하루의 기맥수:18×60×24=25,920, 도합 129,600). 이 12만9천6백 수는, 천지와 인간 생명 변화의 기본 사이클을 이루는 도수인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오묘한 생명의 창조 주기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천지와 만물의 생성 변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핵심 비밀이 이 우주 1년의 주기에 있기 때문이다. 12만9천6백 년! 이 수는 중국 송나라 때, 소강절(1011∼1077)이 하루[一日]라는 짧은 시간의 마디를 가지고 찾아낸, 천지 변화의 기본 순환 주기이다. 소강절은 『주역周易』을 한평생 공부하고 "이 천지 밖에 또 천지가 있으면 모르려니와 차천지내사(此天地內事)는 내가 모르는 바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천지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를 깼다.
우주 1년을 오늘날 과학 용어로 말하면 ‘시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주의 일년 12만9천6백년을 한 주기로 볼 때, 봄여름 선천 5만 년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가을이 온다. “우주 1년은 필연적인 우주의 법칙이다.” 하루, 지구 1년, 우주 1년 사계절의 창조 법칙, 그것이 바로 생장염장의 이법이다.
사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자연 변화의 속성은 순환이라는 걸 깨달았다. 서양의 철인들도 하루 낮과 밤의 순환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우주 1년으로 확대 인식하지 못했다. 수천 년 된 고대 그리스문화를 보면, 그들도 우주의 큰봄, 큰여름, 큰가을, 큰겨울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로,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오는지를 몰랐다. 더욱이 중동의 사막문화에서는, 환경적으로 순환 체험을 전혀 못 한다. 그래서 그 곳 사람들은 직선 시간관 의식이 강하다.
이 우주 1년 4계절을 전기 후기로 나누어 봄여름을 선천(先天, the early heaven), 가을겨울을 후천(後天, the later heaven)이라고 한다. 우주 1년 12만9천6백 년에서, 선천개벽으로 처음 인간이 태어나 살 수 있는 기간이 선천 5만 년, 또 생명 활동을 쉬는 겨울(빙하기)이 올 때까지, 인간의 생존기간이 후천 5만 년이다.
인간이 탄생하여 성장하는 과정, 인간이 자기계발하는 영성의 성장 과정이 선천先天 5만 년이고, 인간이 완전한 깨달음의 진리를 통하여 성숙한 가을 인간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후천後天 5만 년이다. 그런데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선천 봄여름의 자연 이법이 상극相克이라는 것이다.
선천(先天, the early heaven)에는 천체가 23.5도가 기울어져서 하늘과 땅의 관계가 삼천양지(三天兩地)로 되어 있다. 즉, 양(陽)인 하늘은 셋이고, 음(陰)인 땅은 둘이라고 하는 불균형 때문에 기울어진 지축을 중심으로 양기(陽氣)가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자연의 불균형 부조화, 음보다 양이 훨씬 강한 천지의 구조 속에서 상극相克의 운(運)이 조성된다.
원리적으로 상극相克의 현상을 이해를 할 때는 서로 상(相) 자 이길 극(克) 자, ‘두 사물 사이에 서로 극한다’는 의미로, 본래 뜻은 한쪽이 상대를 물리친다, 제압한다는 말이다. 순수한 자연의 봄여름의 법칙, 대자연의 이법으로서의 상극을 영어로는 조정한다, 제어한다는 의미인 뮤츄얼 리스트레인(mutual restrain)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
자연 속의 상극相克은 투쟁 전쟁 죽음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순수한 음양(陰陽)의 상극으로 ‘서로를 제어한다’는 의미다. 이 극의 이치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균형되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음과 양 상호간의 작용을 조정 제어하는 조화의 법칙이 된다. 이 상극의 이법적 환경속에서는 그 상극 기운의 영향을 받아 서로 경쟁하고, 전쟁을 하는 등 상호투쟁을 하게 된다. 문명 속에서 일어나는 이 때의 상극相克은 영어로 뮤츄얼 컨플릭트(mutual conflict)로 번역을 해야 맞다. 이렇게 자연의 상극과 문명의 상극이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인간의 문명속에서 상극相克을 쓸 때는, ‘정말로 극이 너무 많아’ ‘장애가 너무 많아’ ‘넘어서야 될 장벽이 너무 많아’ 라는 의미로 쓸 때는, 인간 세상에서 터져나오는 모든 비극과 수많은 재앙들, 자연재해, 하루도 쉬지 않고 터지는 교통사고, 수많은 인간들끼리의 분쟁과 같은 그러한 비극의 근원적 원인으로서 상극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순, 갈등, 죄악, 전쟁, 모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들이 여기에 다 들어간다. 이 자연의 상극相克과 문명의 상극 속에 서교의 원죄(原罪) 문제, 불가에서 말하는 인간의 무명(無明)과 업장의 문제가 다 들어간다. 선천문화권에서 인간론에 대해 언급한 숱한 문제들이 ‘상극의 이치理致가 인간과 만물을 맡았다’는 그 한마디로 다 풀어지는 것이다.
