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13세 풍월주風月主 용춘공龍春公(9)
보스톤코리아  2020-01-20, 12:15:08 
다음은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대남보와 그의 딸이 풍월주 용춘공을 위하여 스스로 보인 충성심과 정절의 극치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한 가산을 모두 용춘공에게 사용하도록 하여 곤궁한 생활을 해야만 했고, 이를 뒤늦게 안 용춘공이 대남보의 아들들을 화랑도로 입문케하는 장면들이다.

[대남보의 딸은 용춘공을 위하여 스스로 정절을 지키고 유화遊花가 되기를 거부했다. 공이 딱하게 여겨 여러 차례 말했으나 안 들었다. 대남보가 “한 명의 여자로 인하여 어찌 공께서 걱정을 하실 수 있습니까?” 했다. 공이 말하기를 “내가 사랑幸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내가 너를 사사롭게 대한다고 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했다. 딸이 듣고 슬퍼하여 우물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낭두郎頭 등이 이에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공에게 절하고 말하기를 “이같이 이르도록 만든 것은 신들의 잘못입니다” 했다. 용춘공은 마지 못해 대남보의 딸을 거두었다. 그날로 남보男甫를 해직하고 말하기를 “부녀가 한 사람을 섬길 수는 없다” 했다. 남보는 기뻐하며 “나를 알아주면 충분합니다. 어찌 모름지기 지위를 논하겠습니까?” 했다. 

진평제가 이를 듣고 곧 남보를 등용하여 공을 위하여 궁사지宮舍知로 임명하여 재용財用를 관장하게 했다. 남보는 원래 부유했는데 그 재물을 모두 기울여 공이 사용하도록 했으며, 결사대 백 명을 모아서 공을 호위했으나, 공은 알지 못했다. 공이 하루는 종자從者들과 더불어 미복으로 거리를 지나는데, 어린아이들이 노래하여 부르기를
<처를 바쳐 부자가 되고/ 일곱 아들 모두 말을 탄다네/ 딸을 바쳐 가난해지고/ 세 아들 모두 베옷을 입었네>

했다. 공이 물었으나, 종자들은 말하지 않았다. 남보의 집에 이르자, 그 처와 세 아들이 삼을 쌓아 놓고 손으로 껍질을 벗기고 있다가 용춘공이 보자 그것을 숨겼다. 공은 이에 종자들이 바른대로 말하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 종자들이 자복하여 말하기를 “당두唐斗의 일곱 아들은 모두 영달했는데 남보男甫의 세 아들은 모두 천한 까닭에 거리에 이 노래謠가 있습니다” 했다. 용춘이 오랫동안 슬퍼하다가 “이는 나의 잘못이다” 했다. 이에 그 장자인 학열을 승부乘府에 천거하여 오지烏知를 주었고, 다시 그 두 동생을 …에 부탁하여 말하기를, “남보는 나를 위하다가 가난해졌다. 나는 장차 위位를 물려줄 것이다. 그대는 그…” 라고 했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에 오르자, 모두 등용하여 낭두郎頭로 삼았다. 남보는 그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도록 타일렀다. 세 아들은 모두 충절을 숭상했다. 건복 20년 용춘공과 비보랑이 진평제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위 인용문을 보면 용춘이 자책하며 대남보의 큰 아들 학열을 천거하여 관직을 주었다. 비록 15등급(대오大烏)이나 16등급(소오小烏)의 말직이었지만 가족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다. 동시에 호림공(문맥상 탈자 부분은 14세 풍월주 김호림이 분명하다) 에게 부탁하여 차남과 삼남의 화랑도 입문도 주선하였다. 대남보의 아들들은 모두 임금과 나라에 충절을 받쳐 든든한 간성이 되었고, 특히 학열의 아들 죽죽은 삼국사기(권47, 열전7) 에 가장 용맹한 ‘13인의 전사’ 중의 한 명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용춘공은 풍월주의 위에서 물러나서 건복20년 진평왕이 친히 출정하는 대고구려 전쟁에 참전하였다.186) 건복20년은 603년이다. 먼저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25년)의 기록을 보면, “25년 가을 8월,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침범하였다. 왕이 친히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가서 막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화랑세기(9세 풍월주 비보랑조)에는 “건복20년 8월 고구려가 침범하여 왔다. 제帝가 친히 정벌하였는데, 낭도들이 많이 따랐다. 공과 세호랑이 선봉이 될 것을 청하여 한수漢水에서 맞아 싸워 크게 이겼다.” 여기서 공은 비보랑을 일컫는다. 세호랑은 비보의 아들이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된 “건복 20년 용춘공과 비보랑이 진평제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13세 풍월주 용춘공조의 기록이다.

186) 고구려 영양왕이 장군 고승을 보내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한 전쟁이다.
475년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여 탈취한 이후 한수 지역은 고구려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553년 나제 연합군이 이 지역을 다시 빼앗은 후 신라가 차지하였고,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역임과 동시에 요충지였기에, 이 지역을 둘러싼 전쟁은 중요하였고 대규모였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는 고구려 장군 고승이 불리함을 감지하고 퇴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화랑세기에는 싸워 크게 신라가 이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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