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박카스
보스톤코리아  2017-10-30, 11:30:39 
  중학교 적이다. 3학년에 진급했다. 일반사회 과목 첫시간이었다. 담당선생님이 교단에 섰다. 첫 말씀이다. ‘수업이 시작되기전 주번은 박카스를 준비해라.’ 특명이었고, 거역할 수없는 엄명이었다. 다음 학과시간이었다. 선생은 교단에 섰고, 준비된 박카스를 발견했다. 흡족한 표정이 역력했고, 병을 따서 원샷으로 마셨다. 심하게 요동치는 선생 목젖에 아이들 눈동자가 몰렸다. 선생은 교실 뒷편 휴지통으로 몸을 움직였다. 빈 박카스병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슬립퍼 끄는 소리에 맞춰, 박카스 냄새가 봄볓처럼 흩어졌다.

  활력活力을 마시자. 박카스 선전문구였다. 박카스를 마시면 활력이 생겼던 모양이다. 몰려오는 잠을 억제 할 수는 있었을 게다. 버스운전기사가 마셨고, 일반사회 선생님이 마셨다. 내 어머니도 박카스 박스를 늘 끼고 계셨다. 심심풀이로 마셨으니 말이다. 음료수마냥, 숭늉마냥 그냥 드셨다. 아, 어머니. 박카스 한병 제대로 사다 드리지 못했습니다. 
  박카스 병 상표에 붙어있는 내용물이다. 카페인, 타우린, 그리고 설탕. 그닥 해로운 건 아니다. 커피와 같다고나 할텐가. 그런데, 박카스 빈병은 리사이클이 되는가. 달리는 버스 바닥에 떨어진 박카스병, 또로록 잘도 구른다. 
 
누가 떨어뜨렸는지
빈 박카스 병 하나 연신 버스 바닥을
굴러다닌다
왼쪽으로 커브를 틀면 
도르르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커브를 틀면 
도르르르 왼쪽으로,
좌석 없는 유일한 승객처럼
손잡이를 놓친 승객처럼
도르르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영민, 빈 박카스 병에 대한 명상)

    요사이 한국에선 안보 피로감이라 하던가. 안보 불감증이라 하던가. 머리위에 핵폭탄을 지고 이고 사는 판이다. 그런데, 여전히 큰 동요는 없는듯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박카스 다른 선전문구가 떠올랐다. 풀려라 오천만. 풀려라 피로. 박카스 한병에 모든 한국인들 안보 피로감이 풀릴 수 있을 것인가? 한반도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강대국사이에서 혹시 빈 박카스 병되어 이리저리 구르는건 아닌가. 

  젊음. 지킬것은 지킨다. 절창이다. 제발 이북에서도 지킬것은 지키기를 빈다.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창세기 17:9)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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