상극(相克)의 이치’란 자연의 이법理法으로서 하늘땅이 만물을 다스리고 길러내는 생성, 창조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이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길러내므로 인간의 역사, 문명속에서는 이 상극이 하루도 싸움이 그칠 날 없는 비극적 세상을 만들었다. 선천先天은 상극의 이법理法이 인간 역사속에서는 상쟁(相爭)이 돼서 피비린내 나는 상호투쟁, 대결, 생사를 판가름 짓는 전쟁 전란으로 화해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웠고, 어찌할 수 없는 상극의 자연이법, 상극의 운수로 인해 선천의 모든 인간과 만물은 원한을 맺고 사는 상극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극의 천리天理가 인사(人事)로는 원한으로 맺히기 때문에, 인간역사의 뿌리깊은 원한의 갈등은 인간의 도덕적 교화만으로는 전혀 풀릴 수 없는 문제다. 선천 봄여름에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비극의 원인은 단순히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환경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극相克의 이치 때문에 조화와 균형이 깨져 있는 선천의 자연환경 자체가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금 지구에는 물, 마실 공기, 식량, 에너지 등이 부족하다. 언론에 공개된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를 보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선천先天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신들의 세계조차 상극의 지배를 받으며 태어나고 살아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우주의 전 역사과정은 선천 우주의 봄여름천지가 만들어낸 하나의 연출이었다. 선천개벽으로 봄여름이 열려서 인간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는 상극相克이 우주의 근본 질서가 되어 현실역사가 둥글어간다. 즉, 음과 양이 만물을 낳아 길러 분열하는 쪽으로 우주의 생명 질서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지구상에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상극相克이 인간역사의 경쟁원리가 되어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를 계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꺼꾸러트려야만 했다. 이것이 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오행 |
木: 유(儒) |
金: 불(佛) |
선(仙) |
水: 동선(東仙) |
火: 서선(西仙) |
도의 전공분야 |
유지범절(凡節) |
불지형체(形體) |
선지조화(仙之造化) |
우주 주재자 |
상제님 |
미륵 천주님 |
옥황 상제님 |
백보좌 하느님 |
목적(目的) |
대동(對同) |
극락(極樂) |
태청(泰淸) |
천국(天國) |
교리강령 |
충서(忠恕) 존심양성 (尊心養性) 집중관일 (執中貫一) |
자비(慈悲) 명심견성 (明心見性) 만법귀일 (萬法歸一) |
감음(感應) 수심연성 (修心練性) 포원수일 (抱元守一) |
박애(博愛) 성령감화 (聖靈感化) 삼계유일 (三界唯一) |
삼극 |
오황극 (五皇極) |
일태극(공) (一太極(空)) |
십무극(十無極) |
三位一體 |
무극/태극/황극 |
법신/보신/화신 |
옥청/상청/태청 |
성부/성자/성신 |
특히 종교전쟁의 역사를 보라. 얼마나 참혹한가. 거기에 무슨 신神이 있고, 믿음이 있고, 정의가 있는가. 오직 독단과 죽음밖에 없다. 미국의 지성인 캔 윌버가 한 불교 승려에게 물었다. “중국의 불교 역사에서 깨진 자가 얼마나 됩니까?” 이에 대해 승려가 “크게 잡아도 천만 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캔 윌버가 다시 “그럼 일본 역사에서는 얼마나 됩니까?” 하자 “낫 모어 댄 어 더즌(Not more than a dozen).” 이라 했다. 기껏해야 한 여남은 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천종교 역사의 현주소다.
