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68
화랑세기花郞世紀, 5세 풍월주風月主 사다함斯多含(20)
보스톤코리아  2017-03-06, 11:37:11 
사다함은 약관 1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사우를 결의한 친구이자 자신이 풍월주로서 이끄는 화랑도의 낭두인 무관랑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하다가 7일 만에 죽었다. 그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화랑의 무리는 유능한 지도자를 잃게되었다. 그래서 대다수의 낭도들은 4세 풍월주를 지낸 이화랑을 다시 추대하여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주길 요청하였다. 이에 이화랑은 자신은 지소태후의 사위라면서 풍월주의 지위 복립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이화랑은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고조할아버지이다. 그리고 1세 풍월주를 역임한 위화랑의 아들이다. 또한 이화랑은 지소태후의 사위일뿐만 아니라 지소의 침신으로 그들은 만호낭주를 낳았다. 이 만호낭주가 동륜태자와 혼인하여  26대 진평왕과 차남 진정갈문왕 김백반 그리고 삼남 진안갈문왕 김국반을 낳았다. 즉 지소태후 입장에서는 손자와 딸이 결혼하였다. 신국 신라의 골품을 잇기위한 혼인 풍습이었다. 이화랑은 어릴때 부터 시문詩文을 잘했다. 그는 화랑도花郞徒로서 갖추어야 할 무예실력 역시 걸출하였으며 외모도 수려하였다. 그래서 12살의 어린 나이에도 능히 화랑도의 2인자인 부제의 자리에 올라 그 임무를 다하고 3세 풍월주 모랑공이 일찍 죽으면서 그의 뒤를 이어 4세 풍월주가 되었다. 젊고 잘생기고 문무를 겸비한 이화랑은 풍월주가 되는데 손색이 없었기에 많은 낭도들이 그를 따랐다. 아울러 궁궐의 많은 공주들도 그를 흠모하였으며 그의 재기를 배우길 원했다. 특히 지소태후(진흥왕의 어머니)의 딸들인 숙명, 황화, 송화 등은 항상 가까이서 지내면서 시문과 화랑도花郞道를 배웠다. 숙명은 지소태후와 태종공(이사부) 사이에서 태어났고, 황화와 송화는 지소태후와 박영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다. 지소태후는 삼촌인 입종과 결혼하여 진흥왕을 낳았고, 입종이 죽은 후 여러명의 남편을 두었으며 또한 많은 침신寢臣들도 있었다. 

한편 많은 낭도들이 이화랑을 차기 풍월주에 복립할 것을 요청함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사다함의 복안은 달랐다. 그는 세종을 가장 접합한 인물로 봤으며 모든 낭도들이 사다함의 의견을 따라서 세종을 6세 풍월주로 세웠다. 세종世宗(? ~ 588년, 노리부弩里夫), 삼국사기에 의하면 그는 가야 왕자이다. 구형왕의 장남으로 노리부는 이름의 음을 표기한 것이고, 세종은 이름의 뜻을 표기한 것이다. 노종奴宗, 노부奴夫, 내부內夫, 내례부內禮夫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532년(법흥왕 19년)에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구해왕 또는 구충왕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이 가족과 함께 신라에 귀순하였다.194)  그리고 그들은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편입되어 왕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다음은 화랑세기 내용의 세종과 노리부, 삼국사기 처럼 동일인이 아니라 세종과 노리부는 다른 사람으로 등장한다. 노리부는 진흥왕의 비인 사도왕후의 오라비이다. 사도의 부모는 박영실과 옥진인데, 노리부의 부모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즉 사도와 동부동모인지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576년 진흥왕이 죽자 사도왕후는 미실과 손잡고 진지왕을 즉위시켰다. 그리고 거칠부로 하여금 상대등을 삼아 정국을 운영했지만 실권은 왕후의 오라비 노리부가 잡고 있었다.

그리고 세종世宗은 태종(이사부)과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 사이에서 태어 났다. 즉 진흥왕과는 이부동모 형제이다. 그리고 진흥왕의 왕비였다가 궁을 도망나와 이화랑과 혼인한 숙명과는 동부동모의 친남매이다. 세종은 미실을 아내로 맞아드려 아들 둘을 두었다. 그리고 세종은 6세 풍월주로서 화랑도의 무리를 이끌었다(두 사서가 세종/노리부에 관하여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 혈통의 뿌리부터 다르며 또한 후손들도 다르다. 과연 신라인이 쓴 신라의 기록이 옳을까? 약 500년 후에 완성된 고려인이 쓴 신라의 기록이 옳을까? 화랑세기의 원본이 발견될 때까지는 아마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194) 삼국사기(신라본기 법흥왕 19년, 532년)에는 금관국의 임금 김구해가 왕비와 세아들인 장남 노종奴宗, 중남 무덕武德, 계남季男 무력武力과 함께 국고의 보물을 가지고 항복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계남은 막내아들을 뜻한다. 구형왕의 막내아들  김무력의 손자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크게 공헌한 김유신이다. 
그리고 삼국유사(가락국편)에는 두 가지 설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즉 구형왕의 항복  연도는 532년(법흥왕19년)과 562년에 진흥왕의 명으로 이사부가 가야정벌한 해를 모두 기록하고 있다. 562년 가야정벌 전쟁에는 사다함도 참전하였다. 누구보다 더 용감하게 싸워서 많은 전공을 올렸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웹싸이트(www.gch.go,kr) ‘월성해자발굴조사보고서 I’(1990), II(고찰, 2006)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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