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염染
보스톤코리아  2016-10-31, 12:12:58 
  오늘 졸문의 제목은 염染이다. 신영각 선생의 '人'을 흉내냈다. 그렇다고 선생이 크게 나무라시지 않으실 거라 믿는다. 이순신장군의 칼에 새겨진 글귀이다. 한번에 쓸어 버려 산천을 피로 물들인다. 말은 섬뜩한데, 과연 무인답다. 

一揮掃蕩 일휘소탕 血染山河 혈염산하
  소설가 김훈은 염染을 공업적 용어라 했다. 서정적인 단어일수도 있을 텐데, 염染자를 삼엄하게 해석했다. 무장武將에게 서정抒情감을 요구하는 건 무리일게다. 염染은 물들인다는 말이다. 단풍의 붉은 색깔이 보스톤 가을을 물들인다. 

  봉선화가 봉숭아인줄 알지 못했다. 우리네 장독대 주변에 맨드라미와 채송화와 같이 피었다.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인다. 물을 들을적엔 백반白礬을 같이 쓴다. 백반을 기억하시는가. 혀에 대면 신맛이 나는 돌덩이이다.  모양은 화강암과는 다르고, 시냇가 조약돌과 다르다. 어릴적에 입에 대봤다. 덩치 큰아이들 호주머니엔 조약돌 만한 것들이 들어있었고, 갖고 있는 애들은 조무래기들에게 아주 조금씩 맛보여 주곤 했다. 아이들이 말해줬다. 신비한 맛을 지닌 그 돌이름이 백반白礬이라고. 갖고 싶던 것 중에 하나였는데, 난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화학을 공부하면서, 그 진한 회색돌이 명반석이란 걸 알았다. 칼륨과 알루미늄을 함유한 황화염黃化鹽이다. 이런건 기억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시라. 약국에서 파는지 그건 모르겠다. 입에 대고 맛볼 생각도 하지 마시라. 맛없다.)

  내 어린 시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엔 큰 시냇물이 흘렀다. 시냇물은 폭이 넓었고, 흰색 자갈이 눈부시고 넓게 깔려 있었다. 물은 너무 맑아 올챙이 한마리 살 수 없었다. 내 어머니는 해가 좋은 날이면, 이불 홑청 빨래감을 들고 나섰다. 이해인 수녀의 시 한구절이다. 어머니도 우울했는지 그건 알 수없다. 

우울한 날은/빨래를 하십시오. 맑은 날이/소리내며 퉁겨울리는
노래를 들으면/마음이 밝아진답니다.  (이해인, 빨래를 하십시오.)

  빨래 후, 자갈밭에 빨래는 넓게 널렸는데 또한 장관이었다. 어느날이다. 시냇물 구석 줄기가 샛파란걸 봤다. 파란 물줄기를 눈이 쫓아 올라갈 적에,  냇물가에서 솥단지를 걸고 무언가 열심히 끓이고 삶는게 보였다. 간이 염색 공장이었다. 푸른 물줄기는 그곳이 원천이었던 거다. 요사이라면, 오염물질 무단 방류로 벌금에 사회적 지탄대상일게다. 그런데, 예전에 그게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염染자는 공업용 단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옛세대엔 생활의 단어였을게고 염색엔 백반白礬이 반드시 필요하다. 푸른 물줄기는 오히려 샛파란 하늘마냥 섬뜩했다. 

  어린 내가 또 헷갈렸다. 음식점 입구에 붙여진 백반이란 말을 보고 난 다음이다. 그럼 식당에서도 이 백반을 판다는 말인가? 알수없는 요지경이었다. 세월이 흐른 후 알았다. 백반白礬과 이 백반白飯은 다르다는 걸 말이다. 식당의 백반白飯은 흰쌀밥상 이다. 쌀밥은 알았으되, 백반이란 말은 아직 어색할 적이다.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마가 9:3)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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