앞으로 오는 우주의 가을은 자연의 질서가 상생相生이요, 인간 역사의 질서도 상생이 바탕이 된다. 상생이란 무엇인가? 상생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도수(天度地數)다. 하늘땅을 중심으로 말하든, 남녀의 인권문제를 얘기하든, 아니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신의 관계가 됐든, 모든 음양의 부조화가 정正도수로 바로잡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고통 속에 사는가? 서양종교에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다고 한다. 구렁이로 상징되는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처럼 똑똑해지려고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댓가로 세세토록 인간들이 원죄의 씨를 안고 고통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불교도 십이인연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감각세계에서 근본무지인 어둠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근본무명fundamental ignorance’에 휩싸여, 온갖 죄를 짓고 악업을 받고 육도윤회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그 근본 틀이 같다. 또 이 죄업이니, 악업이니, 윤회니, 하는 것이 선천의 상극相克 판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가 없다.
모든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비극의 문제는 어디서 오는 거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선천이 상극相克의 운運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천先天에는 천지부모의 몸이 동북방, 양陽의 방향으로 기울어져서 만물을 쏟아냈다. 동과 서가 부조화하고, 남과 북이 부조화하고, 남자와 여자, 모든 사물들 사이에 조화가 깨져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고 갈등을 하고 남을 죽이고 그러면서도 또 용서하면서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을 해 온 것이다.
선천先天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정복의 역사다. 16세기에 남미의 인디언들 8천만 명이 스페인 정복군들에 의해 참혹하게 죽어 인디언들이 거의 다 멸망을 당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런 전쟁사가 너무도 숱하다. 미국에 정착한 백인들이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흑인 5천만 명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고, 짐승처럼 부리고 학대하고 죽였다. 조선시대 때 사육신에 성삼문 (成三問)이 있다.
성삼문 아버지가 이길 승 자 성승(成勝)인데, 수양대군이 성삼문 을 설복시키려고 그 아버지를 잡아다 대궐 뜰에 벗겨놓고서는 쇠로 만든 인두를 참숯불 같은 데 벌겋게 다려서 등짝서부터 장단지 이런 데를 그냥 막 지져댄다. 그러면 살댕이가 지글지글 타면서 연기가 풀풀 나고 고기 익는 냄새가 나고 그런다.“ 자, 니가 항복을 하면 니 애비가 이런 악형을 안 당한다. 항복을 해라.”그런다. 허나 성삼문 이는 아버지가 그런 악형 당하는걸 보면서 참 안 됐지만 눈도 깜짝 안 한다. 성승이 그렇게 해서 죽었다.
항복을 안 하니까 종국적으로 성삼문 의 서너 살먹은 아들을 잡아다가 성삼문 이 보는 앞에서 자루에다 집어넣고 대뜰에서 냅다 태질을 시킨다. 태질시켜서 깨트려 죽인다. 하니까 성삼문 이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하니까 수양대군 하는 소리가‘저런 역적 같은 놈 봐라, 지 애비는 인두로 지져도 눈도 깜짝 않더니 제 새끼를 죽이니까 눈물을 뵌다’고 한다. 그러니까 성삼문 이가 한 소리를 한다.“ 우리 아버지는 왜 죽는 줄을 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천지에 생생지리(生生之理)로써 생겨나서 세상에 왔다가 왜 죽는지를 모르고 죽는다. 그래서 비정한 그 불의에 분해서 내가 눈물을 흘렸다.”고.
