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견디는 방식(4)
보스톤코리아 연재소설
보스톤코리아  2018-08-20, 10:42:27 
“그런데 말이야. 정말 죽은 사람만 불쌍해. 엄마가 돌아가고 모든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돌아갔지.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토록 상쾌한 것인지 난 몰랐어. 펄에서 걷다가 밖으로 나와 걸으면 다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가볍지. 한 사람의 죽음을 척 밟고 올라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마흔이 넘어서야. 사람의 이기심은 그래. 마흔이 넘어서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그 마음을 돌아보아도 내 생활에 하등 영향을 끼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기심이 베푼 적선 같은 것일지도 몰라. 그러면 어때. 난 그때야 정말 엄마를 위해 울었어. 한 일주일 동안 문 걸어 잠그고 울었어. 내가 울 때 우리 남편이 방 앞에서 뭐랬는 줄 아니? ‘여보…. 다 그런 거야. 누구나 다 겪는 거래. 당신 갱년기 시작인가 봐’ 이러더라고. 아무튼 그 뒤로 난 엄마의 머리를 좀 더 잘 빗겨 드릴 걸 하는 생각을 하곤 해.”

은미가 2층 연립 주택을 지을 때 조각난 평수 때문에 방 하나와 화장실 하나만 넣은 맨 끝 호로 이사를 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은미의 학교 성적이 시험 볼 때마다 올라갔다. 공부만 한 은미는 대학을 들어가고 아버지는 은미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꼬박꼬박 송금했다. 은미는 외로웠지만 생활고는 사라졌다. 연애도 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고 아버지가 준 돈으로는 그림, 무용, 스포츠를 배웠다. 그 과정은 다분히 장래를 위한 것이었다. 연애에 시간을 빼앗길 새가 없었다. 그런 은미를 친구들은 ‘마녀렐라’라고 불렀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마녀쯤으로 해석되는 그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맞으니까. 그 말이 백 번 맞으니까 말이다.  

“정희야. 내가 그렇게 지독한 청춘을 살면서 가끔 너를 생각했어. 어린 네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생각했지. 그 눈빛의 정체를 잘 모르면서도 무지 기분 나빴거든. 왜 네가 나와 동급으로 놀려고 하지? 하는 듯한 그 눈빛 말이야.” “은미야 그 정도는…….”
나는 말꼬리를 흐렸지만 정말 그랬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은미와 나는 거의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자신을 에두르고 있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도망칠 궁리만 하는 하루하루로 이어진 청춘을 살았던 것이다.  

초가을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싸늘해진 어느 날이었다. 난 살에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의 쌀쌀함을 즐겼다. 바람이 귀밑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살짝 밀어 올리면 난 등을 쭉 펴고 호흡을 깊게 한다. 모든 근육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마치 난 활시위에 올려진 활처럼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는 느낌이 종종 들곤 했다.

“엄마 나 대학 갈 거야” “미친년. 우리 집 형편에 무슨 대학을 네년이 간다고 뻗대!! 넌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 여상이나 가. 거기 가면 은행 취직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하더라.”
그런 논쟁이 있은 후 난 공부에서 손을 놓았다. 60명 중 50등 정도 했다. 공부 자체를 안 했다. 시험도 대충 보고 시험 시간에 잠을 자 버리기도 했다. 대신 도서관에서 책만 빌려다 읽었다.  
“엄마 진학 상담 오래.”

엄마가 한껏 옷을 차려 입고 진학 상담을 왔지만 엄마는 중학교 3년 내내 내가 몇 등을 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성적표를 보자고 한 적도 없고 등록금을 제일 먼저 주니 그것으로 할 도리를 다한 양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숙제를 안 해도 꼴등을 해도 엄마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가 차려 입고 나선 것을 보면 그래도 기대는 했었던 모양이다. 난 초등학교 때 선생들과 엄마에게 골탕 먹이는 방법으로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법을 선택했듯이 중학교 때에도 나를 망가뜨리는 방법으로 엄마를 골탕 먹이고 있었다.  

“어머니 정희는 삼류 상고도 갈까 말까예요. 고등학교를 포기하셔야 할지도 몰라요.” “아니 내가 등록금도 젤 먼저 주곤 했는데 걔가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했나요?” “정희는 공부에 아예 취미가 없어요. 일찍 다른 길을 찾아 보세요.”
엄마가 얼굴이 하얗게 되어서 교무실을 나왔다. “엄마 왜 그래? 대학교를 갈 것도 아닌데 공부 못하면 어때서 얼굴이 그래 갖고 나와?”
내가 엄마를 노려보며 말했을 때 엄마가 내 등짝을 심하게 후려 때렸다.
“이 배라먹을 년, 제 오라비 등록금 꼬박꼬박 가로채서 먼저 갖고 간 대가가 이거야?”

다음 호에 계속...


유희주 작가
유희주 작가는 1963년에 태어나 2000년『시인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 미주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2015년 『인간과 문학』에 소설 『박하사탕』을 발표하며 소설 작품 활동도 시작했다. 시집으로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엄마의 연애』, 산문집으로 『기억이 풍기는 봄밤 (푸른사상)』이 있다. 
유희주 작가는 매사추세츠 한인 도서관 관장, 민간 한국 문화원장, 레몬스터 한국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코리안릿닷컴(koreanlit.com)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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