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3 ] 브라덜이 나 때렸어요.
보스톤코리아  2018-01-29, 11:29:56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어설픈 지식이 더 무섭다는 말이다. 영어연수 2, 3년 쯤 다녀온 대학생들이 종종 빠다 바른 발음을 하면서 우쭐해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무리 혀를 굴려서 빠다 냄새나는 영어를 해도 필자는 그가 원어민인지, 1.5세대인지 혹은 몇 살 때 미국에 갔는지를 알아내는 비법이 있다. 그것도 단 한 문장만으로. 예를 들면 'Peter came'이란 간단한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시켜보는 것이다.

교포이거나 적어도 초등 4학년 이전에 미국에 간 학생이라면 [피럴이 왔어요.]라고 번역하고, 얼치기로 유학을 갔거나 중학생 나이 정도에 미국에 간 학생은 [피터가 왔어요.]라고 번역한다. 

Peter came
원어민: 피럴이 왔어요.
한국인: 피터가 왔어요. 

왜 그럴까? 미국사람들은 /r/을 분명히 발음하는데 비해, 한국인 학습자들은 대개 /r/을 무시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Peter를 [피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말의 특성이 합해진다. 우리말에서는 주어에 받침이 있으면 '-이', 없으면 '-가'를 붙인다. 예를 들면, '교수가' 어쩌구, '선생님이' 어쩌구 이렇게 말한다. 

주어에 받침이 없으면: 교수-가
주어에 받침이 있으면: 선생님-이

교포 학생들은 Peter의 /r/을 인식하기 때문에 주격조사 '-이'를 붙여 [피럴-이]라 번역하고, 한국 학생들은 /r/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격조사 '-가'를 붙여 [피터-가]라 번역하는 것이다. 필자의 테스트 방법은 거의 틀려본 적이 없다. 초등 4학년 이후에 미국에 간 학생들은 [피터가 왔어요]라고 번역할 확률이 높다. 마치 돼지꼬리처럼 단어 끝에 보일 듯 말 듯 붙어있는 조그마한 /r/을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필자의 둘째 아이가 미국에 처음에 왔을 때 자주 하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 브라덜이 나 때렸어. 마덜이가 형아 혼내 줘.' 두 살짜리 아이의 귀에도 brother의 마지막 /r/이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르치지 않은 두 살짜리 아이는 brother를 [브라덜]로 인식하는데 수십 년 동안 영어를 배운 어른들은 /r/을 빼먹고 [브라더]라 발음한다. mother는 [마더]가 아니라 [마덜]이고, father는 [화더]가 아니라 [화덜]이며, heart는 [하트]가 아니라 [하-ㄹ트]이다. 미국사람들의 국민복 같은 North Face는 [노쓰 훼이스]가 아니라 [노-ㄹ쓰 훼이스]이다. 

미국사람들과 대화할 때 아무리 말해도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다면 한 번 쯤 내가 /r/을 빼먹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야구선수 박찬호는 /r/을 매우 강하게 발음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자기 성을 Park이라고 쓴다. 그런데 골프선수 박세리는 /r/발음에 자신이 없었던지 자기 성을 /r/이 빠진 Pak으로 표기한다. 두 박 선수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알 길이 없다. 

외국어 학습에서 모국어의 영향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이를 전문용어로 어투(accent)라 한다. 콩글리시 액센트의 또 다른 예는 쓸 데 없이 [으]를 넣어 발음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student를 [스튜던트], McDonald를 [맥도널드], could는 [쿠드]라고 발음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 단어들에서도 [으]가 없기 때문에 각각 [스튜던ㅌ], [맥도널ㄷ], [쿠ㄷ] 쯤이 되어야 한다. 교포 출신 미국인 교수와 공동작업을 할 때의 일이다. 종종 그의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는데, 가령 '선생님, 여기 웃이 필요해요?' 이런 말은 정말 알아들을 수가 없다. 종이에 써달라고 하면 '여기에 would이 필요해요?' 라고 쓴다. 조동사 would를 미국인들은 [우드]가 아니라 [우ㄷ]로 발음하는 것이다. 자음 /d/로 끝난 것으로 인식하니까 (받침 있는 주어의) 격조사 '-이'를 붙이는데 비해, 한국인들은 이것을 [우드]로 인식하기 때문에 (받침 없는 주어의) 격조사 '-가'를 붙이는 것이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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