가치관이라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가치관을 위해서 사육신도 되고 생육신도 된다. 사육신의 그 처절한 역사. 지나간 인류 역사라 하는 것은 그렇게 상극이 사배해서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그러면서 성삼문 이 죽으러 나가면서 이런 시를 읊는다. “황천(黃泉)에 무주가(無酒家)하니 금야(今夜)에 숙수가(宿誰家)오.”황천에는 술집이 없을 게다. 목 베여 죽어 황천에 가서도 술 한 잔 사먹고 싶을 텐데, ‘금야에 숙수가오.’술집도 없으니 술 한 잔도 못 사먹고, 또 잘 집도 없을 테니 오늘 저녁에는 뉘 집에서 잘꼬. 죽는데 잠을 어디서 자나. 그냥 그렇게 읊은 소리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예방승지(禮房承旨)로서 아버지 승(勝)·박팽년 등과 같이 단종의 복위를 협의했으나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의 밀고로 체포되어 친국(親鞫)을 받고 처형되었다. 아버지 승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극형에 처해졌고, 아내와 자식은 끌려가서 자기 옛 동료의 종이 되고, 집안의 구족九族이 무참하게 멸한 신명은 그 원한이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삼빙(三聘)·삼고(三顧)·삼성(三省) 세 동생과, 맹첨(孟詹)·맹년(孟年)·맹종(孟終)과 갓난아기 등 네 아들도 모두 살해당했다. 그렇게 철천지한을 맺고 죽었다.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도 그렇게 한 많은 세상이다.
백두산석(白頭山石)은 마도진(磨刀盡)이요 두만강수(豆滿江水)는 음마무(飮馬無)라. 남아이십(男兒二十)에 미평국(未平國)이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랴. 이 글을 지은 사람은 남이(南怡) 장군이다. 남이가 스물일곱 살에 병조판서를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방장관이다. 그런 참, 고금에 없는 영웅호걸이었다.
“백두산석(白頭山石)은 마도진(磨刀盡)이요.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서 다 했고, 두만강수(豆滿江水)는 음마무(飮馬無)라. ‘두만강 물은 말이 마셔서 다 말라버렸다. 남아이십(男兒二十)에 미평국(未平國)이면 사람이 스무 살 먹어서 나라를 평정하지 못 할 것 같으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랴. 후세에 누가 그 사람을 대장부라고 일컫겠느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때 유자광(柳子光)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자광이 생각해보니까 남이라는 놈이 스물일곱 살 먹은 게 벌써 국방장관이 되었으니, 자기 자신(自己自身)이 출세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게 생겼다.
가만히 보니 죽일 기회를 포착을 했다. 그 글 지어놓은 것을 ‘남아 이십에 미평국이면, 남아가 스무 살 먹어서 나라를 평정하지 못 하면’에서 ‘평할 평’ 자를 ‘얻을 득(得)’ 자로 고쳐버렸다. 평할 평 자, 평국(平國), 나라를 평정하면 만고충신이 되는 것이지만 득국(得國), 나라를 얻으면 만고의 역적이 되는 것이다. 유자광이 그렇게 ‘득국’이라고 고쳐서 임금에게 고해 바쳤다. “저놈이 득국이라고 그랬습니다.” 하고. 임금이 듣고는 “하~ 그놈 참 역적놈이로고!” 했다. 역적 소리가 나면 이유 불문, 이유를 따질 것도 없다. 그건 죽지 않고는 못 배긴다.
만고충신인 남이장군이 글 한 수를 지었는데, 유자광이 얻을 득得 자 한 자로 모함을 해서 아무 죄도 없이 죽었다. 서울에 가면 남이장군의 사당이 있다. 지나간 세상은 인류역사가 그렇게 전부 피로 물들었다. 내가 지나간 세상을 한마디로 묶어서 표현을 하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 과정이라 하는 것은 참 너무 너무 한 많은 세상이었다. 한마디로 전쟁의 역사다. 그 세상은 죽여서 뺏고 또 죽었으니 뺏기고, 역사가 그렇게 됐다. 묶어서 상극(相克)이 사배(司配)한 세상이었다. 그런 역사 과정에서 이 세상에 왔다 간 사람 쳐놓고 원한을 맺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가난한 한, 남한테 압제(壓制)를 받은 한, 종살이를 한 한, 상놈의 한 등. 예를 들어 소금 만드는 사람을 염한(鹽漢)이라고 하는데, 그 한(漢) 자는 놈 한 자다. 장사를 하면 장사꾼놈이라 하고 전부 다 놈 자를 붙여서 불렀다. 양반이 몇 명이나 되나, 세상천지! 또 상놈은 박사가 백 개라도 벼슬도 안 주었다. 그런 깊은 한도 있다. 사람은 누구도 다 자유를 향유하고서 한평생 잘 살려고 왔는데, 아니 세상에 나와서 보니, 무슨 국민이라는 위치에서 국가의 위압 때문에 제대로 살 수가 없다. 다른 국가하고 전쟁을 일으켜놓고 국민이라고 해서 끌어다가 다 죽여 버린다. 국민의 위치에서는 전쟁하다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전쟁터에 안 나가면 못 배기니까 끌려 나간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졌다. 그렇게 여러 천 년을 내려오면서, 모두 본의 아니게 타의에 의해서 죽어 넘어갔다.
