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46
화랑세기花郞世紀, 9세 풍월주風月主 비보랑秘寶郞(7)
보스톤코리아  2018-10-04, 19:54:39 
603년, 신라 진평왕 재위 25년, 고구려는 영양왕14년, 고구려가 신라를 침범했다. 당시 백제는 무왕 재위 4년이었으며, 60여년 후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였던 당대의 호걸들이 동년에 출생하였다. 고구려에서는 말엽의 정권을 좌지우지할 연개소문이 태어났으며,236) 신라에서는 후에 태종무열왕이 될 김춘추가 태어났다. 그리고 백제에서는 무왕의 장남인 부여의자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하고 있었다.237)   

한편 풍월주 비보랑의 장남 세호랑 역시 화랑이었다. 하지만 30세가 되도록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여 그저 한 명의 낭도로 활동하고 있었다. 비보랑은 세호랑이 아들이지만 공이 없었기에 절대로 진급시키지 않았다. 불공정하고 부도덕한 일이 있으면 좌후左后의 지위에서 왕권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지고 있던 미실과도 다투는 용기와 정의감이 있었던 그는 자신의 아들 세호랑을 포함한 모든 낭도들에게 공평한 잣대를 엄정하게 사용하였다. 매사를 사리에 맞고 공명정대하게 임한 그는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따르는 무리들이 더욱 늘어났다. 후일 그가 죽어서 장례가 치러질때는 일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진평왕 25년, 고구려가 한강지역으로 침입하였고 왕은 친정에 나섰다. 많은 화랑들도 출전하였다. 상선 비보랑은 아들 세호랑과 함께 선봉에 나서길 자청하였다. 당시 비보랑은 54세였고 세호랑은 기록은 없지만 장남인 관계로 아마 30세가 넘었으리라고 추측해 본다. 격검술이 신기에 달한 문노의 수제자 답게 비보랑은 아들을 데리고 한강지역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비보랑은 화랑의 초년 시절부터 문노의 제자로 문노의 격검술을 비전秘傳받았다. 그런 비보는 문노의 수제자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의 첫 아내 세진은 지아비의 일을 알지 못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남편 비보로 부터 격검술을 배웠다. 그리고 장남 세호가 태어나면서 아버지의 업業을 이어야 마땅하다며 그에게 무예를 가르쳤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자식들을 화랑도 정신에 입각하여 훈육하고 수련시켰던 세진낭주, 그는 불행하게도 병으로 일찍 죽었고, 장남 세호랑은 무예에 그다지 소질을 발휘하지 못하였기에 사사로움이 전혀 없었던 아버지의 밑이라 초기 화랑생활은 아무런 빛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603년 고구려의 침입은 세호랑을 ‘군계일학’으로 만들었다. 비록 아버지 비보랑의 도움과 지원이 있었지만 그는 ‘한수漢水전투’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비보랑과 세호랑 부자가 선봉장이 되어 누빈 종횡무진으로 전장의 승리는 신라에게로 기울었다. 이에 흡족한 진평왕은 비보랑에게 보답하고자 상賞과 위位를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비보랑은 자신의 공을 모두 왕의 것으로 미루고 모든것을 사양하자 진평왕은 그의 깊은 충성심에 더욱 감동하여 대신 그의 아들 세호랑에게 6등급의 관등인 아찬의 벼슬을 하사하였다. 이에 비보랑은 참으로 감격하여 “오늘에야 비로소 나의 아들이다. 또한 너의 어머니에게도 부끄럽지 않다” 라고 말하며, 죽은 첫 부인 세진의 소원대로 늠름한 장부가 되어 전공을 세운 아들에게 어미의 소원을 상기시켰다. 이후로 세호랑은 격검술을 더욱 연마하였고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하였다. 비보랑은 출중한 부하들은 많이 배출하였다. 그의 부하들은 화랑도 뿐만 아니라 지방관으로도 많이 나갔는데 비보랑은 늘 그들에게 정사에 삼가 할 것을 경계하였다. 그는 문노의 수제자 답게 격검술이 따를자가 없었으며 죽는 날까지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법흥왕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 비대전군은 법흥왕과 옥진궁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옥진은 처음에 박영실에게 시집갔는데, 그 결혼식에 친히 참석한 법흥왕이 옥진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만 그를 후궁으로 취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비대전군이 태어났다. 비대는 후궁의 몸에서 낳지만 법흥왕의 장남이었다. 왕후 보도부인 김씨는 딸 지소태후(진흥왕의 어머니)만 낳았기에 비대가 차기 왕위를 이을 가능성이 었었다. 더욱이 지소의 남편(입종 갈문왕 구진) 마저 일찍 죽었기에 왕위가 손끝에 있었는데, 지소의 최종 선택은 왕후가 되는 대신 아들 삼맥종/진흥왕을 왕위에 올리고 태후가 되어 섭정을 하는 선택을 하였다(당시 지소는 박영실을 계부로 맞이하여 박영실도 차기 왕위의 서열에서 다투고 있었다).         
236) 연개소문의 출생연도는 확실치 않으며 614년, 617년생 기록도 있다.

237) 의자왕은 망국의 군주라서 그런지 시호가 없다. 의자意慈는 그의 이름이다. 의자왕하면 떠오르는 것이 ‘삼천궁녀’ 로 황음무도한 왕으로 인식되지만, 그는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로 불렸다. 의자왕의 출생연도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의 아들 륭隆이 615년에 출생했기에 아마도 의자의 출생연도는 595년 전후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백제는 660년, 고구려는 668년 멸망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www.gch.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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