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필때 꽃이 질때...
신영의 세상 스케치 639회
보스톤코리아  2018-04-02, 11:26:10 
긴 여정이다. 우리의 삶은 때로는 기쁨보다는 고단함에 더 가까운 피곤한 날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이만큼 걸어가면 좀 나아지겠지. 저만큼 달려가면 목적지가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조아리며 곁길에 눈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길에 있다. 이만 큼이면, 저만 큼이면 하면서 오늘도 달리는 것이다. 언제쯤에서 긴 한숨 내려놓고 쉴 수 있을까. 정말 그 쉴 수 있는 때는 오긴 오는 것일까. 그래, 그렇다. 그 기다림은 겨우내 혹한을 견디고 언 땅을 들고 일어서는 봄 새싹과 새순을 보면 알 수 있다. 봄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렸을 저 긴 겨울을 그네들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마음의 봄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버릇이 있다. 꽃샘추위 담은 이른 봄에는 삶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자연과 만나 깊은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겨울이 채 떠나기도 전, 이른 봄을 맞기도 전에 언 나무를 보면서 당장 꽃이 피기를 급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휙 돌아서 버리고 마는 어리석은 모습이다. 어느 시인의 아름다운 시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봄은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지만 꽃이 필 때 살갗이 터지고 갈라지는 고통 없이 어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또한, 열매를 맺고 꽃이 떨어질 때의 이별이 어찌 아프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가, 기다림은 어리석고 답답하고 미련한 사람들의 몫인 양 터부시 되고 말았다. 조금 쉬었다 가면 먼저 간 이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라고 할까. 그것마저도 욕심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남보다 내가 앞서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의 성급한 삶이다. 가지지 못하면 빼앗겼다고 단정해 버리는 마음, 누르지 못하면 밟혔다고 자처해 버리는 어리석은 마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픈 상처이고 오늘의 자화상이다. 남을 믿지 못하고 밀어내는 마음,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하는 마음, 그 밀어낸 마음은 더 깊은 공허의 늪을 만들기도 한다.

혼자서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은 늪에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늘 보고픔이 있다. 내 욕심으로 아무리 채워도 배고픔으로 있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는 것이다. 언제나 바라보고 있어도 타인처럼 낯선 사람이듯, 손을 잡고 있어도, 뜨거운 몸으로 뒤엉켜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또 하나의 보고픔이 있다. 영혼 깊은 곳에서의 갈증일 것이다. 우리의 영혼의 깊은 가운데는 항상 그리움이 있다. 세상의 것으로 채우고 또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영혼의 그리움이 있다. 어쩌면 영혼 깊은 곳에서의 갈증일 것이다. 우리의 가슴 깊은 자리에는 언제나 기다림이 있다. 어쩌면 그 기다림은 영혼 깊은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깊은 영혼의 회귀에 대한 깊은 갈증은 아닐까 싶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다림은 보고픔이고 그리움인 것이다. 그 보고픔이 그리움이 떨림되어 울림으로 남는 것이다. 겨우내 혹한을 견디고 이른 봄에 피어오르는 봄꽃처럼 말이다. 차마, 떨어뜨리지 못하는 보고픔과 그리움이 오랜 기다림이 되어 아름다운 공명으로 흐르는 일처럼. 꽃이 피는 일도 춥고 긴 겨울을 오랜 기다림으로 있었던 여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 여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것처럼 삶 속에서 이겨내기 어렵고 힘겨웠던 일을 겪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고비 고비마다에서 마디로 남았던 아픔처럼 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렸던 꽃나무들도 그랬으리라.

긴 기다림으로 세상의 것으로 채우고 또 채워도 비어 있는 마음은, 세상의 사랑으로 누리고 또 누려도 갈증으로 남는 그 사랑은 무엇일까. 그 사랑은 보고픔으로 남은 오랜 꿈일지도 모른다. 그 사랑은 그리움으로 남은 옛적 소망일지도 모른다. 그 사랑은 오랜 기다림으로 남은 오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물러서지 않는 되돌아서지 않는 지금의 자리에서 만나고 나누고 누리는 깊은 사랑의 마음인 것이다. 설령, 오늘이 또 다른 오늘의 오랜 꿈이 되고 옛적 소망이 될지라도 오늘의 기다림으로 행복한 희망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은 이룬 꿈이고 소망이고 희망이다. "꽃은 먼 가지 끝에서부터 몽우리가 움트고 꽃이 피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자연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도 보고픔, 그리움, 긴 기다림 후에 오는 아름다운 꽃과 열매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 후에 오는...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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