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20
화랑세기花郞世紀, 8세 풍월주風月主 문노文弩(11)
보스톤코리아  2018-04-02, 11:22:30 
문노는 풍월주가 되기 전에 자신을 따르는 500명이 넘는 많은 낭도들을 거느리고 ‘호국선’이란 일문을 세웠다. 그는 세종이 6세 풍월주일 때는 그의 휘하에 있었지만 설원랑이 7세 풍월주일 때는 독립된 화랑의 조직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미실이 설원랑과 미생 등에게 문노를 스승으로 모시도록 하였다. 문노는 당시 신기의 격검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아우러 높은 인품도 지니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그를 따르는 낭도의 무리가 수백에 달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사기는 나날이 충천하고 있었다. 6세기 중반 진흥왕이 김무력 장군에게 명하여 한강 유역의 고구려를 칠때 세종은 화랑도를 지휘하여 함께 출정하였다. 이때 문노는 세종의 휘하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때는 576년, 진흥왕이 사망하였다. 만 50세였다(또는 42세, 삼국사기에는 534년생으로 삼국유사에는 526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러 기록을 교차 검증해 보면 삼국유사의 526년생이 유력하다). 당시 진흥왕비 사도황후는 이미 문노의 능력과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는 그를 비밀리에 불러서 여러가지로 지원을 하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 내막을 전혀 알지 못했던 미실(사도는 미실의 어머니 묘도와 자매지간이다)은 문노를 자신의 봉사奉事로 삼으려 했으나 문노가 받아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진흥왕의 후계로 차남인 사륜이 즉위했다. 그가 신라의 제25대왕 진지왕이다. 진흥왕의 장남 동륜태자는 개에게 물려서 죽었고 그의 아들 김백정이 있었지만 사도와 미실은 정략적으로 사륜을 옹립하였다(대원신통인 미실이 진골정통인 사륜의 부인 지도를 밀어내고 황후가 된다는 약속이 있었다. 하지만 진지왕은 왕이 된 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 때 지도황후 역시 문노의 역량을 간파하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일길찬(17등급의 관등 중 7등급)의 벼슬을 내렸지만 문노는 이때도 받아드리지 않았다. 한편 진지왕은 정사政事는 돌보지 않고 정사情事에만 몰두하다가 사도와 미실이 주도하고 세종과 노리부가 앞장서는 거사로 폐위되고 말았다(삼국유사에 실린 도화녀와의 사랑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그들 사이에서 비형량이 태어났으나 진지왕이 폐위되고 죽은 후에는 김비형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 때가 579년이었다. 이에 앞서 사도와 세종 등이 거사를 계획할때 세종은 문노의 동참을 요청하였고, 문노는 오로지 세종의 명을 따르겠다고 충성을 맹세하였다. 문노는 거사파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진지왕 폐위거사는 성공하였고 문노는 논공행상에서 아찬(6등급)의 벼슬과 함께 화랑도의 여덟번째 풍월주가 되었다. 이어지는 화랑세기의 원문,

[사도황후 역시 이름을 듣고 몰래 도우며, 이끌어 자기편으로 삼았다. 세종공이 출정하자, 북한산에 따라가 고구려 병을 여러차례 무찔렀다. 미실궁주가 불러서 봉사로 삼으려 했으나, 승락하지 않았다. 진지가 즉위하자 지도황후가 일을 꾸미고 발탁하여 일길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세종이 사도의 밀조를 받고 장차 진지를 폐위시키려 하며 공을 불러 묻기를 “… 위로는 발탁하여 등용한 은혜가 있고, 또한 황후와 더불어 근친이 되어 … 조詔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했다. 공이 말하기를 “신은 … 명命으로 …할 뿐입니다. 어찌 감히 사사로운 정을 돌아보겠습니까?” 했다. 진지가 폐위됨에 이르러, 공은 아찬으로 진급했고, 비로소 미실에게 총애를 받아 선화仙花의 위位를 얻게 되니 곧 8세 풍월주였다. 공은 용맹을 좋아하고 문장에 능했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했으며, 청탁에 구애되지 않고, 자기에게 귀의하는 자는 모두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므로 명성이 크게 떨쳤고, 낭도들이 죽음으로써 충성을 바치기를 원했다. 사풍士風이 이로써 일어나 꽃피었다. 통일 대업이 공으로 부터 싹트지 않음이 없었다.]

문노는 문무를 겸비한 화랑의 수장이었고, 하해河海가 모든 물을 받아드리듯 찾아오는 낭도들을 모두 휘하에 포용하면서 그들을 보듬고 훈련시키는 위대한 지도자였다. 또한 청탁을 멀리하고 모든 낭도들을 균등하게 대하며 사랑했으니 서로가 충성을 맹세하여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사풍士風의 전통이 문노로 하여금 세워졌고 후일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은 문노를 “사기士氣의 으뜸으로 삼았다” 고 전한다. 이렇게 사풍을 바탕으로 수련한 화랑들은 676년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저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문노의 막내아들 금강도 함께하고 있었다. 654년 신라의 마지막 성골왕 진덕여왕이 죽고 난 후 진골세력은 상대등 알천에게 섭정을 요청하였으나, 알천은 김춘추에게 왕위에 오를것을 권하였다. 그리고 김유신을 비롯한 그들의 세력은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였고 그는 최초의 진골로 왕위에 올랐다(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과 어머니 천명공주 모두 성골의 부모를 두었지만 그는 진골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용춘의 아버지인 진지왕이 폐위되면서 족강이 된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듬해 655년 정월에 금강이 상대등으로 올랐다. 김유신이 당시 60세였는데 상대등이 금강에게로 돌아감은 금강의 정치적 세력을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일면이다. 그리고 김유신은 금강이 죽은 뒤 660년에야 상대등으로 올랐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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