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38 ] 돌고래와 필라델피아
보스톤코리아  2018-11-19, 11:16:37 
필라델피아는 펜실베니아 주의 중심 도시이다. 관광객으로 그곳을 방문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미국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특별할 수도 있는 그런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1776년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1787년에 미국 헌법을 기초하였으며, 워싱턴이가 새로운 수도로 건설되기 전 10년 동안 신생 연방의 수도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온 누리의 사람들에게 자유를 공표하라” 라는 경구가 새겨진 자유의 종이 바로 이곳 독립기념관에 있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필라델피아가 왜 미국 역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지 충분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에는 와튼 스쿨로 유명한 펜실베니아 대학교가 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가 필자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philadelphia란 단어 자체 말이다. 그리스어로 philos는 ‘좋아하다’, adelphos는 ‘형제’를 뜻한다. 도시를 세운 윌리엄 펜이 형제애를 강조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이 이름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구약성경에도 나오는 리디아 왕국의 도시 필라델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도시는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국의 왕이었던 아탈로스 2세가 자신의 별명 필라델포스를 따서 세웠다. 필라델피아와 돌고래가 관련이 있다고 하면 웃겠지만, 사실이다. 어원적으로 adelphos는 같은(a-) 자궁(delphos)에서 나왔다는 뜻인데 dophin 역시 그리스어 delphinos에서 왔기 때문이다. 돌고래는 포유류로서 알이 아니라 어미의 자궁에서 산 채로  태어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철학을 흔히 ‘앎에 대한 사랑’이라 한다. philosophy에서 sophy는 ‘앎, 지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philanthropy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므로 ‘박애주의’로 번역한다. 하모니를 사랑하는 것은 philharmonic이라서 많은 관현악단의 이름으로 애용된다. philology는 원래 philosophy처럼 ‘앎에 대한 사랑’을 뜻했으나 logos가 ‘말, 언어’이기 때문에 차츰 언어학을 의미하게 되었다. 혼자 하는 말은 monologue, 둘이 나누는 말은 dialogue이며, 책머리에 하는 말은 prologue, 책 끄트머리에 하는 말은 epilogue이다. 모두 log-를 포함하고 있다. 다만 창세기에 나오는 블레셋은 영어로 Philistines라 하는데 이 단어는 여기서 말하는 접두사 phil-과는 관련이 없다. 얼핏 보기에 Philistines를 ‘블레셋’으로 옮긴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히브리어로는 P’lesheth인데 이걸 그리스어로 옮기면서 Philistine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말 번역이 그리스어가 아니라 라 히브리어 발음을 따랐기 때문에 원어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philo-는 ‘좋아하다’란 뜻이다. ‘좋아하다’란 말이 있으면 ‘싫어하다, 무서워하다’란 말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접미사 -phobia이다. 공수병, 광견병이라 알려진 병은 개가 물을 무서워하는 증상에서 생긴 이름으로 hydrophobia라 한다. hydro-는 ‘물’이란 뜻이다. 비행공포증은 aerophobia, 고소공포증은 acrophobia, 여성공포증은 gynophobia이다. SAT나 Spelling Bee 대회에 나올 법한 단어로 xenophobia(외국인 공포증), necrophobia(시체 공포증) 같은 단어들도 있다. (참고로 gyn-는 ‘여성’이므로 부인과를 gynecology라 한다.) 필자의 아들은 고등학생인 지금도 곤충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갑자기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러서 달려가 보면 천정이나 벽에 붙어있는 깨알보다 작은 곤충을 용케도 발견하고 겁에 질려 있다. 처음엔 사내자식이, 하고 생각했지만 필자는 이제 그것이 insectophobia란 질병임을 알게 되었다. 

어딘가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른바 ‘폐쇄공포증, 밀실 공포증’은 claustrophobia라 한다. claustro-는 ‘닫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claudere에서 왔다. 하늘을 꽉 닫고 있는 것이 cloud이고, 안쪽으로 닫는 것은 include, 들어오지 못하게 밖으로 닫는 것은 exclude이며, 이런 저런 것을 함께 고려해서 종결짓는 것은 conclude이다. 영어에서는 close로 철자가 바뀌었다. 좋아하고(philo-) 싫어하는(-phobia) 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닫아야(clude-) 겠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2019년도 H-1B 전공별 성공 전략: 경영학 관련 전공자 (Business Administration) 2018.11.26
이민국 통계에 따르면 컴퓨터 및 엔지니링 관련 직종 다음으로 직종별 H-1B 신청 건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경영학 전공 관련 직종인 것으로 나타..
이민세관단속국 절차 - 아는만큼 대응할 수 있다 (2) 2018.11.19
지난편에 미국에 사는 외국인이 ICE에 의해 체포 구금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에는 외국인이 체포 구금된 경우 대처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안에..
[ 오르고의 영어잡설 38 ] 돌고래와 필라델피아 2018.11.19
필라델피아는 펜실베니아 주의 중심 도시이다. 관광객으로 그곳을 방문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미국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특별할 수도 있는 그런 곳이..
합리적인 부모부양 5계명... 2018.11.19
미국에서의 부모부양이란 한국과는 조금 다른 양상의 모습이 현실이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오십 중반에 있는 한국인의 정서는 여전히 부모부양에 대한 것을 떨쳐버리기..
한담객설閑談客說: 시詩와 과학과 사랑의 무게 2018.11.19
시詩와 과학은 서로 소 닭 보듯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졸문은 시와 과학과 사랑이다. 과학과 인문과 시와 사랑을 뒤섞어 낸다. 보스톤은 과학도시이다. 보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