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24세 풍월주風月主 천광공天光公(8)
보스톤코리아  2022-05-16, 11:28:39 
‘비담과 염종의 난’ 을 진압한 공로로 호성장군에 장군에 봉해진 김천광은 그 해(647년) 풍월주의 위位에서 내려왔다. 차기 25세 풍월주는 부제인 김염장의 아들 춘장이 이어 받았다. 그리고 김천광은 호성장군으로서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변방으로 출병하여 백제와 고구려 정벌에 큰 공을 세웠다. 결국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고, 천광은 중흥28장將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는 그렇게 변방에서는 수 많은 전공을 세웠고 조정에 들어 와서는 집사부380) 의 중시381) 가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천광은 문무왕 13년(673년) 8월에 20세 풍월주였던 김예원의 뒤를 이어 파진찬(4등급)의 관위로 중시가 되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중시(시중)는 모두 74명이다(더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651년(진덕여왕 5년)에 초대 중시가 된 죽지竹旨로 부터 마지막 74대가 언옹彦邕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언옹은 언제 임명되어 언제까지 그 위位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919년(경명왕 3년)에 상대등 김성金成을 각찬으로 삼고 시중 언옹을 사찬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로 언옹 직전의 시중은 유렴裕廉으로 경명왕 즉위년인 917년에 임명되었다(후일, 931년, 경순왕 재위시, 고려 태조 왕건이 서라벌을 방문했을 때 유렴을 인질로 데리고 개성으로 돌아갔다). 김천광은 예원을 이어 8대 중시에 올랐고, 그를 이어 25세 풍월주 김춘장이 다음 중시가 되었다.  
681년 풍월주 제도가 폐지되기까지 다수의 풍월주들이 중시와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또한 왕족과 상대등(귀족)의 구분이 있었는데 하대(제37대 선덕왕 부터)로 접어들면서 중시/시중와 상대등을 역임한 많은 인물들이 왕위에 올랐다. 그것은 하대로 접어들면서 신라 왕실에는 많은 정쟁과 정변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제36대 혜공왕은 만 7세에 아버지 경덕왕을 이어 왕위에 올랐다(765년). 어머니 만월부인이 778년까지 섭정을 하였고, 780년 살해당했다. 삼국사기에는 김지정이 난을 일으켜 혜공왕을 시해하였기에 상대등 김양상이 김경신과 함께 김지정을 살해하였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김양상과 김경신이 혜공왕을 시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김지정은 김양상의 왕위 찬탈을 막으려다가 처형되었다. 김양상의 즉위로 인하여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직계 왕통은 단절되었다. ‘족보’도 없이 왕위에 오른 김양상은 내물왕의 10세손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먼저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선덕왕宣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양상良相이다. 나물왕奈勿王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해찬 효방孝芳이다. 어머니는 김씨 사소부인으로 성덕왕의 딸이다” 
삼국유사(왕력편)에 추가로 선덕왕의 계보가 나온다 “김씨이며 이름은 양상亮相이다. 아버지는 효방孝方 해간이니 개성대왕開成大王으로 추봉되었는데 원훈元訓 각간의 아들이다” 여기서 김양상의 할아버지 원훈이 등장한다. 이 원훈이 누구인가? 삼국사기에서 두 차례 등장한다. 성덕왕 즉위년(712년9월)에 “아찬 원훈元訓을 중시로 삼았다” 라는 기록과 713년7월에 “중시 원훈元訓이 관직에서 물러나 아찬 원문元文을 중시로 삼았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 두 사서의 기록만으로는 선덕왕의 선대 가계를 더 이상 알 수 없는데, 화랑세기를 보면 놀라운 사실과 함께 원성왕이 왜 즉위하자마자 개성대왕(추존왕 김양상의 아버지)과 성덕왕(김양상의 외할아버지)의 사당을 헐어버리고 태종무열왕계의 사당으로 대체했는지도 알 수 있다. 화랑세기 19세 풍월주 김흠순조의 기록을 보면 모든 퍼즐이 맞추어진다.
“(흠순의) 넷째 아들 원수元帥, 여섯째 아들 원선元宣은 모두 중시中侍가 되었는데 보단의 소생이다. 아홉째 아들 원훈元訓 또한 중시였는데 곧 이단의 소생이다” 
위에 인용한 모든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신라의 제37대 선덕왕 김양상은 김흠순의 증손자이다.  곧 김양상은 내물왕의 후손이 아니라 가야 김수로왕의 후손이다!
김양상의 아버지는 김효방이고, 효방의 아버지는 김원훈이며 원훈의 아버지는 김흠순이다. 김흠순(김유신의 동생)의 아버지는 김서현이며 서현의 아버지는 김무력이고 무력의 아버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이다. 구형왕은 법흥왕(532년) 때 신라에 항복했다.
결국 원성왕 김경신은 김양상보다 늘 한 걸음 뒤에서 조력하다가 왕위에 오름과 동시에 신라 김씨 계보를 바로 세우고자 개성대왕의 사당을 헐어야만 했고, 동시에 선덕왕의 외조부 성덕왕의 사당도 함께 헐었다.    

380) 집사부執事部는 진덕여왕 5년(651년)에 설치된 왕 직속의 최고 행정 기관이다. 중앙행정관청 14부가 모두 소속되어 있었으며, 국가의 정책 전반을 관장하였다. 
381) 중시中侍는 651년 진덕여왕 때 처음 시행된 관직인데, 진골 귀족의 대표자인 상대등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직책이었다. 원래 이름은 중시였으나, 747년 경덕왕 재위시 집사부 장관의 관직으로서 시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대정大正이 유정惟正의 후임으로 중시에 있었다(745 ~ 750년)
681년(신문왕 즉위년)에 김흠돌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진골 귀족들이 제거되었다. 그 결과 상대등의 권력과 기능은 약화되었고, 왕명 출납과 왕의 시위 등을 담당했던 중시(후에 시중)의 역할과 권력이 강화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상대등은 531년(법흥왕18년)에 설치된 이후로 중앙 관제의 최고위 직으로 귀족회의를 주재했던 최고 의결기관이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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