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41
화랑세기花郞世紀, 9세 풍월주風月主 비보랑秘寶郞(2)
보스톤코리아  2018-09-03, 10:30:07 
비보의  첫 부인은 세진낭주細珍娘主 였는데, 세진이 병으로 죽고나서 덕명공주德明公主를 아내로 맞았다. 그리고 열여덟 살에 첩妾도 얻었다. 비보의 첩 유지柳枝는 천하의 절세가인이었고 무예 또한 따를 자가 없었다. 유지가 비보의 첩이 되기까지의 삶은 너무나 드라마틱하여 지금도 소설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김춘추, 대왕의 꿈 – 심재하 조정우, 아름다운 날 출판 2012 – 에도 유지의 활약 장면이 나오는 등 몇몇 소설이 유지와 그녀를 따르던 난도亂徒들, 그리고 그녀의 아들 유오랑의 족적을 다루고 있다). 미모의 여검사女劍士가 신출귀몰하듯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부보다도 더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니 많은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검술을 배우고자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유지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전국을 유람하면서 가는곳 마다 소요를 일으키니 조정에서는 군사를 풀어 소탕에 들어갔다. 하지만 관군이 번번히 패하거나 허탕을 쳤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비상이 걸리고 여자가 두목인 난도亂徒들을 잡지 못한다고 장군들이 망신을 당하며 체면을 구기고 있었다. 이에 문노가 자신을 이어 격검술에도 일인자가 된 수제자 비보랑을 조용히 불러 유지와 그 무리들을 진압하라고 명하였다. 그때 비보의 나이 열여덟살이었다. 그는 화랑의 무리를 거느리고 유지가 은거하고 있던 동굴로 찾아갔다. 그리고 두목 유지를 비롯한 무리들을 무혈생포하였다. 사실은 유지가 항복하였다. 유지는 비보의 늠름한 기상과 아름다운 풍모에 마음을 뺐겨 그만 항복하고 말았다. 이에 비보 역시 소요를 일으켜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미혹하게 한 유지의 죄상이 컸지만 무리들을 해산하고 또 다시 혹세무민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모두 풀어주었다. 하지만 유지는 ‘무죄방면’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곳으로 가서 목숨을 부지하기 보다는 비보를 따라가서 죽기를 원하였다. 역시 장부를 능가하는 유지의 결기였다. 그리하여 비보는 유지를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다 풀어주고 유지는 데려와 첩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유오랑, 유매, 가기, 수동 등의 자녀들이 태어났다. 

장남 유오랑은 비보의 정처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 못지않게 총명하여 그 역시 열여덟살의 나이에 승려 지명법사를 따라 중국(진陳나라)으로 들어가 많은 서적들을 가지고 와서 후진들을 양성하였다. 비보가 풍월주로 있었던 3년간(582 ~ 585년)은 신라에 대풍이 들었으며 모든 백성들이 평화스럽게 살았다고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 다음 10세 풍월주는 미실의 동생 미생이었는데, 미생이 취임한 년초부터 가뭄이 들어 파종마저 못하는 등 지속되는 한발로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진평왕은 수라의 반찬을 줄이고 또한 죄수들을 방면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등 천신天神에 고사告祀를 하고난 후 비가 내렸다고 한다. 백성들은 모두 미생이 욕심이 많아서 흉년이 들었다고 수군거렸다. 사실 미생은 여자 욕심도 많았다. 수 많은 처첩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수가 백명이 넘어서 자식들의 이름도 다 몰랐다고 한다. 이를 방증하는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나온다. 신라본기 진평왕 7년(585년)조의 기록에 보면 “봄3월에 가물었으므로 왕이 정전正殿을 피하고 평상시 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남당南堂에 나아가 몸소 죄수의 정상을 살폈다” 라고 나와있다.

비보랑의 첫 부인은 노리부의 딸 세진낭주였다. 그녀는 장남 세호랑細好郞, 딸 세미細美와 세신細新을 낳고 나서 일찍 병사하였다. 그리고 다시 덕명공주를 아내로 맞았다. 덕명공주는 진흥왕의 딸이며 어머니는 월화공주이다. 어머니 월화공주는 가야의 공주였다. 덕명공주는 아들 다섯과 딸 셋을 낳았다. 아들은 붕부, 보부, 석부, 보주, 진주 이고 딸은 홍주, 녹주, 명주이다. 비보랑은 정처 세진과 계처 덕명으로 부터 많은 아들을 낳았지만 별로 두각을 나타내는 아들은 없었다. 오히려 첩 유지에게서 태어난 유오랑이 그들 못지 않았다. 다행히도 장남 세호랑이 아버지 비보와 어머니 세진으로 부터 배운 격검술로 화랑의 무리에서 낭도로 있었다. 아버지 비보가 풍월주였지만 그는 세운 공이 없어서 화랑도 내에서 직위가 올라가지 못했다(세진낭주는 처도 지아비의 일을 알아야 하고, 또 그 일을 아들에게도 전해줘야 한다면서 직접 검술을 배워 아들 세호랑에게 수련시키는 억척도 보였다). 그러다가 세호랑에게도 기회가 왔다. 603년8월 고구려가 쳐들어 왔다. 그때는 진평왕도 친히 출정하였다. 비보랑은 아들 세호랑과 선봉에 나설것을 자청하여 한수漢水에서 고구려군을 맞았다. 비보 역시 문노에 버금가는 격검술을 보유하였기에, 신기에 달한 그의 검 앞에서 고구려군은 몰살하였고 그는 아들과 함께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에 진평왕이 보답하려고 하니 비보는 자신은 어리석고 겁이 많아서 한 일이 없고 모두가 제帝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사양하니, 진평왕은 그의 아들 세호랑에게 아찬(6등급)의 직위를 하사하였다. 드디어 비보의 아들 세호랑도 자신의 공으로 출사를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www.gch.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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