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윤 부모님과의 인터뷰 : 공부만을 위한 공부 거부한 샘윤의 사연
보스톤코리아  2009-06-29, 12:52:54 
지금의 샘윤 시의원을 가장 잘아는 사람은 아마 부인 크리스티나씨와 자녀들일 것이다. 샘윤의 보스톤 시장을 위한 대장정에 늘 힘이 되어주는 것도 부인 크리스티나씨와 자녀들.

하지만 지금의 샘윤이 있기까지 모든 과정을 잘아는 사람은 바로 그의 부모님 윤원길(68세, 전 산부인과의사), 윤만강(권만강 64세)씨. 늘 샘윤을 칭찬하며 긍정적인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사람이 바로 그의 부모님이다.

오늘날의 샘윤 시의원을 길러낸 부모님을 만나서 샘윤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스톤 코리아는 16일 도체스터 월댁 스트리트(Waldeck Street) 샘윤시의원 자택에서 부모님과 만났다.

이민오게 된 이유는?
아버지: 1970년에 미국에서 전문직 이민을 적극 받아 들였다. 마침 의사들이 미국에서 귀했다. 이민이 막 시작됐었던 시대여서 졸업반 중에 약 반 정도가 미국에 건너왔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하고 의료기술을 배워가지고 한국에서 의술을 펼치려고 했지만 이곳에서 애들이 잘 자라고 또 애들 교육도 좋고, 한국에서 교육받으러 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머물게 됐다. 처음 생각을 바꾸게 됐다.

이민 생활 초창기에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아버지: 아무래도 언어가 제일 문제였다. 한국에서 회화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해석하라 하면 잘하는데 미국사람하고 대화하는 것은 문제였다. 간호원들하고 자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처음에 할 때는 우리말이 자꾸 튀어 나왔다.

밤중에 깨어 전화를 받고 파이브 퍼센트를 주라 해야하는데 오 퍼센트를 주라고 했던 경우도 있었다. 아직도 그것이 생각난다. 오 퍼센트는 영어로 는 제로인데….(웃음)

샘이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나?
어머니: 샘은 어렸을 때 아주 착한 아이였고, 아주 공정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편파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버지: 일례로 상현(샘윤을 이렇게 부르셨다)이는 동생 상준이와 다른 아이가 싸움을 하는 경우에도 동생편을 들기 보다는 다른 아이 편을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아이도 샘윤을 좋아했다.

남을 재밌고 즐겁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교회에서 누구를 데려온다거나 같이 차를 타면 기쁘게 해주려고 했었다.

학교생활은 어떻게 보냈는가?
어머니: 학교에서 인기였다. 선생님들이 특히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외톨이 같은 아이들이 있으면 특히 이들과 함께 하는 학생이었다. 한번은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아이들이 ‘차이니스’하면서 놀리니까 “I am not a Chinese, I am a Korean”이라고 대답하며 그런 것 가지고 화를 내거나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버지: 고등학교 때 교육에 관심이 있었다. 졸업하기 전에 교장선생님께 교육에 관한 편지를 썼다. 교장선생님이 한달전에 졸업식에 쓸 연설문을 다 적어 놓았는데 상현이 편지를 보고 그 초고를 버리고 다시 썼다고 말했다. 그정도로 교장선생님을 감명시켰다.

어렸을 때 이런 것은 꼭 심어주어야겠다라는 교육 지침 같은 것은 있었는지
아버지: 레바논에서 교회를 시작했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교회를 세우고 이웃 타운의 사람들을 전도하고 해서 교회가 25-30년 됐다.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다. 교회 모임을 집에서 하면 끝나고 청소하는 것 등을 맡아서 했다. 그런 크리스찬적인 환경을 심어주려 했었다.

어머니: 산부인과이니까 집에 돌아오시는 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일찍 들어오면 저녁 먹고 예배를 가졌다. 상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만을 생각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상현이가 7살 때 처음으로 한국을 다녀왔다. 3주 후에 왜 우리가 미국에 있어야 돼느냐고 물었다. 너희들이 미국에서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여기에 있는다고 답했더니 “와 그러면 미국이 고맙네. 나 커서 미국을 위해서 일할거야”라고 말했다.

지난번 비영리기관에서 일할 때, 시의원에 처음 나올 때 그 생각이 났다. 상현이가 걸어온 길을 보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있다. 고치게 하고 바르게 할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을 가졌다.