또 남의 음해 때문에 억울하게 죽기도 하고. 제 생각대로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전부가 다 남의 정신에 의해 살다가 죽어버렸다. 그래서 그 원한이 하늘을 꿰뚫고, 원통하게 죽은 원신(寃神)과 역적으로 몰려 죽은 역신(逆神)이 하늘땅 사이에 가뜩이 찼다. 그러니 그 원신과 역신을 해원(解寃)을 시키지 않고서는 능히 좋은 세상을 만들 수가 없다. 지나간 선천先天 봄여름 역사 속에서 그 한 많은 역사적인 신명들이 하늘땅이 터질 만큼 양산(量産)이 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생명계의 변화의 이법은 결국 단순한 네 글자인 것이다. 생장염장生長斂藏! 생장염장, 낳아서, 길러서, 거두고, 휴식한다. 그런데 세 번째의 ‘거둔다!’고 하는 염(斂), 여기서 모든 종교와 인간 역사의 총 결론이 나온다. 이 우주에서 인간의 삶을, 인간의 생명을, 인간의 역사를 거둔다! 이것이 우주의 가을 소식이다. 지금 우리는 우주 1년의 봄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넘어가는 문앞에 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인간의 문제는 바로 이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夏秋交易의 문제이다. 우주는 봄여름을 넘어 가을이 있고 겨울(빙하기)이 있다. 이것이 우주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소식이요, 우주 1년 선후천 소식이다. 또한 이것이 소위 인간 농사짓는 우주 1년 소식이다. 이 우주는 인간을 낳아 길러서 가을에 성숙시킴으로써 우주의 이상을 실현한다. 즉 우주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손을 빌어 천지의 꿈과 이상을 건설한다. 이것이 우주의 존재 목적이다.
이제 상극相克의 질서가 문 닫고 상생相生의 새 질서가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상생相生을 말한다. 정치인들은 상생의 정치를 해 보자고. 그런데 그들은 상생相生이 뭔지, 상생의 진짜 뜻은 모른다. ‘상생相生’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우주 만유가 가을천지 개벽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천지에서 인간농사를 짓는데 하늘이 오늘의 우리를 내서 길렀다. 무얼 위해서인가? 바로 이 가을 천지의 천지 부모와 함께 거듭나라고 기르는 것이다.
천지의 질서가 바뀐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천지의 질서가 봄여름은 분열, 가을철은 통일이다. 초목농사로 얘기를 하면, 봄에는 뿌리에서 기운이 발동해서 쫙 올라가 줄기를 향해서 뻗어나간다. 앞마당의 단풍나무를 보면 겨울철에는 이파리가 죽어서 아무것도 없었는데 3월이 돼서 봄비가 한번 내리니까 며칠 사이에 이파리가 쭉쭉 나와서 일주일 후에는 하늘을 다 덮어버렸다. 봄여름의 기운은 그렇게 발동하는 것이다. 기운이 하늘을 향해서 뚫고 올라간다. 그렇게 분열 생장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성장이 멈추면서 모든 기운이 뿌리로 내려가고 그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다.
