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과 할아버지·할머니와의 데이트...
신영의 세상 스케치 732회
보스톤코리아  2020-03-02, 10:09:20 
우리 집 딸아이에게 할머니는 엄마와 같은 분이시다. 연년생으로 두 남동생을 두었으니 엄마인 나도 버거웠지만, 딸아이에게도 인지할 수 없는 나이지만 힘들었겠다고 생각해본다. 할아버지·할머니가 미국에서 35년을 사시다가 15년 전 한국에 나가 살고 계셨다. 물론 자식이 모두 미국에 있어 해마다 들어오셔서 자식과 자손들을 만나고 가시곤 하셨다. 이번에도 막내아들내 막내 손자가 결혼을 앞두고 작은 집을 샀다는 얘기를 듣고 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셔서 미국에 오셨다. 여든다섯의 연세에 13시간의 비행시간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4월부터 보스턴 로건 공항과 한국 인천 국제공항의 대한항공 직항이 생겨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특별히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께는 더욱이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그 덕분으로 이번 미국 방문은 시부모님들께도 편안한 시간이 되었다. 시부모님께서는 도착하신 후 보스턴 막내아들 집에서 한 열흘 계시다가 와싱턴 메릴랜드에 큰아들이 있으니 2주 정도 다녀오셨다. 딸아이가 주말에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고 보스턴 구경을 시켜드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디를 구경하고 싶으신가 할아버지·할머니께 여쭙는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역사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하시다가 셀럼 '마녀의 집(Witch House)'이 보스턴 근처에 있는데, 제대로 찾아 구경을 못 했었노라고 하시며,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지난 토요일 하루 딸아이는 할아버지·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시던 친구분 한 분을 더 모시고 다섯이서 셀럼의 '위치 하우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을 방문해 뭐 특별한 것을 봤다기보다는 그곳이 어떤 곳이며 왜 그런 일들이 이루어졌는지 공부를 더 하게 되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물론 돌아와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아픈 과거의 역사를 들춰볼 수 있었다.

손녀딸과 할아버지·할머니와 대화가 더 많아졌다. 한국학교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하이스쿨 졸업 때까지 다녔으니 한국말도 곧잘 하는 편이다. 할아버지께서 영어를 잘하시는 편이니 손녀딸과 소통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손녀딸과 함께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며 행복해하시니 곁에서 며느리인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그 행복한 순간에 지난 30년의 '나의 세월'이 색깔마다 묻어있는 무늬에 결을 내며 흐른다. 딸아이의 환한 웃음 속에서 시어머님의 한없는 사랑 속에서 기특해하시는 시아버님의 평안함 속에서 행복이 가득 담겨있다.

지난해 하루 딸아이가 일하는 곳을 방문하며 기분 좋았던 날이 생각났다. 딸아이에게 할아버지·할머니께 일하는 곳을 보여드리면 참으로 좋을 듯싶다고 얘길 했다. 그랬더니 흔쾌히 답을 주며 약속 날짜를 잡자고 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안내해드리면 일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으니 저도 좋겠노라고 말이다. 그래서 엊그제 하루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손녀딸이 '스페셜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Goodwin Law Firm Boston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Goodwin 빌딩 꼭대기(Observation)에서 바라다보이는 보스턴 항구의 풍경과 빌딩 숲은 가히 장관이었다.

결혼 후 시부모님과 2년 6개월을 함께 살았던 우리는 딸아이와 큰아들은 시댁에서 나았고 막내아들만 시댁에서 분가를 해서 낳았다. 손녀딸을 향한 할아버지·할머니의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극진하시고 정성이 가득했었다. 그 깊은 사랑을 알기에 여든을 맞으신 시부모님께 그저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할아버지·할머니의 그 사랑과 정성으로 세 아이가 잘 자라주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자리매김할 수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서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석 달 열흘의 백일을 맞은 손녀딸처럼 세 살배기 손녀딸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우신 것이다.

서른이 된 손녀딸과 여든다섯이 된 할아버지·할머니와의 데이트를 지켜보며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딸아이의 엄마가 잠시 되어보기도 하고 엄격하셨던 시아버님과 자상하고 따뜻하셨던 시어머님의 며느리가 되어 보았다. 지난 것들은 모두 그리움이 된다고 누군가 얘기했던 것처럼 지난 빛바랜 30여 년의 추억들이 오버랩되어 나를 나로 바라보게 한다. 그 세월 속 그 무엇 하나 내 인생에서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손녀딸과 할아버지·할머니와의 데이트를 바라보며 감사하며 부럽기도 하고 많이 행복했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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