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반숙半熟과 완숙完熟
보스톤코리아  2018-08-27, 10:31:36 
계란후라이라면 ‘sunny side-up’이라야 한다.  삶은 계란은 완숙完熟이라야 한다. 이건 내 입맛이다. 

아내가 시장을 보고 왔다. 차 트렁크에서 짐을 내려야 했다. 쌀포대라면 무거워 나도 힘에 겹다. 하지만 아이는 쉽게 번쩍 들어 옮겼다. 아무것도 아닌냥 말이다. 쌀포대 옮기는 아이의 근육질 팔뚝과 울퉁불퉁한 종아리는 아름답다. 그에게서 풍기는 젊은 사내의 냄새는 오히려 달콤하다. 숭글게 걷자란 턱수염은 오히려 싱그럽다.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힘인게다. 어찌 주체할수 없는 젊은 힘은 쌀가마니라도 번쩍 들어 옮길만 한거다. 아이는 사내 냄새 폴폴 풍기는 청년이다. 하지만 여전히 반숙일게고, 완숙은 아니다. 

김형석교수가  했던  말이다.  인생 대충 살아라. 이 말에 잠시 멈칫했다. 아직 젊어 혈기방장한 청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기엔 과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여전히 피끓는 젊은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피血는뜨거운데, 식으면 죽는다. 
 
한국 청와대 참모진에 젊을적 삼팔육 세대가 진출한 모양이다. 그들도 이제는 오십줄을 넘어섰다. 오팔륙五八六이 된거다.  공자의 지천명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만한  연배일터. 잘삶은 계란 마냥 완숙한 경지에 들어 섰을 것이란 말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열정을 버려서는 안될텐데, 나랏일을 대충하리라 믿지  않는다.  모두 완숙되시라.

청년들의 열정과 의협심을 믿는다. 한창 싱싱한 모습에 저돌적이고, 앞뒤가리지 않는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깊고 넓은 통찰력엔 고된 훈련이 더 필요 할게다.   더 깊어야 하고 더 넒어야 하며 더 높아야 한다는 말이다. 박두진 시인 목소리이다. 

다만
끝없이 일렁이는
끝없이 정렬하는 무한 넓이
무한 용량
푸르디푸른
너 천길 속의 의지
천길 속의 고요로다.
(박두진, 청년의 바다 중에서)

쌀포대를 옮긴 아이는 그냥 마루바닥에 패대기 쳤다.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건 내 일이다. 나머지 정리는  아내의 몫이 되었다. 아내의 말 한마디에 내 팔에 힘이 빠졌다만, 미소가 비어져 나왔다. 아이야, 허리 다칠라, 너무 힘쓰지 마라. 내 걱정은 어디서건 찾아 볼 수없었다. 남편 몸걱정은 이미 우선순위에서 한창 밑으로 떨어져 버린거다. 

 ‘낡은 것과 싸우는 동안에 새것도 그대로 낡아간다. 의義도 권력과 결부되면 불의不義를 닮아간다.’ 조지훈 선생의 말이다.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행전 2:17)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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