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이여, 괴물들이여, 너희들의 잔치는 끝났다'
양미아의 심리치료 현장에서
보스톤코리아  2018-04-02, 11:28:28 
성폭력과 성추행을 당했으면서도 자신의 고통을 오랜시간동안 침묵해야만 했던 여성들이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미투운동'의 여파는 좀 처럼 가실줄을 모른다. 공공연히 덮혀지던 성추행, 성폭행의 행위가  문화예술, 언론, 정치 ,경제계 등 여러분야에서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언젠가 터질 일이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남자로 태어나면서 얻어진 특권인양 자신의 '남근선망'의 무기를  마구 휘두르던 돼지 남자들, 괴물남자들의 잔치가 끝판을 장식하고 있다. 최영미 시인이 쓴 세편의 시를 통한 그들의  쓸쓸한 잔치의 끝 이야기를  해보도록 한다. 세편의 시는 1994년 그녀의 첫번째 시집 중 '마지막 섹스의 추억' 2005년의 세번째 시집 '돼지들에게' 그리고 2017년의 '괴물'이다.

1994년 문단을 발칵뒤집으면서 최영미 시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출간되었다. 그녀의 시들은 진실을 추구하는 진정성, 자본과 권력에 대한 칼날같은 풍자, 뒤틀어진 시대의 양심을 정결한 언어로 표현하였고 한국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서른 초반의 젊은 여자가 겁도없이 꼿꼿한 자신의 줏대를 드러냈고,  그 시대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찔렀다. 그녀의 이 당당함은 그당시 한국사회가 이야기하는 '좋은 여자'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알파걸'로서 팔자 센 여자의 길을 자초한다고 흉을 보던 세상이였다. 날카롭고 예리한 그녀의 시 앞에서 '남근선망'이 통하지가 않자 '남근선망'에 힘입어 권력을 휘두르던  돼지남자들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혹시, 그들의 권력으로 그녀를 꺽어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던 것은 아닌 지, 그녀는  첫 시집을 낸 1994년 전후로 문단 술자리에 많이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문단내의 성폭력이 그당시 거의 일상화되어 있음에 놀랐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때 목격한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첫 시집이 작성되던 시기의 여자의 가치는 시집을 잘가는 것이 여자로서 성공하는 삶이었다. 젊고, 예쁘고,  좋은 대학을 나오고, 집안이 좋으면 '일등 엄친 신부감'이 되었다. 여자가 서른이 되면 꺽어진 육십이라는 여성성 비하의 말은 자기를 계발하는 인생보다는 빨리 시집을 가야한다는 조바심을 들게했다. 여자는 이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예쁘지 않은 여자들은 몇 번씩 사약을 삼켜야 했다. 이러한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살고있던 대부분의 젊은 한국여자들은 스팩좋은 일등남편감에 선택되어지기를 원했다. 조신하게 있어야 시집 잘 간다는 의존적인 믿음을 갖게되었다. '착한 여자아이 컴플렉스'에 철저히 세뇌되어가면서 한국 여자들은 자신의 감정, 자신의 성애를 억제했고 남자에 대한 순종과 의존에 더 철저히 맹신했다. 가부장의 한국사회는 여자들의 희생적인 삶을 미덕이라 칭찬했고, 여자 스스로 메조키스틱 페미니즘(Masochistic Feminism)으로 빠져들어가게 했다. 조선의 성리학과 가부장제, 기독교의 금욕주의, 카톨릭이 내세운 버진 매리(Virgin Mary)의 사회 규약은 가혹하게 여자의 성애를 무시하고 숨기게 했다. 가부장 사회의 남근숭배는 여자를 꺽을수 있는 무전대패의 무기였다. 최영미의 '마지막 섹스의 추억'은 돼지와 괴물남자들의 남근숭배의 욕정을 사랑이라 믿었다가 무너져가는 한 여자의 심정을 잘 표현해준다.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 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 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 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 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살아서 팔딱이던 말/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마지막 섹스의 추억')

최영미 시인은 세상의 비아냥거림에 굽히지 않고  2005년  세번째 시집 '돼지들에게'를 발표하며 한국 사회의 돼지들과 괴물로 점점 더 변하여가는 지식인, 강자들의 위선과 탐욕을 꼬집어 드러내었다. -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중략)/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돼지의 변신' 중) -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하나 그건 금이 간 진주/ 그는 모른다/ 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중략/'돼지들에게' 중) 

사십대 중반을 넘어가던 최영미 시인은 '돼지들에게'라는 선정적인 시집을 통해 살이 디룩디룩 찐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돼지들을 조롱하듯 자신의 시들을 발표했다. 그녀의 시를 읽다보면 돼지들에게 받은 상처로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진주 여자가 있다. 탐욕스러운 속물의 이미지가 낀 더러운 돼지들에게 겁에 질려 진주를 움켜쥐고 있는 여자가 있다. 돼지에게 질리고 넌더리가 난 여자의 분노와 슬픔과 절망과 좌절과 허탈이 있다(시샘 2017). 돼지들은 진주 여자를 자신들의 소유물을 더하는 수단, 자신들의 더러운 욕정을 푸는 정복욕이 충족되는 수단으로 취급하며 진주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성폭력, 성희롱을 하면서도 게걸스러운 자신의 욕정에 가려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 조차 모른채.

오십대 중반이 된 최영미는 '괴물'이라는 시를 세상에 공표하며 한국문단의 성추행 행적을 폭로해 또 한번 한국을 뒤 흔들었다. 마침내 미투운동의 가세로 삼십년이라는 그녀의 투쟁에 서광이 비추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괴물, 2017) 놀라운 사실은 그 En선생이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날리며 온갖 존경을 받고 살아온 고은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깨끗하고 고고한 진주인양 행세하던 오만투성이의 디룩디룩 살찐 돼지였다니... 이 이율배반적인 돼지에게 구토를 토할 수 밖에 없다. 

글로리아 스티이넘(Gloria Marie Steinem)은 가부장적 사회의 무의식속에는 남자들이 여자보다 훨씬 낫다는 잘못된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심게했고 이러한 무의식의 인식은 모든 남성들이 나르시스트로, 모든 여성들이 매조키스트로 길들여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나 메조키스트 중에 선택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최영미 시인은 돼지들과 괴물사이에서 당당히 싸우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메조키스틱 페미니즘에 세뇌되어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TIME'S UP(타임즈업·이제 일어날 시간이 됐다)'을 외치며 여성의 중요한 존재를  일깨워준다. 아직도 여자가 처신을 똑바로 했다면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치부를 부끄럼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영미 시인이 보여준 삶은 성폭행과 성추행의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들에게 나르시스트와 메조키스트의 삶을 벗어나는 'TIME'S UP'을 외쳐준 것이다. 질책이 아닌 칭찬을 해 주어야 한다. 최영미 시인뿐만이 아닌 용기있게 자신의 성폭행과 성추행의 고통스런운 상처를 폭로해준 그 모든 여성들에게. 돼지와 괴물들의 잔치는 끝났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 됐다. TIME'S UP!


양 미아  Licensed Psycho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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