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슈비엥침을 아십니까?
보스톤코리아  2013-09-03, 20:10:56 
오슈비엥침 이라 하면, 먼저 ‘거긴 어디지?’ 라는 의문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폴란드 지명으로 오슈비엥침은, 나치 독일이 부여한 이름 [아우슈비츠]로 더 유명하다.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차로 1시간 반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60여년 전에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무엇이길래 이렇게 오래도록 세계인의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는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1942년 히틀러를 필두로한 나치 독일은 흔히 일컫어지는 [인종청소]라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들의 논리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은 본인 게르만 족이며, 특히 열등한 민족인 유대인은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들이 이런 악행을 저지른 숨은 의도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몇가지 짐작들은 가능하다. 12세기, 카톨릭이 유럽 전역의 국교로 채택됨에 따라, 이단으로 분류되던 유대교인들은 직업의 선택 폭이 넓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상술이 좋았던 그들은 유럽 전역의 상권을 자신들의 손에 넣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20세기까지 지속되었으며, 전쟁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나치 독일에게는 상당한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또한 가장 우등한 민족이 게르만족이라 믿던 그들에게는 어쩌면 질투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고, 모두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건을 가슴속 깊이 기억하는 이유는, 사건의 어떠한 원인보다는 참혹한 그 결과 때문이 아닐까.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는 폴란드어로 “ARBEIT MACHT FREI ”라고 쓰여있다. 번역하자면 “노동이 널 자유롭게 하리라” 라는 문구인데, 시작부터 상당히 섬뜩하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내에는 다양한 언어의 가이드들이 대기하고 있지만, 한국어는 없으므로 편한 언어를 골라 가이드 투어를 시작하면 된다. 만 2년동안 확인된 사망자는 130만명. 그 중 100만명이 유대인, 그리고 폴란드 독립운동가와 약간의 집시로 분류된다. 이것은 확인된 숫자일뿐,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까지 합치자면, 수를 헤어릴 수가 없게 된다. 2년동안 서울인구 1/10을 죽였다니, 그들의 잔혹성은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아우슈비츠의 잔혹성을 다루자면 끝이 없겠지만, 해당 기사에서는 어떻게 그들을 아우슈비츠로 끌고 왔는지에 대하여 고발하고자 한다. 아우슈비츠로 유대인을 호송함에 있어서 기록으로 남은 사진들이 있는데, 신기한것은 짧게는 몇시간, 길어야 몇달후에 독가스를 마시고 목숨을 잃게 될 그들이 호송 기차를 타면서 밝게 웃고있거나, 손을 흔드는 장면이다.

# 국민을 지켜주지 않은 국가
당시 사진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기차에 쓰여잇는 여러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이중 하나는 프랑스 국영기업의 이름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당시 프랑스 정부중 나치에 협력한 이들이 자국내 유대인들을 거짓으로 꾀어내어 아우슈비츠로 호송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치 독일은 적은 군인원으로 많은 수용자를 효율적으로 호송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이러한 방법의 유대인 호송은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협력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행되었고,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겠다고 거짓으로 꾀어냈지만, 기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그들의 고통은 시작되었다.


 

# 이윤만 추구한 이기적인 기업들
비교적 크지 않던 국가 독일 홀로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니, 시간이 지날 수록 힘이 달리기 마련이다, 숟가락 하나까지도 무기를 만들러 이용한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사람이 아닌 도구로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왜 현재까지도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강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은 바로 전쟁의 역사로부터 시작된다.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 벤츠등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은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의 노동력을 대가없이 공짜로 취하였다. 그 결과로 그들은 아직도 자동차 산업에서 큰 부를 누리고 있다. 노동할 수 없는 유대인은 바로 가스실로 가게 되었고, 꼭 그전에 머리를 잘랐다. 그 수북한 머리카락들은 나치독일의 군복, 모포, 양말의 원료로 이용되었다. 이를 디자인 한 것이 현재 남성의 정장의 로망 휴고 보스이다. 물론 그는 전후에 스스로 감옥을 선택하였다.

아무런 이유없이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던 그들의 역사는 아직도 세계인의 마음에 남아있다. 전쟁이 갑자기 끝나는 바람에 수용소 철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도망간 나치 독일군, 몇 안되지만 남은 수감자들끼리 힘을 모았고, 그로 인하여 아우슈비츠는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고, 여타 단체의 도움을 받아 현재까지도 그 아픔을 세계인에게 전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또 이러한 끔찍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라고 밝힌 생존자의 말 때문일까,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대 학살의 결과로 향후 70여년간 유럽 전역에 역사에 찾아 볼 수 없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좌로는 독일 우로는 러시아 라는 최악의 지리요건을 가진 국가라고 스스로 농담을 던지는 폴란드는, 현재 좌 중국 우 일본이라는 자랑스런 우리조국 대한민국과 많이 닮아있다. 비슷한 시기에 당한 치유되지 못한 아픔이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알고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시한번 스스로에게 꼭 한번은 물어보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당신은 먼훗날 손자의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보스턴 코리아 아이리포터 이재황
jabamugu@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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