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ila는 왜 우리에게 장식 보검을 보냈을까?
보스톤코리아  2019-03-11, 10:50:17 
1973년 경주 미추왕릉 지구의 14호분의 배수로 공사에서 여지껏 보아왔던 신라보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장식 보검이 출토되었다.  한 눈에 이 칼이 신라에서 만들어진 칼이 아니고 대번에 아랍이나 유럽에서 들여온 칼이라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칼이었다. 

발굴 공사 중에 황금 장식 보검이 피장자의 허리와 가슴 부위에 놓여 있었고, 두 쌍의 가는 고리 귀걸이(세형  이식)와 비취옥 2점, 마구 철제 대검이 장식 보검과 함께 출토되었는데, 아주 이색적인 유물은 사자머리 형상의 띠고리 2점 (버클)이었다. 피장자가 세형이식을 착용하고 있고, 큰 칼을 가지고 있으니 남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두 명의 피장자가 묻혀 있었는데, 진골 계급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비단 조각이 함께 발견된 것을 미루어 진골 귀족의 무덤으로 파악되었다. 다만, 두 명의 남자들이 한 무덤에 매장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일 것이다.  보검의 칼집은 소멸된지 오래되고 금장식만 남아 있는데, 장식의 길이는 36cm, 최대폭 9.3cm 인 단검이었다. 

칼자루 끝 부분은 골무형으로 되어있고 가운데에는 스리랑카, 인도에서 생산되는 값비싼 석류석을 밖아 치장하였다.  가장자리는 그리스식 소용돌이 무늬 (나선무늬)로 둘러져 있고 가운데에는 역시 석류석을 밖아 장식하였다. 보검의 표면에 보이는 무늬들은 그리스식 물결무늬 (나선무늬), 삼태극 무늬 (파무늬), 메달무늬 (비잔틴 기법)에 테두리는 누금기법으로 아주 작은 금알갱이를 밖아 장식하였다. 누금 기법은 로마, 그리스에서 시작한 기법이다.  세 개의 삼태극 무늬는 일반적으로 태극 무늬 안에 다른 무늬를 새겨넣지 않는데, 장식 보검에서는 삼태극 무늬 안에 꽃봉오리, 나무잎새, 사람머리, 동물형상을 밖아 넣는 것은 켈트족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이었다.  이 보검은 트라키아에서 만들어 8천 Km 의 긴 세월을 거쳐 신라 왕자에세 선물한 듯 하다. 대단한 정성이다.

트라키아는  지금 불가리아, 루마니아 지역으로 4-5세기 때에 동로마, 서로마 제국을 굴복시킨 훈족의 왕 아틸라 (Attila, AD 395 - AD 473) 의 근거지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의 저명한 사학자 Edward Gibbon (AD 1737 - AD 1794) 이 집필한 로마제국 쇠망사 제 3권 344페이지에 훈족의 왕 아틸라가 중국 외교 사절에게 보낸 기록이 있다. 전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동쪽으로는 스키타이 사막에 대한 아틸라의 지배력 범위를 규정하기 어려웠다. 확실한 것은 그가 볼가강 유역을 지배했고 훈족의 왕은 전사로서 뿐만 아니라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마법사처럼)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강력했던 Geougen 족의 칸 (Khan) 조차도 모욕하며 복종시켰으며, 중국과도 대등한 관계를 협상하기 위한 외교 사절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중국 사서에는 아틸라에 대한 기록이 일절 적혀있지 않고 있다.  
쇠망사 기록을 찾아 수고해주신 로웰대학 김병국 교수와 김현주 변호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장식보검 - 1) 그리스식 물결무늬  2) 테두리는 누금기법으로 금 알갱이로 장식. 누금기법은 로마, 그리스에서 시작한 기법  3) 3개의 켈트식 삼태극 무늬가 돋보임  4) 값비싼 터키석으로 치장
장식보검 - 1) 그리스식 물결무늬 2) 테두리는 누금기법으로 금 알갱이로 장식. 누금기법은 로마, 그리스에서 시작한 기법 3) 3개의 켈트식 삼태극 무늬가 돋보임 4) 값비싼 터키석으로 치장

장식보검과 함께 출토된 사자머리 형상의 버클(로마시대때 유행했음)­
장식보검과 함께 출토된 사자머리 형상의 버클(로마시대때 유행했음)­

켈트 문양. 장식보검 삼태극 문양
켈트 문양. 장식보검 삼태극 문양
   
당시 중국은 선비, 흉노 등 5호 16국이 할거하던 시대로 그 중 선비족의 북위 탁발씨 헌문황제 (AD 466 – AD 471)년간으로 신라의 자비마립간 (AD 458 - AD 479)시기와 맞물린다. 학자들은 훈족의 원류를 흉노에게 두고 있다. BC 2세기 이래로 흉노와 중국은 끝을 모르는 전쟁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마침내 흉노가 제압 당하면서 서기 124년에 흉노가 서쪽으로 1차 서천하여 아랄해 부근의 훈족이 되었고, AD 374년에는 4차로 서천하여 루마니아, 불가리아 지역에 이르게 된다. 흉노의 일부는 동쪽으로 이동하여 신라, 가야의 지도 계급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라 고대 유물의 대가 요시미츠 츠네오 교수는 14호 고분에서 장식 보검과 함께 출토된 사자머리 형상의 버클에서 신라와 트라키아 간의 특별한 유대 관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 버클은 로마기법으로 만들어져 있고, 4-5세기 경에 그리스, 로마에서 유행하던 품목이었는데, 값비싼 장식 보검과 함께 중국, 고구려, 백제를 제쳐두고 구태여 신라를 택해 보낸 것은 그만큼 훈족과 신라가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로마의 유리잔 들이 천마총, 황남대총, 서봉총, 금룡총에서 출토되고, 페르시아 사산조의 각배가 중국, 고구려, 백제의 무덤에서 볼 수는 없지만 신라, 가야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AD 453년 아틸라는 게르만 부르군트족 출신 일디고를 신부로 맞아드렸다. 평소에도 과음을 즐기던 아틸라는 첫날밤에 술에 취해 잠들었고 그대로 숨이 끊어진 채 사망하였다. 우리가 그의 장례를 보고 놀라는 것은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보다, 그의 장례 의식이 우리와 똑같다는 사실이다. 우리처럼 삼오제가 있고,  49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사용하던 동복을 깨 버리고, 말을 도살해 문상객과 함께 먹고 말안장과 재갈을 태우고 무기도 태우는데, 신라와 가야에서는 예전에 장례를 치를 때 무기를 태우고 회손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  아틸라와 후세의 영웅 징기스칸은 장사를 지낸 다음에 시신이 어디에 묻혔는 지를 알 수 없었고 장례를 도와준 모든 사람이 순장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라에서는 지증왕 이후로 순장이 금지되었지만, 가야 대성동 무덤에서는 순장이 계속되었고 고령 지산동 44호분에는 32명이 순장되었다.  신라와 가야가 훈족의 원류일지 모른다는 가설은 경주, 김해, 평양에서 다섯개의 동복이 발견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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