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과 기독교
보스톤코리아  2017-03-06, 11:38:37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밝힌 대로 3.1운동은 한국의 정체성을 형성한 첫 근대 민족운동이다. 2년 후 100주년을 맞아 삼일독립운동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높다. 운동의 한 핵심 세력이었던 기독교에서도 올해부터 심도 있는 논문들이 나오고 새 자료들이 발굴되고 있다. 두 가지 문제만 살펴보자. 첫째, 왜 상당수 엘리트 기독교인들은 삼일운동에 반대했는가? 둘째, 삼일운동은 기독교 운동이었는가?  
 
삼일운동에 대한 반대 논거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주류 언론은 3월 20일자 사설에서부터 한국의 독립을 반대했다. 한국 지도자들이 행정 경험이 없어 자치는 불가능하며, 무정부 상태보다 질서유지가 더 낫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무정부 상태는 지역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제국주의 논리였다. "현재로서는 본국인 자치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면서, 개화된 외부자가 그 나라를 계속 다스리는 것이 최선이다."고 보았다. 일본의 ‘조선 통치’ 결과 조선이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선전의 결과였다. 미국은 필리핀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었으므로 아시아인의 독립 욕구를 억압해야 했다. 오리엔탈리즘과 식민사관이 만든 조선 정체성론과 반도국가론이 공고화된 결과였다. 당시 한국의 성공회나 천주교나 일부 감리회 지도자들도 동일한 입장이었다. 윤치호와 최병헌 목사는 시기상조론을 내세웠다. 성공회 트롤로프 주교와 천주교의 뮈텔 주교는 한국의 독립운동에 반대하고 일본의 통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신임 총독 사토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비난했으며, 총독에게 협조를 약속했다. 

삼일운동이 기독교운동이 되려면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삼일운동을 일반 민족운동을 너머 기독교운동으로 볼 수 있을까? 곧 참여자들은 한국인으로만 참여했는가 아니면 한국인 기독교인으로 참여했는가? 다음 네 가지 질문에 답해야 기독교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첫째, 개신교인이 운동의 주축과 핵심 세력이었는가? 당시 개신교인은 인구의 1.5%인 약 24만 명이었다. 독립선언서 서명자 33인 중 기독교인이 16명이었다. 6월까지 투옥된 자 9,458명 중 개신교인은 2,087명으로 중간 지도자층의 22%를 차지했다. 여성 투옥자는 거의 개신교인이었다. 9월 평양에서 장로회 총회가 열렸을 때, 장로교인 사망 52명, 투옥자 3,804명이었으며, 목사와 장로 1,024명 가운데 13%인 134명(총회장 김선두 목사, 길선주 목사 포함)이 감옥에 있었다. 만약 지금 목사와 장로의 10%가 감옥에 갈 각오로 사회 운동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둘째, 교회의 조직적 참여의 문제이다. 개신교는 당파성을 넘어 천도교와 불교와 함께 연합하고, 전국 교회와 기관 연락망을 활용하여 선교사나 일본 경찰 모르게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교회나 병원의 등사실은 선언서를 인쇄했고, 청년들과 여자들은 이를 운반, 배포했다. 천도교가 있는 마을에서는 함께, 없는 도시에서는 교회 자체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셋째, 운동의 이념과 방법이다. 기독교 정신으로 진행했는가? 삼일운동에서 민족자결도 중요하지만 평화적 무저항주의가 귀하다. 천도교는 "개 같은 왜놈들 우리의 원수로다. 한 칼로 박멸내자"는 복수와 무력 저항을 지지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요구로 비폭력으로 시작되었다. 불의에 대항하지만 증오가 아닌 사랑이 승리한다고 보는 기독교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믿는 세상에서 바보가 되지만 최후의 승자가 된다. 

넷째,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협력 문제이다. 기독교운동이라고 해서 민족의 독립과 통일과 같은 거국적 운동이라면 천도교와 불교 세력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 불의와 불평등과 부자유 앞에 기독교인이냐 한국인이냐는 분리될 수 없다. 한국이 기독교를 가지고, 정의, 평화, 자유로운 통일 한국으로 인해 남북의 한국인이 살고 세계 기독교가 살 것이다. 이것이 3.1운동 정신의 계승이요, 꿈이다. 

삼일운동과 이후 이어진 독립 운동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1945년 해방이 외세의 도움으로 ‘도둑같이’ 왔기에 나라는 분단되고 민족의 모순은 심화되었다. 삼일운동은 우리 민족이 내면의 힘을 자각하고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하나 된 사건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깨어난 한국교회가 하늘이 준 생명의 힘으로 떨쳐 일어나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외친 혁명이었다. 교회는 그 용감한 정의감을 회복하고 민족 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전통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 


옥성득 ( Rev. Dr. Sung-Deuk Oak)
서울대 사학과
장신대와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석사
보스톤 대학교 교회사 박사
현재, UCLA 한국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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