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을 아시나요?-오르고의 영어잡설
보스톤코리아  2019-03-29, 19:58:37 
사춘기이기도 했지만 지식에 대한 욕심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의 대학생 형들이 카니발을 간다고 자랑이었다. 그게 뭐냐고 물어봤지만 설명도 없이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이었다. 

음악시간에는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라는 악곡에 대해 배웠지만 사육제가 뭔지 알지는 못했다. 그런 걸 물어보면 괜히 중 3이나 돼서 무식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 물어보지는 않았다.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 다닐 무렵 강남역 근처에 카르네 스테이션이라는 고기집이 생겼다. 프랑스 말 같기도 하고 영어 같기도 했지만 뜻을 궁금해 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기아자동차에서 카니발이란 자동차가 나왔을 때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이 모든 단어들이 사실은 서로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하면서였다. 대학생 형이 말해주지 않았던 carnival, 생상의 Le Carnaval des Animaux, 그리고 강남역 근처의 Carne Station. 이 단어들에 모두 carn-란 어근이 들어가고 이 어근은 ‘고기, 살’을 의미하는 라틴어 caro에서 왔다. 엄밀하게 말하면 caro-가 ‘고기, 살’이란 뜻이고 levare가 ‘치우다, 올리다’란 뜻인데, 이 파생어가 carnival로 변화된 것이다.
    
카니발은 사실 단순히 ‘축제’라고 번역하기에는 훨씬 더 진지한 뜻이 있다. 여기 저기 대학들에서 카니발을 한다고 난리를 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과연 대학생들이 그 깊은 뜻을 알고나 쓰는지 의의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carnival은 이미 1540년대부터 등장한다. 사순절(Lent) 직전에 육식을 하면서 즐기는 시기라는 뜻을 가진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사순절(四旬節)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한 것을 기념하는 매우 중요한 절기이므로 기독교도들은 이 기간에 금식과 특별기도 혹은 적어도 그에 걸맞은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 금식을 하기 전에 온갖 가축들을 잡아 흥청망청 먹어두려는 속셈으로 만들어낸 행사가 바로 ‘사육제’인 것이다. 가축을 잡아 고기를 먹는 축제가 바로 carnival인 것이다.  재미있게도 엄밀하게 말하면 carnival은 ‘고기를 치운다’란 뜻을 가진다. 사순절 기간 동안 고기를 못 먹게 되니까 그 전에 고기를 치운다는 말이다. 미국영어에서 carnival이 서커스나 놀이공원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 할 1920년대 이후이다. 

필자는 회교권 국가를 몇 군데 간 적이 있다. 마침 라마단 즉 금식기간이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그들의 말인즉 라마단이 시작되면 고기를 먹지 못하니까 그 전날까지 많이 먹어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라마단은 낮 시간에만 하기 때문에 밤에는 또 왕창 먹어두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에 따라 신실함이 다르겠지만 덜 진지한 신자들은 어떻게 하면 계율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향락을 즐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경건하고 엄숙할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한 순간 인간적으로 보여서 재미있기도 했다.   

채식주의자를 vegetarian이라 하지만 ‘채식의’란 형용사는 herbivorous라 하고 ‘육식의’란 말은 carnivorous라 한다. herb-(채소의)와 vorous(먹다)가 합한 것처럼, carni-(고기)와 vorous(먹다)가 결합한 것이다. 이 어근은 현대 영어에서도 devour(게걸스럽게 먹다)와 같은 단어에 남아있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고기 뷔페인 carne station은 말 그대로 ‘고기’를 파는 정거장인 셈이다.  <동물의 사육제>를 작곡한 프랑스 작곡가 생상은 Camille Saint-Saëns이라 쓴다. 사실 음악의 문외한인 필자는 중학교 시절 들었던 생상이 Saint-Saëns이란 사람이었음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incarnate(구현하다)는 육체를 부여하다란 뜻이다. incarnadine은 육체를 가졌을 때의 색 즉 ‘피처럼 붉은 색의’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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