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17
화랑세기花郞世紀, 8세 풍월주風月主 문노文弩(8)
보스톤코리아  2018-03-12, 13:34:22 
이어지는 화랑세기, [개국開國4년 공이 17세에 무력을 따라 백제를 쳤다. 공이 있었는데 보답을 받지 못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5년 북한北漢으로 나가 고구려를 쳤다. 7년 국원國原으로 나갔고, 또 북가라를 쳤다. 모두 공이 있었으나, 보답을 받지 못했다. 아랫사람 중 불평하는 자가 있으면, 위로하여 말하기를 “대저 상벌이라는 것은 소인의 일이다. 그대들은 이미 나를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어찌 나의 마음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삼지 않는가?” 했다]

개국 4년은 서기 554년이다. 문노가 17세에 김무력 장군을 따라 관상성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아마도 신분상의 이유로 아무런 상급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먼저 여기서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 장군과 백제의 성왕이 전사한 관산성 전투를 좀더 자세히 보겠다. 상황과 배경을 보면, 당시 삼국은 한강유역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했다. 이 지역은 단순히 살기좋은 고장을 넘어 신라에게는 당나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당시에는 항해술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기에 대양항해를 못하고 연안항해를 해야만 했기에, 신라로서는 당나라를 가려면 백제의 남해와 서해를 이용해야만 했다. 이는 백제의 허락없이는 불가능했기에 한강 상류지역의 땅만 차지하고 있었던 신라는 항상 한강하류지역 점령에도 눈독을 드리고 있었다.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의 성왕이 전사함으로 신라와 백제는 나제동맹의 결렬을 넘어 철천지 원수가 되었지만, 이미 그 이전에도 분열조짐은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임나와 가야의 세력을 꺾은 백제는 551년 한강하류지역의 고구려을 공격하여 6개 군郡을 점령하였다. 이때 신라도 함께 참전하였다. 거칠부가 이끄는 신라군은 처음에는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다가 백제군이 승기를 잡자 대대적인 병력을 이끌고 죽령에서 고현高峴에 이르는 10개 군을 차지하였다. 하류의 요충지를 잃은 고구려는 상류의 ‘무익한 땅’에는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떻든 신라는 이렇게 한강 상류지역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신라는 노른자위의 땅을 백제만이 차지한데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 1년전, 550년에 백제는 달기장군으로 하여금 고구려의 도살성을 공격하여 차지하였다. 이에 고구려는 백제의 금현성을 함락하는 보복을 가했다. 하지만 두나라의 소모전을 관망하던 신라는 이사부로 하여금 출전케하여 ‘어부지리’로 두 성 모두 탈취하였다. 이렇게 삼국은 한강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혈전을 벌였고 가야국들과 임나 등을 놓고 복잡한 국제관계에 얽혀있었다. 당과 교류할 수 있는 요충지를 차지한 신라는 한강하류를 신주新州로 개편하고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아들이자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을 군주軍主로 임명했다. 이에 백제의 성왕은 공주를 신라에 혼인까지 시키면서 타협을 모색했지만 성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사태는 자신이 전사하는 그 비참한 기록을 남긴 554년의 ‘관산성 전투’로 이어졌다. 

김무력(518~579년), 금관가야의 마자막 왕인 구형왕의 아들이다. 삼국사기에는 3남인 막내로 기록되어 있는데 차남이란 문헌도 있다. 구형왕은 532년 법흥왕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를 신라에 양여하고 신라의 진골귀족으로 편입되었다. 구형왕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세종(노리부), 무득, 무력이 그들이다. 6세 풍월주 세종편에서 자세히 본것처럼, 삼국사기에는 세종이 구형왕의 장남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화랑세기에는 이사부와 지소태후의 아들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노리부는 또 다른 인물이다. 노리부는 진흥왕의 왕비인 사도왕후의 오라비로서 진지왕 폐위에서 크게 활약한 인물로 등장한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실린 문무왕의 특별교서 내용을 보면 김무력이 세종의 아들로 등장한다). 김무력의 아들이 김서현이고, 서현의 아들들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김유신과 김흠순이다. 김무력은 신라의 진골로 편입된 후 무인武人으로서 이사부를 도와 북방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리고 551년 한강북부지역을 차지하고 군주軍主로 있었다. 한편 백제의 성왕은 그간 이중성을 드러낸 신라를 응징하기 위해 대가야와 연합하여 554년 신라의 관산성(충북 옥천)을 공격하였다. 당시 관산성의 군주는 우덕于德장군이었는데 고전을 면치 못하고 거의 함락 상태에 있었다. 이에 김무력이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이때 17세의 문노가 김무력을 따라 참전하여 대승을 거두는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성왕은 7월 그 전투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백제 병사 2만9천여명의 수급을 베었다는 기록을 볼때 백제는 이미 쇠퇴하고 있었다. 김무력의 첫부인은 보도왕후(법흥왕의 정비, 후사가 없어서 폐출되어 비구니가 되었다)의 동생 박씨였고, 둘째부인은 아양궁주인데 김서현의 어머니이다. 아양궁주는 진흥왕과 사도부인의 딸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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