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을 지점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백혜선 - 그녀의 보스톤 클래식
생각의 자유를 위해,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미국행
영감과 깨달음을 주는 예술은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순간, 자신이 클래식 음악가면 엄청난 행운
보스톤코리아  2019-06-06, 21:15:32 
피아니스트 백혜선 교수
피아니스트 백혜선 교수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우상원 객원기자 = 1990년대,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두던 한국 사람이라면 피아니스트 백혜선을 모를 수는 없다. 화려한 콩쿨 경력에 실력까지 인정받아 한국에서 최고의 자리를 누렸던 그는 2005년 안정된 생활을 박찼다. 영혼의 자유를 찾아 다시 미국 행을 선택한 뒤, 14년의 시간이 흘렀다. 인생의 경로는 변하지만 클래식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5년 전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작년 가을부터는 모교인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돌아와 교수로 재직 중이다. 6월 14일 보스톤 한미예술협회를 위한 모금 연주회를 여는 백혜선 씨를 본지 객원기자인 소프라노 우상원 씨가 이메일을 통해 만났다. (편집자 주)

우: 작년 가을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돌아오셨다. 올해로 국제무대 데뷔가 30년이다. 이제는 청년기에 접어든 두 자녀의 엄마가 되셨는데, 연주자 및 교수로 그 간의 모든 여정을 거쳐 다시 보스턴에 돌아오신 소감은 어떤가?

백: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아니면 인생의 가을 지점에서 나에게는 유일했던 음악학교로 돌아오게 되었다. (주: 백혜선 씨는 14세에 보스톤으로 유학해 학사와 석사,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 모두를 뉴잉글랜드 컨서바토리에서 마쳤다.) 더욱 음악에 헌신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굉장히 영광스럽고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롭다. 더 열심히 잘 살아야 된다는 의무감까지 느껴 어깨가 무겁다. 스승님(변화경 교수와 러셀 셔먼 교수)들이 계셔서 다시 학생이 된 느낌도 있고, 더 배울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 평생 학생이었으면 참 좋겠다.

우: 한국인 음악가로 미국이나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는가? 아니면 한국인이었기에 혹은 한국이 있었기에 힘을 얻었던 적이 있었는가? 

백: 엄청나게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힘들다. 인종 차별을 온 몸으로 느끼며 늘 최선을 다하고 극복해 나간 세대라 생각된다. 1994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나갔을 때, 동양 여자라는 것 때문에 엄청나게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견뎌서 입상할 수 있었다 (90년도에 이미 한 번 겪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성장하던 시대에는 우리 나라가 문화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아서, 워싱턴에서 국제 콩쿨에 1등을 했을 때 한국 대사관에 연락을 했는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난 25년 간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 경제인들이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게 유행이 됐고, 여러 콩쿨들은 한국 입상자들이 모든 상을 휩쓸어갈까 봐 걱정한다. 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한국 젊은 음악가들을 이길 수 있겠냐고 묻기도 하고 대사관, 영사관, 유엔 한국 대표들은 음악인들을 먼저 내세워 외교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 지금도 계속 한국에서 꾸준히 연주를 하시지만, 생활의 터전을 한국에 두는 것과 미국에 두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백: 미국으로 터전을 옮긴 이유는 내 스스로가 한국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모르는 것이 많아 내 아이들을 한국에서 키우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내 자신이 계속 도전하고 정신/영혼의 자유 그리고 공간적으로도 방해 받지 않는 영역이 필요했는데 나는 한국에서 충전 없이 계속 소모가 되는 느낌이었다. 생각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옮겼다. 한국에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것이나 세상을 변화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일과는 거리가 있게 생각되기도 하고, 음악을 하더라도 실용음악이 대세인 요즘이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후배들과 학생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지?

백: 정신적인 영감과 깊은 깨달음을 주는 예술은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것 같다. 춤에서도 기본은 발레, 음악에서도 기본은 클래식, 미술도 마찬가지다. 모든 분야는 시작이 클래식이다. 왜냐하면 균형과 문법, 그 분야의 다양한 테크닉을 배워야 그로 인해 자기 분야에서 표현 방법이 더 풍부해지고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것을 바탕으로 응용과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용음악과 재즈를 하시는 분들도 결국은 클래식을 기본으로 갈고 닦는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표현 방법을 찾지만, 어느 분야이든 연마와 단련을 해야 하는 것은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용음악 분야가 더 안정적인 삶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이든 자신을 계속 깨어있게 하고 고인 물이 되지 않게 노력하며 새로운 충전을 계속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클래식 음악은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떤 면에서는 선택을 받아야 하고, 그 길이 주어져야 한다. 계속 노력하다가 뒤돌아보는 순간, 자신이 클래식 음악가가 되어있다면 너무나 행운이고, 선택 받은 것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살면 되는 것 같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 분야로 가는 길이 주어져야 가는 것이지, 하고 싶다고 누구나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도, 엄마가 되는 것도 다 그런 것 같다. 이제 나는 그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웃음)

우: 이번에 보스톤 한미예술협회 후원을 위한 모금 콘서트를 하시는데, 어떻게 이런 기회를 갖게 되었는가? 어떤 곡을 연주할 예정인가?

백: 5년 전에도 한미예술협회 음악회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보스톤에 자리를 잡고 나니 음악인으로서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단체를 활성화시키고, 예술을 살리고, 사회가 좀 더 문화를 의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다음 세대의 관심이 테크놀러지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문화와 예술을 꾸준히 격려하고 싶고,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 같이 동참하고 싶었다. 이런 일을 하려면 기금이 필요하고 또 사람들을 키워나가야 하니까 나부터 재능 기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베토벤의 소나타 23번 <열정>, 쇼팽의 녹턴 두 곡과 라벨의 <라 발스> 등을 연주한다.

우: ‘소확행’ 이란 말을 아시는지?  선생님에게 ‘소확행’이 있다면? (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처음 나왔던 말이다.)

백: ‘소확행’이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 인생을 뒤돌아 보면 모두가 다 소확행이 아니었을까? 그걸 다 합치면 ‘대확행’이 되나? (웃음) 모든 순간이 감사와 은혜이고 작은 기적들이었다. 음악과 매일 함께 하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다. 연주 준비를 하며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원하는 대로 표현될 때 행복하고, 그렇게 못 해내도 행복하다.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매 순간이 나에게는 소확행이다. 나는 엄청나게 긍정적이다. (웃음)

우: 이번 연주를 기다리시는 보스톤의 팬들께 인사 말씀을 부탁드린다.

백: 좋은 뜻을 가지고 마련한 작은 음악회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리고 문화를 살리기 위해서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이 때, 같은 생각을 가진 여러분들이 함께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엄숙하게 연주만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관객과 대화하는 화기애애한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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