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견디는 방식(5)
보스톤코리아 연재소설
보스톤코리아  2018-08-27, 10:34:26 
난 그 소리를 듣고는 그냥 엄마를 뒤에 남겨두고 운동장을 달려 나와 버렸다. 그 뒤로 난 아무것도 안 했다. 원서를 쓰자는 선생님의 말에도 묵묵부답이었고 엄마가 학교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에도 대답을 안 했다. 엄마는 할 수 없이 학교에 다시 가서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상업학교 주야간을 다 써넣었다. 난 시험을 아무렇게나 봤다. 야간은 돈만 내면 다닐 수 있었으므로 난 응시하고 시험을 봤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상업학교 야간부 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를 했냐? 공부하지 않았다. 주판알이나 튕기고 손익계산서나 뽑는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수업시간에 난 대놓고 소설책이나 읽었다. 선생들은 때리고 어르고를 두어 번 한 후 포기했다. 내가 수업을 제대로 들은 과목은 국어와 국사였다. 그 두 과목은 잘 듣고 시험 때가 되면 공부도 했다. 국어 선생은 내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를 읽고 수필을 읽을 수 있는 교과서가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국사 공부는 누구도 나를 따라올 수 없었다. 선생보다도 더 정확하게 기억했다. 연대순으로 왕, 경제, 문화를 도표로 꼼꼼하게 만들어 보는 것으로 나의 공부는 다 한 것이었다. 그렇게 도표 하나를 만들면 웬만한 것은 다 기억이 났다. 국어와 국사는 거의 100점에 가까운 점수였으나 다른 과목은 거의 바닥을 기어 다녔다. 한 번은 수학 선생이 새로 왔는데 대학을 갓 졸업한 앳된 선생이었고 얼굴은 반질반질하게 잘 생겼다. 난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수학 공부를 이제 할 수 있을까? 하고 시작한 공부 한 달 만에 수학 시험을 우리 반에서 제일 잘 본 것이다. 난 학교를 다닌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대충 살았다. 오빠들은 대학을 버젓이 다녔고 엄마와 아버지의 등골은 계속 휘었지만 아들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늘 자랑스럽게 때로는 거만한 자세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곤 했다. 
 
“정희가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런지 몰라요. 완전히 삐뚜로 나가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인 건지. 도대체 제 오빠들은 처박혀 공부만 하는데 저년은 완전 밥충이처럼 제멋대로 학교를 다니니…”
엄마가 투덜거리며 마당에서 수도꼭지를 고치는 아버지를 향해 말을 하자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말을 뱉어 낸다.
“시집만 잘 가면 돼야. 얼굴은 반반하잖여”
나는 속으로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하며 연필을 똑똑 분지르고 있었다. 군대에 갔던 큰 오빠가 휴가 나와서 나를 데리고 나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다니고 있는 대학교 교정을 구경시켜 주었다. 오빠가 내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 머리를 쓰다듬고 한숨을 쉬더니 나를 데리고 남산 도서관을 갔다. 
“정희야 시간 될 때마다 여기 와서 놀아라”
난 그것이 오빠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오빠가 뭘 원하는지도 알았다. 오빠가 보여준 대학교 교정과 도서관의 분위기만으로 내 안에 고여 나오지 못한 설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개만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던 내 어깨를 계속 감싸고 있던 큰 오빠가 다짐을 한다. 
“정희야 오빠가 제대하고 공부 마치면 너 대학 보내 줄게."

난 그 말에 몇 년 동안 악지를 부리던 내 행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주산도 2급, 부기도 2급을 땄고 다른 과목의 공부도 열심히 했다. 졸업 후 증권회사에 취직을 했던 나는 대입을 준비하는 학원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난 내가 처음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상업학교 야간을 나온 나는 일 년을 공부해서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용어가 처음이고 학원은 기초를 가르치지 않는다. 난 중학교, 고등학교를 몽땅 날려 먹었기 때문에 학원의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서너 달 다니다가 그만뒀다. 그리고 틈틈이 쓰던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시는 돈이 안되고, 소설을 쓰기에는 뭔가 열등감이 작용을 했다. 나는 돈이 될 수 있는 드라마를 쓰기로 한 것이다. 책은 ‘시나리오 기법’ 딱 한 권 읽어보고 시작했다. 소설을 많이 읽은 탓에 기술적인 문제만 조금 문제가 되었지 내용 전개는 막힘없이 해냈다. 내 극본이 당선되고 내 극본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난 고작 스물셋이었다. 

은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다녔던 증권회사 앞 건물, 전자회사 홍보부에 취직이 되었다. 내가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집을 나와 자취를 하며 드라마 대본과 함께 뒹굴던 그 시점에 은미는 내가 떠난 종로로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유희주 작가
유희주 작가는 1963년에 태어나 2000년『시인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 미주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2015년 『인간과 문학』에 소설 『박하사탕』을 발표하며 소설 작품 활동도 시작했다. 시집으로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엄마의 연애』, 산문집으로 『기억이 풍기는 봄밤 (푸른사상)』이 있다. 
유희주 작가는 매사추세츠 한인 도서관 관장, 민간 한국 문화원장, 레몬스터 한국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코리안릿닷컴(koreanlit.com)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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