공부하라고 강요해본 적은 있었나?
아버지 : 공부 잘했다고 칭찬은 많이했지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가 항상 조그마한 선물을 사 두었다가 공부를 잘하면 선물을 주면서 격려하고 칭찬을 많이 하셨다. 음악도 좋아하고 연극도 좋아하고 고등학교 학생회장도 하고 열심히 했다.

아버지: 연극부활동을 하면서 졸업할 때 연극상도 받았다. 지금도 사람들앞에서 나가서 자연스럽게 연설할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영향으로 생각된다.

샘윤은 초중고 모두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사립도 다닐 수 있었을텐데 왜 공립을 택했나?
어머니 : 대학생이 되면 자연히 혼자 떨어져서 살게 될 것인데. 대학교 가기전에 아이의 성품이나 인격이 온전히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사립을 보내기가 싫었다. 가정이 있고 부모 밑에 있어야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 같다. 우리는 상현이를 SAT클래스 조차도 보내지 않았다. 물론 여름에 CTY와 같은 좋은 썸머캠프를 찾아서 보내기는 했다.

정치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나.
아버지: 내가 의사이니까 의사를 하기를 바랬다. 그런데 과학, 수학 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차라리 정신과의사를 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강요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 : 꼭 정치쪽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 방면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위해 크게 일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아버지: 주일학교 모임이 있었는데 숨은 리더십이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남을 적극적으로 리드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했다.

프린스턴 졸업 후 교사를 하고 다시 하버드 케네디 스쿨을 졸업한 뒤에 ACDC를 직장으로 택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찬성을 했었나?
아버지: 젊은 나이니까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기를 은근히 바랬다. 대학원에 가서 Ph.D.를 할 수 있으면 지원해주겠다고 했더니 상현은 “공부를 위한 공부는 안하겠다”며 거부했다. 박사, 석사나 자기자신을 위한 것보다는 실질적인 일을 하겠다고 했다.

어머니: 좋은 경험이었다. 티나를 만났을 때도 샘이 데이트 할 때 돈은 많이 안벌어도 보람있는 일을 하고 살면 좋지 않겠느냐며 프로포즈했고, 티나가 기꺼이 이에 찬성했다고 들었다. 젊었을 때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해보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거기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일만 하다 끝날 것이 아니니까 칭찬하고 잘해보라고 했다.

아버지: ACDC에서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파슬 24를 1달러에 차이나 타운에 되돌려 주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정치인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정치인을 지망하게 된 것이다.

아들로서의 샘윤은 어떤가? 
요즘 카드를 얼마나 예쁘게 쓰는지… 기특한 것은 아버지 노릇도 잘한다. 아침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아주 부드럽게 가르친다. 저녁에 들어와서도 밥을 차리는 시간에 아이들이 안자고 있으면 가서 한참 이야기하고 나와서야 밥을 먹는다. 부인 티나하고도 많은 얘기를 나누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두번의 선거를 지켜보셨다. 그리고 샘윤이 조금 말랐다. 시장선거하면서 고생이 심한데 부모님 심정은 어떤가?
어머니: 7시에 나간다 해서 내려와서 인삼차를 해줬는데 그러고 나면 마음이 좀 놓인다. 어렸을 때 정크푸드 보다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 커서도 그런게 필요한데도 펀드레이징 행사를 하면 밥을 못먹는다.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기도 하고 열심히 들어주기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정치 안했으면 하는 생각은 해보신 적이 있나
어머니: 상현이보다 티나나 아이들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티나가 아주 내조를 잘하고 상현이가 이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불평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부모니까 먹지 못하고 힘들어하니까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 까 하지 상현이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분들이 힘을 합해서 상현이를 도와주는 것이 너무너무 필요한 시기이다. 남의 일처럼 방관하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주 열심히 부지런히 뛰고 있는 상황이다. 이민 가정들이 지원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 아이의 천성과 성품이 이쪽 방면으로 재능이 있다.

아버지: 한국애들 중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계에 진출한 사람은 많지 않다. 벌써 뉴욕 등지에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2세들한테 도움이 되라는 의미로 격려를 했다. 힘들어도 끝까지 해봐라.

샘윤에 대한 격려 말씀을 해달라.
아버지: 지금은 어렵더라도 2세들을 위해서 한인 동포들을 위해서 개척해야 한다. 어렵지만 개척정신으로 수고하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 귀한 일 하고 있고 쉽지 않은 일인데 끝까지 열심히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건강에 조심하면서 잘하고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

장명술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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