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횡설수설 11 ] 다메섹 가는 길
보스톤코리아  2020-04-06, 11:01:13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예수의 음성을 들은 그는 갑자기 시력을 잃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다시 정신을 회복한 그는 3년여 동안의 수행을 거쳐 철저한 예수 추종자로 탈바꿈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극적인 전환은 그만큼 극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 정통파 유대인이자 철저한 율법주의자로 예수 추종자들을 색출하여 탄압했던 바울은 이 사건을 계기로 180도 다른 사람이 된다. 이름도 그리스어식인 바울로 바꾸고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전도하는 열렬한 ‘예수쟁이’가 된다. 그가 세운 수많은 교회에 보낸 서간들은 오늘날 신약성서의 절반에 가까운 13권을 이룬다. 과장하자면 ‘예수교’가 아니라 ‘바울교’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기독교의 이론과 기초를 집대성한 인물이 바로 바울이다. 예수 추종자들을 탄압하러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그가 겪은 이 사건은 기독교뿐 아니라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변곡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난 적도 없을 뿐더러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의 시선을 끌기 위해 바울이 튀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노이즈마케팅을 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 더 악독하게 예수 추종자들을 탄압한 바리새인들도 많았을 터이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예수에게 ‘픽업’되었을까.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는 없을 테지만 나는 바울이 부럽다. 신비체험이 아니어도 좋다. 나에게도 그가 겪은 종류의 변곡점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가던 길을 과감히 던지고 새 길로 들어서게 되는 체험 말이다. 

바울과 비교할 바는 못 되겠지만, 세속의 역사에도 ‘다메섹 가는 길’과 유사한 변곡점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돌아섰고, 원효는 어느 노숙지에서 해골에 물을 떠 마신 후 중국으로의 유학길을 포기했다. 슈바이처는 안락한 의사생활을 접고 아프리카로 갔다. 육신을 구하는 의술을 버리고 영혼을 구하는 사목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은 내 주변에서도 쉽게 본다. 과연 어떠한 ‘다메섹 가는 길’이 그들에게 일어났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느 날 나에게도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오르고야 오르고야, 어찌하여 너는 그 길을 아직도 가고 있느냐?’ 라고 해주신다면 나도 가던 길을 버리고 돌아설 것이다.    

계시가 없더라도 가던 길을 계속 가야할지 되돌아서야 할지 결정을 못할 경우가 있다. 이 길이 정녕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길인지 아니면 잘못된 길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가던 길이 편하기는 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의구심과 회의에 눈감은 채 가던 길을 계속 가게 된다. 막상 돌아서고자 했을 때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하거나 너무 늦은 것 같아 자신감을 잃는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를 더 많이 한다고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도 말했다시피, 가지 않은 길은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시도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그만 섣부른 전환을 시도하고는 후회하기도 한다. 인간은 정말 모순의 동물이다. 

쳇바퀴를 도는 몰모트처럼, 혹은 다람쥐처럼,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가 오고 또 가는 인생은 얼마나 따분한가. 고갱처럼 직장을 때려치우고 타히티로 떠나고 싶은 적이 어찌 한두 번 뿐이던가. 내일은 다르겠지, 하는 소망으로 우리는 내일을 기다리지만, 막상 내일이 오늘이 되고나면 그게 그거라는 절망을 확인할 뿐이다.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수많은 사람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그들이 부럽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아니 가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던 중에라도, 돌아서라는 음성을 듣는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는가. 그 결과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테니까. ‘다메섹 가는 길’이 나에겐 언제쯤 올 것인가? 아니, 오긴 올 것인가?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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