천지에서 인간을 내면, 인간은 자연 속에 문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건설한다. 즉, 자연이 변화하는 길과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역사의 과정, 즉 문명의 발전과정이 일치하는 것이다. “자연섭리라 하는 것은 천리天理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도 함께 성숙한다”는 말이다. 개벽開闢이란 무엇인가? 개벽이란 ‘열 개’ 자, ‘열 벽’ 자다. 연다, 개방한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열고 또 연다는 것인가? 천지의 질서가 새로운 차원으로 열린다는 뜻이다. 하늘도 열리고 땅도 열린다. 그리하여 천지의 새 질서가 열리는 과정에서 인간 문명의 틀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명개벽이다.
지난날 인류가 살아온 역사 과정은 선천세상이다. 쉬운 말로 봄여름 세상! 그런데 앞으로 오는 가을겨울 세상은 후천後天이라고 한다. 후천 세상에는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자연환경이나 인간이 누리는 문명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은 천지의 질서가 바뀌기 때문이다. 천리天理가 바뀌고 지리地理도 바뀐다!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는 게 무엇인가?
3천년 전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총결론이 개벽開闢이다. 석가모니가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법으로는 이 세상을 온전히 건져내지 못하고, 저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님이 오신다.”고. ‘미륵님의 법으로 지구촌 만백성의 마음을 열어주어 모든 인간이 부처가 된다.’ 석가가 자기 아들 라훌라와 수석성도 가섭, 군도발탄, 빈두타 등 네 제자에게 “너희들은 내 법을 받아 열반에 들지 말고, 저 도솔천 천주님의 법을 받아 열반에 들라.”고 했다. 미륵불의 도법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라는 말이다. 이것이 미륵님이 여시는 용화낙원의 실체다. “새 부처님이 새 진리를 가지고 오신다. 그 때는 우주의 별자리가 바뀐다.” 우주질서가 바뀐다! 이것이 불교의 최종 결론이다.
예수 성자는 “돌멩이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넘어간다.”고 했다. 지구촌에 돌멩이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돌멩이가 다 넘어간다, 이 천지 간에 안 넘어가는 게 없다는 말이다. 사도 요한의 새 하늘 새 땅도 개벽문제의 결론이다. 사도 요한이 로마에 들어가 전도하다가, 밧모섬에 귀양가서 백 살이 넘도록 기도하던 중, 그는 “나는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았습니다.” 하는 고백을 남겼다. 이것은 신천지新天地가 열린다, 천지의 질서가 바뀐다는 말이다.『주역』을 보면, 유가의 결론도 개벽이다. 즉 “성언호간(成言乎艮), 간방(艮方)에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동북 간방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한 마디로 가을개벽, 철학적 종교적 언어로 후천개벽이다. 불교의 결론, 기독교의 결론, 유교의 결론, 주역의 결론, 동서문화의 결론이 개벽開闢이다, 사실 그들은 개벽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가 보아도 그것이 ‘아~ 앞으로 오는 개벽開闢을 말한 것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천지 질서가 왜 바뀌는가? 이것을 이치적으로 처음 전한 분이, 바로 이 땅에 태어난 19세기 후반의 일부(一夫) 김항(金恒) 선생이다. 그는 앞으로 주역(周易) 세상이 끝나고 정역(正易)세상이 온다. 곧 “선천先天에서 후천後天으로 가면서 우주질서가 바뀐다. 타원형의 지구궤도가 정원형 궤도로 바뀐다.”고 했다. 개벽開闢이란? 지구촌의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우주질서로 들어가는 우주의 재탄생 문제다.
과거, 지나간 세상 선천 우주의 봄여름철 역사라 하는 것은 기화요초(琪花瑤草), 그 좋은 각색 꽃들이 가득 피듯이 별 문화가 다 나왔다. 크게 예를 들어 공자 문화도 나왔고 석가 부처 문화도 나왔고 예수 문화도 나왔고 마호메트 문화도 나왔다. 소크라테스 철학도 나왔다. 그게 다 좋은 꽃들이다. 다 선천 기존 문화권의 꽃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역사 문화가 이번에 어떤 열매기 하나로 통일을 하느냐 하면, 큰 틀로 묶어서 군사부(君師父) 열매가 맺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