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버리고 떠나기
보스톤코리아  2019-09-23, 10:23:41 
매주 목요일 저녁이다. 모았던 쓰레기를 집앞에 내놓는다. 금요일은 쓰레기를 걷어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쓰레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김재진 시인이다. 시 귀절이 눈에 띄였다. 가을은 여름이 버렸단다. 여름이 쓰레기였다는 말은 아니다.

빛속으로 나선 여윈 추억 들춰내는
가을은 여름이 버린 구겨진 시간표
(가을 그림자 중에서)

수십년도 더 됐다. 한국에서 좁은 골목길 풍경이다. 딸랑딸랑 종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쓰레기 트럭이 왔다는 신호였다. 어머니와 나는 쓰레기박스를 마주잡고 뛰어야 했다. 쓰레기박스는 사과괘짝이었는데, 쓰레기라야 별것 없었다. 연탄재가 주였으니 말이다. 버릴 만한것도 버려야 하는것도 별로 없었다.

버릴것은 버려야 한다. 아내의 투정이다. 제발 버려랴. 헌옷가지를 말한다. 이건 오래된 트라우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게 다 귀할 적에 살았기 때문일 게다. 빈 라면박스도 귀했고, 빈 커피병도 요긴하게 쓰였다. 도시락 김치병으로 쓰였으니 말이다. 커피병에 담긴 김치에선 커피냄새가 김치냄새를 압도했다. 커피에 버무린 김치를 반찬으로 먹을수 밖에 없었던 거다. 빈 커피병을 제대로 씻지 않은 거다. 커피향내는 진했는데, 김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버릴 때가 정녕 도래했다. 지난 여름이다. 누가 방문하고 며칠 같이 지내기로 했다. 걱정이 앞섰다. 아내가 내놓은 묘책이다. 일단 집청소부터 하자. 이참에 모여 쌓였던 것들을 치우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실로 향했다. 곰팡이 냄새와 함께 한숨이 먼저 나왔다. 어렵게 힘겹게 치우긴 치웠다. 엔간히 치웠는데, 아내가 다했다. 나야 하는척 만했던거다. 온다던 손님은 오지 않았다. 

버리고 떠나기. 법정스님의 책 제목이다. 애지중지 기르던 난蘭을 남에게 주고 난 다음이라 했다. 섭섭하다만 홀가분한 마음에 날아갈듯 했다고 했다. 기르던 머리를 스님이 되기위해 깎았을 때 만큼 후련했을지도 모르겠다. 스님의 말이 계속된다. 머리를 깎고 난 다음이다. 가볍고 홀가분해서, 먹물장삼을 걸치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스님도 분명 장발이었을테니 한결 시원했을 거다. 버리는것 또한 황홀하다. 

모았으면 버려야 한다. 하지만 차마 버릴 수없는 것도 있다. 내 선친께 받은 편지뭉치이다. 

더럽고 추한 말을 버려라. (잠언 4:2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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